엄마, 나 오늘 기분 조와

일곱 살 딸이 유치원에서 써온 편지

by 행복수집가

내 아이는 올해 일곱 살이 되어 유치원에서 가장 큰 언니가 되었다. 3월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수지는 새로운 반으로 올라갔다.


유치원에 처음 입학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유치원을 벌써 3년째 다니고 있으니 새로운 반에서의 시작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새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3월 첫 등원 날.
하원 시간에 수지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버스에서 내렸지만 조금 지쳐 보였다. 이제는 아이의 표정과 눈빛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힘든지 아닌지를 대충 알 수 있다.


수지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아마 첫날이라 긴장도 하고, 조금 힘들었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수지가 말했다.


“엄마, 이거 내가 엄마한테 쓴 편지야. 봐 봐.”


수지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 편지를 내밀었다. 반짝이는 색종이 편지에는 삐뚤빼뚤하지만 꾹꾹 눌러쓴 귀여운 글자가 적혀 있었다.


“엄마, 나 오늘 아파.
엄마, 나 도와줘.
엄마 사랑해요.”


편지를 보고 나는 수지에게 물었다.


“수지야, 오늘 아팠어?”


수지는 머리가 아팠다며 집에 가서 열을 재 달라고 했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약간 미열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감기일까 걱정이 되어 얼른 집으로 가서 열을 쟀다.

다행히 열은 없었다.


수지는 집에서 간식을 먹으며 푹 쉬었다. 조금 쉬고 나니 다시 충전이 되었는지 폴짝폴짝 뛰며 신나게 놀았다.

아마 새로운 반에 간 첫날이라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날, 둘째 날이 되었다.

그날 하원할 때 수지는 전날보다 조금 더 밝아 보였다.

수지는 또 편지를 썼다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엄마, 내가 쓴 편지야. 봐 봐.”

이번에는 뭐라고 썼을까 궁금해하며 편지를 열어봤다.


“엄마, 나 오늘 기분 조와. 엄마 사랑해요.”


그 글을 보는 순간 내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수지야, 오늘은 기분이 좋았어?”
“응!”
“다행이다~!”


수지가 기분이 좋았다는 말에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아이가 기분 좋았다는 말보다 더 반가운 말은 없다.


나는 기특한 마음에 수지를 꼭 안아주었다. 수지는 나에게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날은 조금 더 밝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수지가 써준 편지는 내 보물상자에 고이 넣어 두었다. 어설픈 글씨지만 수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편지가 너무 소중하다.


유치원에서의 기분을 적어주는 수지의 편지를 보는 게 내 일상에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아이가 어설프게 적은 짧은 글 한 줄에서도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오히려 짧은 글에 마음을 담기가 더 어려운 법인데, 수지는 한 줄 안에 자신의 기분을 충분히 담아낸다.


수지에게서 편지를 받으니 벌써 글로 마음을 나누는 기분이 든다. 글로 마음을 나누는 것은 말과는 또 다른, 더 깊고 진한 마음이 느껴진다.


수지가 하원하며 “나 오늘 기분 좋았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편지에 “나 오늘 기분 조와”라고 적은 말이 왠지 더 깊이 마음에 남는다. 이게 글이 가진 힘인 것 같다.


아이도 사람인지라 유치원에 가는 것이 매일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싫은 날도 있고 피곤한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바라는 것은 좋은 마음이든 힘든 마음이든 혼자 꾹꾹 눌러 담지 말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수지가 더 자라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더라도, 힘든 날에는 힘들다고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징징거리면서 숨기지 않고 표현해 주면 좋겠다.


수지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믿고 들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나도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수지의 작은 말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고, 경청하고 집중하려 한다.


그래서 지금도 수지가 적어주는 짧은 편지한 줄에 크게 반응한다. 자신의 감정에 반응해 주는 엄마를 보며 수지는 마음 놓고 쉰다.


일곱 살 반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수지의 2026년이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올 한 해도 아이와 더 많은 마음을 나누며 서로 더 가까워지는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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