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중
수지는 지금 45개월인데 아직 기저귀를 못 뗐다. 대소변을 참을 줄도 알고, 신호가 오면 하고 싶다고 말도 한다. 그리고 변기에 앉기는 한다. 대신 기저귀를 하고. 기저귀 없이는 변기에 앉지 않으려고 한다. 꼭 기저귀를 해야만 쉬를 한다. 그동안 이것저것 방법을 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평소에 팬티는 입는다. 다만 쉬가 마려울 땐 기저귀로 바꾼다. 그리고 볼일을 보고 나면 다시 팬티로 갈아입는다. 이렇게 한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수지는 자기가 확신이 들 때, 해야 하는 아이다. 자기가 마음을 먹어야 움직이는 아이다. 이전에 두 번 정도 억지로 변기에 쉬 하게끔 유도하다가 남편과 나 둘 다 식겁했다. 쉬를 참다가 찔끔찔끔 나오는데도 절대 변기에 하지 않으려고 몇 시간을 그대로 참고 엄청 울었다. 기저귀 달라고.
그런 큰 사건 이후에 아, 이 방법은 절대 아니구나 하고 내려놓았다. 이건 억지로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그동안 우리가 너무 느슨하게 편하게 있었나 싶어서 강압적으로도 해봤는데 역효과만 났다. 수지가 변기에 대한 불안함만 더 키운 일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그날 이후로 반성하고, 그냥 아이의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수지가 스스로 확신이 들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그렇게 기다리다가 유치원 가기 전에는 기저귀를 뗐으면 했는데 안됐다. 그리고 유치원을 가는 지금도 수지는 기저귀를 챙겨간다. 수지 반에서 유일하게 수지만. 다른 애들이 화장실에 가서 쉬 하는 걸 보면 기저귀를 하던 애들도 창피함을 느끼고 금방 뗀다고 선생님들은 이야기했지만. 수지는 달랐다.
다른 애들이 수지는 기저귀 왜 하냐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애들이 화장실 가서 쉬하는 걸 봐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자기의 길만 가는 아이다.
이런 수지를 보며 언제나 기저귀 떼는 게 마음에 숙제처럼 있었다. 수개월을 기다리고 참아온 이 걱정이 오늘 남편 앞에서 눈물로 터졌다.
이 고민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으려고, 수지를 믿고 기다리려고 애쓰고 애쓰며 버틴 시간. 정말 오래 기다렸는데 아직 아무 응답이 없는 수지를 바라보며, 이대로 있는 게 맞는 건지, 아님 다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건지, 상담이라도 받으러 가봐야 하는 건지, 제3자인 다른 사람들은 때가 되면 다 한다고 걱정 말라고 하지만, 당사자인 나는 수지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느린 것만 보였다.
주변에 우리 애도 늦게 뗐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수지보다 늦은 애는 없었다.
이런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 비교하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기에 그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모른척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할수록 내 마음에 있던 고민은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 수지는 언제 기저귀를 떼나 하는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언젠가는 떼겠지 학교 들어가기 전엔 떼겠지 하는데 그날이 너무 멀게 느껴지고, 마음은 답답했다.
옆에 있는 남편은 수지 기저귀 떼기에 대해 모든 걸 편하게 내려놓은 듯이 말했다. 수지가 다른 애들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나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며, 기저귀 늦게 떼는 게 뭐가 문제냐며, 그저 건강하기만 하다면 평생 기저귀 해도 자기가 기저귀 값 벌겠다느니 이런 얘길 했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나의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난 또다시 아, 내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구나 하고 또 애썼다. 올라오는 마음을 누르며.
나는 사실 남편 같은 마음이 안 들었다. 당연히 건강한 게 가장 좋지만, 평생 기저귀를 해도 괜찮다느니 이런 생각은 나와 정말 달랐다. 수지를 전적으로 믿는 마음에서인지, 언젠간 알아서 떼겠지 하고 다 내려놓고 기다리는 것인지, 남편이 나와는 다른 마음에 좀 답답했다.
