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 후엔 항상 아이와 데이트를 합니다
모처럼 비가 그치고 맑은 오늘, 수지와 신나게 하원했다. 거의 2주 동안 비가 온 것 같은데,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며 우산 없이 하원하니 마음이 가볍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 수지는 하원하고 나서 기분이 안 좋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하원할 때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오후 간식을 먹고 수지가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는데 평소엔 보통 손만 씻고 빨리 나오는데, 오늘따라 수지가 다른 친구랑 안에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수지의 기저귀를 갈아주려고(아직 기저귀를 못 뗐다..) “수지야 어서 나와~ 기저귀 갈자”라고 했는데, 화장실에서 더 놀고 싶은 수지는 선생님이 나오라고 하는 소리에 삐쳐서 엄마 보고 싶다며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한다. 이게 바로 하원하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셨다.
이런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고 말하는 수지가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수지야 그러면 엄마가 수지 기분 좋아지게 젤리 하나 줄까?”라고 하니, 수지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응”이라고 한다. 그래서 손에 젤리를 쥐어주었고 수지는 얼른 받아서 입속에 넣었다.
내가 수지에게 “수지야 이제 기분이 좋아졌어?” 하니까, 수지가 “응, 기분이 나아졌어”라고 말했다. 자기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좋다고, 좋으면 좋다고, 그리고 기분이 나아졌다고까지 말하는 아이가 새삼 신기하고 웃기기도 하고 많이 컸구나 싶었다. 이렇게 못하는 말이 없고, 자기의 기분과 감정도 잘 표현하는 수지와 대화하면 이제 정말 친구랑 대화하는 것 같다.
그리고 수지랑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하늘이 너무 이뻐서, “수지야 하늘이 너무 이뻐서 엄마 기분이 좋아”라고 말했다. 그러니 수지도 자기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파란 하늘을 보며 귀여운 아이와 귀여운 대화를 하며 걷는 그 길이 행복했다.
수지는 하원하고 나면 그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도 얘기해 준다. 오늘 뭐 했고, 누가 어떻게 했다는 둥 이런 자기의 일상을 쫑알쫑알 말하는 수지가 너무 귀엽다. 내가 수지 곁에 없었던 시간의 일을 아이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게 즐겁다.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아이가 너무 이뻐서 일부러 더 크게 리액션 하며 들어준다. 귀여운 수지는 엄마 반응이 클수록 더 좋아한다.
그리고 수지가 도너츠가 먹고 싶다고 해서 도너츠 가게에 들러서 꽈배기를 샀다. 우리가 좋아하는 꽈배기가 있다. 설탕 묻힌 꽈배기의 달달함의 맛을 아는 수지는 가끔 도너츠 가게 근처를 지나가게 되면 항상 도너츠 먹고 싶다고 말한다. 마침 오늘 그 가게 근처를 지나게 되었고, 꽈배기를 사서 수지와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아이와 둘이 꽈배기를 먹는다고 벤치에 앉아있으니, 뭔가 나도 어린시절로 되돌아가 수지가 내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수지와 있다보면 종종 이런 느낌을 받을때가 있는데, 아이가 나를 나의 유년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 같다.
같이 손과 입에 설탕 묻혀가며 꽈배기를 먹는데 그 순간이 왜이리 즐겁고 행복한지. 내 옆에서 오물오물 귀엽게 꽈배기를 먹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꽈배기를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땅에 개미도 구경하고 벤치 앞 풀밭에서 날아다니는 나비도 보며 오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아이와 벤치에서 같이 꽈배기를 먹은 그 순간이 그냥 참 행복해서, 오래도록 내 마음에 이 장면이 남아있을 것 같다.
꽈배기를 먹고 난 다음코스는 마트 앞, 양말을 판매하는 가판대에 있는 다리 마네킹을 보러 갔다. 집 근처 마트에서 양말을 문앞 가판대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양말을 신은 마네킹 발이 무릎까지만 잘려서(?)양말을 신고선 뒤집어져 있다.
수지가 이 마네킹 다리를 처음 보고 꽤나 큰 충격을 받은것 같다. 그리고 좀 무섭기도 한것 같다. 무서워서 가까이가서는 절대 못보는데,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걸 좋아한다. 요즘 이 양말신은 마네킹에 빠져서 매일 마네킹 얘기를 빠지지 않고 한다.
하루는 내가 발목양말을 신고 잤다가, 아침에 수지가 내 다리를 보고 마네킹이라고 무섭다고 엉엉 울어서 한참 달래기도 했다. 그렇게 무섭다고 하면서도, 매일 마네킹을 보러 가자고 한다. 그리고 항상 말한다. “가까이가면 안돼, 멀리서 볼거야” 라고.
그래서 오늘도 아이가 좋아하는 양말신은 마네킹을 한참 바라보다가, “안녕 잘 있어” 하고 돌아왔다. 아이랑 마트 입구 문앞에서 마네킹 다리만 보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엥?’ 하는 표정으로 한번씩 보고 지나간다. 그래도 뭐 어때, 내 아이가 좋다는데. 수지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이의 시선으로 같이 바라본다. 하도 마네킹을 자주 봐서 정이 들 정도다.
이렇게 마네킹 관람을 마지막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비오는날엔 아이와 하원하고 곧바로 집에 와야 했는데, 오랜만에 하원하고 산책을 하고 데이트를 하니 이야기거리가 많아진다. 아이와 같이 먹고, 보고, 느끼는 모든 순간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오늘도 우리 수지는 엄마의 마음을 알록달록 귀여운 색으로 색칠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