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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Nov 21. 2024

매일의 동그란 산책

* 이번 제목은 김신지 작가님의 책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의 목차에서 빌려온 제목입니다.



나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산책을 한다.

회사 앞에 강변을 따라 쭉 뻗은 산책로가 있어서 매일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걷는다.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풍경을 보는 것 같지만 신기한 건 매일 다른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매일 봐도 새롭고, 항상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내가 갈 때마다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나무와 풀, 강, 꽃들에 왠지 모를 위안을 받는다.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은 나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것 같다. 내 모습이 어떻든, 늘 묵묵히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늘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해가고,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분위기가 만연한 이 사회 속에서 천천히 느긋하게, 변함없이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자연은 오히려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런 자연을 보며 산책을 하면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천천히 가도 괜찮아.' 하는 마음이 든다. 자연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산책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은 편안함으로만 채워진다. 이 편안함은 다른 어떤 걸로도 대체될 수 없는 자연만이 줄 수 있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이 마음에 동그라미를 쳐둔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천천히 가도 괜찮아.'  




그리고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매일 보는 이 풍경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어제와 다른 오늘의 작은 변화들도 알아챈다.


'어제는 나뭇잎이 이만큼이나 달려있었는데, 오늘은 하룻사이에 이만큼이나 떨어졌네.나뭇잎 색깔이 이렇게 붉어졌네, 노래졌네. 오늘은 어제보다 새소리가 많이 들리네.'


이런 작은 변화들을 알아차릴 때마다, 보물 찾기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은 듯 괜히 기쁜 마음이 든다. 아마 내가 매일 걷지 않고, 같은 길이 아닌 매번 다른 길을 걸었다면 몰랐을 보물이다. 내가 발견한 보물에도 동그라미를 쳐둔다. 그 동그라미는 사진이기도 하고, 기록이기도 하다.


책을 읽을 때, 공부를 할 때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긋거나 표시를 하는 것처럼 나는 산책을 하며 나만의 동그라미로 표시를 한다.


아주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어제 못 봤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되면 매우 기쁜 마음으로 큰 동그라미를 친다. '아, 너무 좋다'를 외치며.


내가 하는 혼잣말 중에 '아 좋다'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산책을 하다 보면 '좋다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산책이 주는 선물 중에 하나는 좋은 마음과 좋은 말이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자연을 보는 사람의 입에서는 좋은 말이 한없이 나오고, 좋은 마음이 풍성하게 넘친다.


내가 뱉은 좋은 말은 나에게 돌아온다. 내가 한 혼잣말은 더더욱 그렇다. 혼잣말은 나만 듣고 나에게 바로 돌아온다. 자연을 보며 쉴 새 없이 감탄하는 혼잣말은 나에게 들려주는 좋은 말이 된다.


그래서 산책을 하면, 산책을 하기 전과 확실히 다른 마음을 느낀다. 산책을 하는 내내 나에게 좋은 말을 들려주고, 좋은걸 본 내 마음은 '좋음'으로 가득해진다.

'좋음'으로 두둑해진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엔 늘 행복을 느낀다. 이러니 산책을 안 할 수 없다.




아무 말 없는 자연은 나의 기쁨도, 그리고 외로움과 힘듦도 다 안아준다. 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킨 자연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넓고 깊은 품을 가졌다. 내가 가진 힘듦을 안고 자연으로 나가기만 해도 왠지 모를 위안을 얻는다.


자연 앞에 내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을 때 오는 자유함과 가벼움. 이 경험을 하고 나면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복잡한 생각으로 심난해지면 자연으로 나가게 된다. 자연은 내 문제에 정답을 주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들어주고 가만히 나를 봐준다. 그리고 알게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봐줄 수 있는 누군가였구나.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구나 하고.


자연은 나에게 '이건 아니야, 이건 틀렸어' 하는 엑스를 말하지 않는다. 자연은 나에게 '그래도 괜찮아. 그것도 맞아' 하고 동그라미를 쳐준다. 자연 속에선 모든 게 동그라미다. 그래서 나의 산책은 동그라미로 가득하다.


오늘도 산책을 하며 어떤 동그라미를 발견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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