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음식으로 사랑의 흔적을 남긴다
지난 일요일엔 아이와 같이 친정에 가서 오후시간을 보냈다. 그날 친정엄마는 특별히 김밥을 만들어 놓으셨다.
내 동생이 김밥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엄마는 장을 보셨고, 마침 나와 수지도 집에 온다고 해서 우리 먹을 것까지 넉넉하게 만드셨다. 울 엄마 김밥이 참 맛있는데, 오랜만에 엄마표 김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친정 가는 길이 소풍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수지도 할머니가 김밥을 만들어 놓았다는 말에 먹고 싶다며 신나게 같이 갔다.
점심시간에 도착하니, 엄마가 정성스럽게 싼 김밥을 먹기 좋게 락앤락 통에 담아 두셨다. 수지 김밥은 미니어처만한 작은 사이즈로 따로 담아두셨다. 수지의 한입에 딱 적당한 사이즈로 만든 작은 김밥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작고 귀엽게 만들었을까’ 감탄하며 보게 되었다.
그렇게 감탄을 하며 기대감을 가지고 엄마의 김밥을 입에 넣는 순간, ‘아 그래 이런 맛이었지!’ 하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 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정말 엄마스러웠다. 엄마의 김밥은 딱 엄마의 성격을 닮았다. 먹으면서, ‘참 울 엄마 김밥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을 기회가 자주 없지만, 결혼 전에 같이 살 때는 엄마의 밥을 먹었다. 거의 30년을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 맛에 길들여져서, 그 당시 먹을 때는 잘 몰랐는데 결혼하고 나서 오랜만에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먹으면 음식에서 엄마의 향이 느껴진다. 엄마의 손길, 엄마의 취향, 엄마의 성격이 음식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어느 순간 엄마가 해주시는 밥이 그냥 밥이 아니라 엄마의 세월을 남겨놓은 흔적이란 마음이 들었다.
지금 누군가가 곁에 없어도, 그 사람의 흔적을 보면 그 사람이 기억나듯이, 엄마의 음식도 그런 흔적이었다.
엄마가 새벽 일찍 나가는 아빠의 도시락을
몇 십 년 동안 부지런히 싸고,
삼 남매의 밥을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매일 열심히 만들어주신 그 사랑의 흔적.
그 생각이 드니, 지금 엄마가 내 옆에 있는데도 엄마가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엄마의 김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엄마 집에 와서 엄마가 만든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지금의 이 행복을 충분히 마음껏 누려야지.
수지도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미니 김밥을 오물오물 잘 먹었다. 수지는 오후 내내 노는 동안 김밥을 중간중간 계속 주워 먹더니, 한통에 담겨 있던 자기 몫의 김밥을 다 먹었다.
맛에 민감한 수지는 자기 입에 맛이 없으면 안 먹는데 할머니 김밥이 입맛에 잘 맞았나 보다. 아이 입맛에도 어른 입맛에도 딱인 울 엄마표 김밥이다.
김밥 하나만 먹어도 참 맛있고 배불렀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오후엔 에너지 넘치는 수지와 잘 놀았다. 점심에 먹은 김밥은 저녁까지 배가 안고플 정도로 든든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김밥 먹고 싶다는 말에 새벽부터 김밥을 싼 엄마의 사랑이 들어가니, 그 김밥은 더 배부를 수밖에 없나 보다. 엄마의 밥은 몸도 마음도 사랑과 영양으로 꽉 채워준다.
이 날 친정에서 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도 부르고 마음도 든든했다.
친정에 가면 사랑으로 충전하고,
나도 내 엄마 품에서
편히 쉬다가 오는 것 같다.
내 집에선 내 아이의 엄마로 있다가,
친정 가서 나도 ‘엄마의 딸로 있는’
그 시간이 참 좋다.
태어난 지 5년 된 내 아이만 봐도 이렇게 사랑이 넘치고 너무 이쁜데, 30여 년 동안 딸을 키우며 여러 일을 다 겪은 엄마의 깊고 싶은 사랑은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다 알지 못해도 그 깊은 사랑이 나를 품어주고 안아주니, 친정에 갈 때마다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낀다.
나도 엄마가 되고 조금 철이 든 건지, 엄마의 그 사랑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달까. 엄마와 있으며 내 마음이 지금 참 편안하구나, 참 좋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친정엄마의 이 사랑은 내 아이에게까지 전해진다. 사랑엔 한계가 없구나 하는 걸 느낀다.
사랑이 전해지고 또 전해져서,
그 사랑을 받은 내 아이도 언젠가 커서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되어있겠지.
김밥 하나에서 시작한 생각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김밥 하나에서도 이런 사랑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역시, 사랑하며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