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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Mar 25. 2016

나는 자갈치역에 산다

국제 시장과 깡통시장이 있는 남포동

처음 집을 구하기 위해 부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예상과는 다른 부산의 모습에 꽤나 실망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부산은 해운대와 센텀시티 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부산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이 부산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었던 것이다. 남포동과 자갈치역 부근에는 높은 빌딩도 없었고 조금은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일하는 나를 위해 내가 도착하기 전 날인 금요일에 부산에 미리 도착해서 내가 볼 집들을 추려놓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내가 본 집이 엄마가 본 집 중에 가장 괜찮다는 집이었는데, 그 집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나는 이 집을 보자마자 다른 집을 보지 않고 한 번에 결정했다.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과도 가깝고 남포동도 걸어서 5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고, 신축이라 방이 넓고 쾌적했으며 옵션도 다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토성동인데, 부산에 살지 않는 내 친구들에게 토성동은 너무 낯선 곳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사는 곳을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자갈치역으로 소개하게 되었다.




나는 자갈치역에 산다.


자갈치 시장과 남포동,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도보 거리에 있으며, 마을버스를 타면 금세 감천 문화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남포동 주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부산을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리게 되는 곳이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이 있는 남포동 일 것이다. 남포동은 중구로를 중심으로 두개의 시장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자갈치역 쪽이 부평 깡통시장, 그리고 남포역 쪽이 영화에도 나와서 유명해진 국제시장이다.


국제시장은 의류와 가방, 액세서리, 천 등이 주요 품목이다. 뿐만 아니라 수건, 조명, 문구류, 이불, 주방 용품 등 없는 물건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남포동을 검색하면 종종 목욕탕 의자에 앉아 납작 만두, 찌짐(전), 오징어무침을 먹는 사진이 나오는데 이 곳 역시 국제시장 쪽에 위치하고 있다.


부산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중 하나인 씨앗호떡을 먹기 위해 노점을 찾으면, 특정 노점에만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맛은 무차별하니 아무 곳에서나 먹어도 상관없다.

 
씨앗 호떡

씨앗호떡은 호떡에 씨앗이 들어가 있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맛이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먹으면 참 잘 어울린다.


부산의 노점 음식으로 씨앗호떡 못지않게 인기가 있는 것이 떡 어묵이다. 가래떡이 꼬치에 꽂혀 어묵 국물에 담겨 있는데, 밍밍할 것 같지만 어묵 국물이 잘 배어 있고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떡 어묵


부평 깡통시장은 수입 식품과 캐릭터 상품, 주방 용품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유명한 거인통닭과 이가네 떡볶이가 있는 곳이다. 비빔당면, 빈대떡, 파전, 떡볶이, 유부주머니 등 각종 간식거리로 출출한 배를 달래기 좋고, 저렴한 가격에 목을 축이기도 좋은 곳이다.


주말의 남포동은 크리스마스이브의 명동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다. 한 마디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하지만 붐비는 시장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면 한적한 길이 있으니, 사람에 치여 구경이 너무 힘들 때는 조금 피해서 걷는 것도 괜찮다.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은 오후 6시 이후부터는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니 방문 시 참고해야 한다.

하지만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깡통시장 한편에 부평깡통야시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영업이 끝난 상점 앞을 각종 먹거리 노점들이 점령하면서 야식을 해결하기 좋은 곳으로 변신한다. 물방울 떡, 초코 바나나, 미고랭, 낙지 호롱, 빠네 수프 등 먹거리가 가득하다.  




거인통닭을 매장에서 먹기 위해서는 방문하여 전화번호 뒷자리를 적고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웨이팅 예상 시간도 없고, 기본적으로 1시간 반은 밖에서 대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힘들게 들어갔다고 해도 진정한 기다림은 이때부터다. 치킨을 먹는 사람들을 눈 앞에 두고 30~40분을 기다려야 치킨이 나온다.


거인통닭

양은 3인 1 닭이 적당할 정도로 많은 양이며,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맛도 있다. 작은 조각으로 크리스피 한 튀김옷이 매력적인데, 부산대에서 유명한 뉴 숯불 치킨도 비슷한 스타일이다. 부산 치킨의 공통적인 특징은 튀김옷에서 카레향이 난다는 점이다. 거인통닭에서 치킨을 포장하려면 미리 전화를 하면 되는데, 포장의 경우 기본적으로 대기시간이 세 시간 정도 된다. 언제부턴가 점심 이후에 전화를 하면 포장이 마감되었다고 하는 경우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내가 일 년 동안 보아온 남포동 일대는 철저하게 관광지다. 음식의 맛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하지 말고, 줄이 길게 늘어선 곳에 대해 무작정 신뢰하지도 말아야 한다.

줄이 긴 곳 중 대부분은 평소에는 전혀 줄을 서지 않지만 관광객이 오는 주말에만 줄을 서는 곳이기 때문이다.


편한 신발과 현금, 그리고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남포동을 방문한다면 충분히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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