그리고 수지를 보며 ‘그래 수지는 한다 하면 하는 애야, 억지로 한다고 절대 되는 게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 마음 깊숙이에 넣어둔 이 고민을 숨기고 참고, 올라오는 생각을 애써 밀어내다 보니 마음이 곪았나 보다.
오늘 어쩌다 기저귀 떼기에 대한 글을 보다가 자극이 와서 남편에게 이런 문제 인식이 된다고 상담을 받으러 가봐야 하나 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기저귀에 대해 길고 긴 대화가 오갔다. 남편은 나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자기도 나처럼 이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네가 나에게 수지에게 억지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려주었다. 그리고 상담하러 가는 건 좀 다른 문제다, 좀 더 지켜보자, 지금 간다는 건 너무 성급하다, 꼭 가고 싶다면 기한을 정해보자, 수지가 이 기한까지 못 떼면 가보자고.
그리고 남편은 기저귀를 못 떼는 게 왜 문제인 거냐고, 기저귀를 못 떼면 무슨 큰일이 생기는 거냐고 나에게 되묻는데 대답할 말이 없었다. 기저귀 지금 못 떼는 게 왜 문제인가.
내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남편이 다른 애들은 다 뗐는데 수지만 못하니까 비교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정곡을 찔려서 마음이 아팠다.
진짜 솔직한 내 마음은 ‘왜 수지는 기저귀를 못 떼는 거야, 다른 애들은 이미 다 뗐는데 왜 이렇게 오래도록 기저귀를 못 떼고 있는 거야’ 하는 마음이었다.
쪽쪽이도 일찍 떼고, 우유도 스스로 일찍 떼고, 말도 빨리 한 수지인데, 기저귀 떼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기저귀를 못 떼고 있는 수지를 보며 부모인 내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내가 너무 편하게 놓고 있는 것인가, 너무 느슨하게 하고 있는 것인가. 전혀 변기에 쉬할 생각이 없는데. 늘 기저귀만 찾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문제에 대한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인가. 나에게 있다면 어떻게든 바꾸고 싶은데.
오늘 남편과 대화하면서 내 안에 있던 이런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도 그동안 힘들었던 건지 말을 하다가 눈물이 나왔다. 나 왜 이렇게 서럽고 힘들었니. 아이 다 키운 분들이 보면 이게 무슨 큰 문제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게 큰 문제처럼 보인다. 기저귀를 못 뗀 채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마음이 무거웠고, 수지를 챙겨주실 선생님께도 괜히 죄송스럽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혹여나 수지가 기저귀를 하는 것 때문에 서러움을 당하거나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울컥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말을 하다가 그동안의 고민과 힘듦이 쌓였던 감정이 다 터져서 울었다. 눈물이 터지는 나를 보며 나 자신도 놀랐다. 나 왜 울고 있지..? 내가 울 줄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울분을 토하며 속마음을 다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오히려 이 힘듦을 털어놓고 나서 기저귀 떼기에 대한 글이나 영상은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이 걱정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달만이라도 걱정 안 하고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난 오히려 후련해졌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내가 마음에 돌을 던진 건지, ‘45개월 기저귀 못 떼는 아이’ 글도 찾아보고 영상도 열심히 찾아봤다. 남편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해결 방법에 집중했다. 이게 왜 문제인지 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알아보며 수지의 배변 훈련에 조금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오늘 수지가 처음으로 “나 이제 변기에 쉬할 거야”라고 말했다. (아직 성공은 못했다. 그러나!) 그동안엔 항상 “나 조금 있다가 기저귀 빠이빠이 할 거야”라는 이야기만 했다. 그런데 변기에 쉬 할 거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수지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가 큰마음을 먹고 자기도 나름의 노력을 한다는 표현이었다. 단지 아직 변기가 어색하고 불안함이 있어 바로 편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수지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이 속도가 아주 더디고
아주 조금씩 나가고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방향이다.
