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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동안 다이어리를 쓰면서 깨달은 것

나 자신으로 온전히 사는 힘

by 행복수집가

나는 거의 20년 동안 매일 다이어리를 적고 있다.

다이어리에는 일상, 기억하고 싶은 날들, 잊지 못할 날들, 지나다가 운명처럼 만난 좋은 글이나 마음에 깊게 와닿은 문구, 또는 누군가에게 들은 좋은 말들이 가득하다. 다이어리는 나에 대해 모든 게 기록돼 있는 ‘내 삶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이어리도 나와 같이 성장해 왔다. 20대 초반에 적은 내용, 20대 후반에 적은 내용, 그리고 30대가 돼서 적은 내용과 아이를 낳은 후 적은 내용들을 보면 분명히 변화가 있다.


다이어리를 보다 보면 내가 당시 그 시기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무엇이 그 시절 내 삶의 주제였는지 보인다.




다이어리를 쓰는 시간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글을 쓰면서 오늘의 내 삶을 돌아보고, 성찰과 발전으로 향하는 시간이다. 매일 쓰는 건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하나의 작은 일부가 아니라 그냥 내 삶이 되었다.


그날의 기록, 순간의 감정,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 들어진 생각 등. 이 모든 것들을 백지에 쏟아내면서 나 자신을 만났다.


내 외모는 거울을 보고 확인하고, 나의 내면은 내가 쓴 기록들을 보며 확인한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쏟아낸 글을 통해서 나를 만난다.


내 감정과, 내 마음 상태를 알기에 글쓰기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내가 다이어리를 쓰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노트 다이어리, 한 가지는 아이패드 메모장에 하는 기록이다. 두 가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아이패드 메모장에는 하루의 시작부터 저녁까지 있었던 일과 내가 느낀 감정을 좀 더 자세히 적는다. 나는 손으로 쓰는 것보다 키보드로 쓰는 게 좀 더 편해서, 키보드로 글을 쓰면 내가 생각하는 속도에 맞춰 쓸 수 있어서 내 안에 것들을 편하게 마구 쏟아낸다.


내 마음에 어떤 찌꺼기도 남지 않게, 남김없이 쏟아낸다.


그리고 노트 다이어리에는 하루의 포인트가 되는 일들을 요약해서 적는다. 한번 보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도록.


사실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날이 많다. 그래도 ‘내 하루’라는 대제목에 소제목이 될만한 그런 일들을 적어본다. 그리고 그 일을 겪으며 들어진 감정도 같이 적어 놓는다. ‘좋았다, 감사했다, 힘들었다, 다행이다’ 같은.


그다음엔 내가 적은 감정에 색깔 펜으로 밑줄을 쳐본다. 그러면 내 감정이 부정적으로 흘렀는지, 긍정적으로 흘렀는지 흐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다이어리에 감정 체크를 하게 된 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하게 됐다. 드라마 내용 중에 의사가 우울증 환자에게 매일 일기를 쓰고, 일기를 쓰고 나서는 다시 읽어보며 자신이 느낀 부정적 감정에 줄을 쳐보라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왜, 어디서 부정적 감정을 많이 느끼는지 알 수 있다고.


드라마 속에 나온 우울증 환자는 일기를 쓰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점점 치유가 된다. 치유는 자신의 상태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아픔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서 동시에 나아지는 것이다.


나도 올해부터는 이렇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는 매일 쓰고 있었으니 이대로 꾸준히 하고, 내가 쓴 일기에 내 감정 체크하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내가 그날 하루에 어떤 감정을 느꼈고, 지금 내가 힘든 상태인지 감사한 상태인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확실하게 보였다. 다행히 부정적인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 적이 더 많다. 가끔 ‘힘들었다 ‘라고 적은 적도 있다. 그때는 ’아 내가 오늘 힘들었구나, 맞아 힘들었지.‘ 하고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다.


힘들었다, 또는 좋았다는 감정에 매몰되거나 오래 머무르지 않고 그렇게 지난 감정은 그랬구나 하고 흘려보낸다. 내 감정을 체크하고 돌아보는 것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는 것’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마음 청소를 매일 깨끗이 하는 느낌이다. 무엇 하나 남지 않도록, 청소하고 정리하고 버린다.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린다.


이렇게 하다 보니 마음이 가볍고, 매일 정리된 마음으로 하루 마무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내 다이어리엔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한 내용은 없다. 오늘 내가 한 일, 내가 해낸 일에 대한 것들만 있다. 계획이나 꿈을 적으면서 그걸 이루기 위한 노력에 더 힘을 들일 수도 있지만 진짜 원하는 게 있다면 일단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꿈만 적다 보면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나 자신이 더 크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의 내가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난 굳이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냥 ‘지금의 나’에 대해 더 집중하고 싶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이 아니라, ‘내가 해낸 일’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이 세상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큰 기여를 한 게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아주 소소하게나마 무언가 내가 해낸 일들에 집중하는 게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더 집중하면 지금 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오늘 무언가 해낸 내가 내일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이걸 해낸 내가 오늘도 이걸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 다이어리에 적은 글들은 내 삶을 위하고 나를 응원한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격려하고,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방향을 보여주기도 하고, 성찰과 발전의 길로 나를 이끈다.


내가 살아갈 힘을 나 자신에게서 얻는다. 내 안에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타인과 협력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지만, 진정 나를 좋게 하는 삶의 힘은 ’나 자신’ 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기록할수록 이 힘이 더 강해진다. 기록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내 안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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