수지는 기저귀를 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엄마인 내가 원하는 시기에 떼지는 못하더라도, 수지의 시기에 언젠가 분명히 떼게 돼있다.
오늘 수지는 팬티를 안 입고 변기에도 앉아 보았다. 변기에 쉬를 아직 하진 못했지만, 늘 기저귀를 하고 변기에 앉던 수지에게 변화가 왔다.
변기에 앉아있어도 쉬가 안 나오자, 기저귀를 찾는 수지에게 남편이 기저귀 가운데에 구멍을 내서 입혔다. 그랬더니 수지가 앉아서 쉬를 하는데 변기에 쉬가 떨어졌다.
수지는 변기통에 자기 쉬를 보고 좋아했다. 내가 여기 쉬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수지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그리고 수지는 자기가 쉬한 통을 가지고 화장실 변기에 가서 버리고 물을 내리고 빠이빠이 했다. 이렇게 오늘 저녁에 두 번 쉬를 했다.
5살이지만 자기주장이 꽤 강하고, 한 고집하는 수지가 이렇게 했다는 것은 나름 큰 도전이었다. 수지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옆에서 보는 우리도 힘들지만 이 과정을 이겨내야 하는 본인 스스로가 아마 제일 힘들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수지는 유난히 기저귀를 계속 찾고, 기저귀에 배변을 해야 편안함을 느낀다. 애착인 것 같기도 하다. 정말 기저귀 떼기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수지가 조금씩 도전하고 있다. 자기만의 노력을 하고 있는 수지가 기특하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말에 조금씩 이끌려오는 수지가 고맙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 어서, 싫은 건 싫다고 하고 하기 싫은 건 절대 안 하려고 하는데, 기저귀 안 하고 변기에 앉고, 기저귀 구멍 내서 변기통에 쉬도 하고, 이것만 해도 얼마나 대견한 지.
기저귀 쉽게 뗐다는 아이들과 수지는 다르다. 모든 아이는 각자의 고유함이 있고 자기의 때가 다르다. 비교하지 말자. 수지는 수지다. 이러다가 50개월 넘어서 기저귀 떼는 역사를 가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역사가 만들어진다 해도, 수지는 지금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니 늦더라도 목표지점에 도착은 할 것이다.
나는 오늘 한바탕 울고, 속에 꽁꽁 싸매고 참고 있던 마음을 터뜨리고 나니 조금 후련해졌다. 마음에 고름이 터진 것 같다. 터지고 나니 시원하다.
이 걱정은 멈추려고 한다. 앞으로 또 마음이 요동치는 날이 오기도 하겠지만, 그럴 땐 ‘아 나에게 태풍이 잠시 왔다 지나가겠구나’ 하고 생각하려고 한다. 태풍은 거세게 몰아치지만 그래도 며칠 있다가 사라지니까. 잠시 머물렀다 가는 스쳐가는 태풍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수지의 노력에 같이 힘을 더하고, 변기 앉는 것만 해도 칭찬을 많이 해주고 격려할 거다.
수지의 기저귀 떼기 위한 과정에서 내 마음이 녹아내린다. 힘들어서 녹아내리고, 기다리다 처져서 녹아내리고, 참다가 녹아내린다. 그래도 모든 고난은 지나고 나면 성장한다고 했다. 고난을 통해서 마음 근육이 더 단단해지고 면역력도 생기고 딱딱한 마음에 굳은살이 벗겨지고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나도 딱딱하게 굳어있던 내 관념이 무너지는 중이다. 무너지고 다시 새살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조금씩.
수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 ‘나 변기에 쉬할 거야.’
이날은 기념해야 한다. 그래서 기록을 남긴다.
수지의 기저귀 떼기 여정이 힘들어도, 힘든 거 다 겪으면서 한번 지나가보자. 그리고 기저귀 못 뗀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쁘게 잘 성장하고 있는 수지에게 더 집중하자.
걱정거리 하나가 지금의 행복을 집어삼키도록 놔두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