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풍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게 만들었다.

by 사회대년생

나는 통풍이라는 병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요리를 참 좋아했고 유명한 호텔에 합격도 했었다. 그때 1차 서류 면접 합격을 하고 연락이 왔을 때 그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 문자를 받고 얼마 안돼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호텔담당자의 연락이었고 그는 본인소개를 간단히 한 뒤 문자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선 전화를 끊었다. 잘 안 믿겼다. 내가 뭐라고 저런 멋진 호텔에서 면접 연락이 온단 말인가.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묻는 할머니 말에 답을 해야 했다. 누워서 과일을 먹다가 갑자기 전화를 받더니 기쁜 미소와 함께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설명드려야 했다.


자초지종 설명을 해드리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너무 큰 기대는 말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서도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젊은 패기와 확실한 비전이 나한테는 있으니 내 앞길을 그 누구도 막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면접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설렘은 안고 기다리니 면접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면접 이틀 전 아침에 눈을 뜨며 일어나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왼발에 체중을 실어 바닥에 디디면 쓰러질 정도로 아플 것이라는 걸 느끼고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추석 당일이라 응급실 밖에 갈 수 없었고 집 앞 택시를 타기에도 벅찬 몸상태지만 겨우겨우 택시에 몸을 실어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뒤 깽깽이를 뛰며 병원 문을 여니 간호사들은 나를 쳐다보기만 하고선 아무런 말도 대처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문에서 데스크로 깽깽이를 뛰며 제발 휠체어 좀 달라고 하니 그제야 남자 간호사 한 명이 움직이고선 휠체어를 끌고 왔다. 휠체어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앞에 간호사에게 말을 하려니 저기로 가서 기다리라며 손가락을 가리키고선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손가락이 향한 방향에 기둥이 있길래 그 기둥 앞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흐리고 나서 한 여자 간호사가 오더니 증상을 묻고 다시 손가락을 가리키며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으라고 했다. 그 뒤는 어떻게 굴려가는지 이미 알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상황. 소염제를 맞고 진통제를 맞는, 그 이상 뭘 더 할 수 없는 그 상황이 너무나 익숙하다. 소염진통제를 맞고도 호전되지 않아 별 수 없이 응급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했다. 밥도 편히 먹을 수 없고 물도 화장실도 편히 갈 수 없는 상황, 짜증이 확 몰려왔다. 세상 모든게 나를 막아서는 것 같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다음날은 괜찮아지겠지, 그다음 날은 괜찮아질거야 하며 응급실을 간 다음날에도 병원에 들러 진통제와 소염제를 맞았다. 그렇게 결국 면접날이 오고야 말았다.


면접날 당일에 나는 해운대로 지하철을 통해 이동해야 했다. 문제는 그날도 왼쪽발이 시원치 않았다는 것인데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선 어떻게든 면접장으로 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집 밖을 나섰다. 준비한 양복은 움직이는데 불편하고 구두는 발이 아파 들어가지도 않는지라 그대로 들고 지하철을 탔어야 했는데 그렇게 무거워진 양손과 함께 내 마음도 무거워져 갔다.


어찌저찌 무거운 몸을 이끌며 해운대역에 도착하고서 정해진 면접장소로 향했다. 한발 한발 끌다시피 걷는데 시간이 지나 진통제 약효가 떨어져서인지 몰려오는 통증에 나는 더 이를 꽉 물었다. 합격했으면 좋겠다가 아니고 합격해야만 한다며 기를 쓰며 면접장에 도착했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가 옷을 갈아입는데 다시 한번 가슴이 벅차올랐다. 화장실을 둘러보는데 너무나 멋지고 깨끗한데 또 시원했다. 밖은 여전히 더운 9월 여름 그 더위를 한번에 식혀주는데 전 직장에서 일했을 때가 생각이 문득 생각이 났다.


당시 전 직장에서의 화장실은 성인 남성 2명만 들어가도 꽉 찰 만큼 협소한 공간이었고 휴게실은커녕 손님들 좌석 말고는 마땅히 앉을 곳도, 브레이크타임도 없던지라 땀을 뻘뻘 흘리며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쉬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그곳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 틀림없을 거라 확신하며 양복을 입고 아픈 발에 어떻게든 구두를 쑤셔 넣었다. 그때 나는 살면서 양복을 처음 입어보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조금이나마 통증이 사라지는 듯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선 담장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면접 시간보다 30분 일찍 갔었기에 자리에 앉아 연락받은 대로 시간이 되면 데리러 온다는 말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기다렸다. 그렇게 면접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기다리던 중 담당자가 오고선 면접을 보러 호텔 식당 안에 있는 한 룸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렇게 면접을 보러 걸어가는데 행여 걸어가는 내 발걸음이 어색해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까 싶어 최대한 아픔을 참아가며 자연스레 걸어가려 애썼다.


그때 아픔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아마 머릿속에 스쳐가는 가족들에 기대와 여기까지 오는데 참았던 아픔들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참아야만 했었다. 이후 면접은 큰 어려움 없이 끝났고 집으로 향하는데 몸도 마음도 긴장이 풀어지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집에 도착하는 길 또한 멀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왜인지 가벼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뒤늦게 몰려오는 잠을 청했고 아프던 발은 다음날부터 아픔이 눈 녹듯 사라져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이후 나는 면접 결과만을 기다렸고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호텔 담당자의 연락이었고 위 문자 내용을 다시 상기시키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준 뒤 합격 통보를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언제부터였던가 까먹고 살았었다. 이런 큰 기쁨과 성취감을 느꼈던 때를 말이다. 얼른 가족들에게 전화해 이 사실을 알렸다.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부모님과 행여 떨어져 속상해할 내가 걱정돼 전화 조차 하지 못했던 할머니는 그 소식을 접하고선 눈물을 흘리셨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이후 일은 순조로웠다. 문자에 나와있는 것들을 다 챙기고 정해진 날 회사로 향했고 이후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벌써 이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힘든 업무? 견딜 수 있었다. 직장 내 텃세와 군기? 견딜 수 있었다. 기숙사에 같이 살던 사수에 부조리? 견딜 수 있었다 더한 놈도 봤으니까. 단 한 가지 버티지 못했다. 통풍에 아픔이 정말 견딜 수 없어 나왔다.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통풍 발작이 와 단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달리 변명할 여지없이 나왔다. 단순히 그날 진통제와 소염제를 맞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다. 소염제와 진통제를 맞으면 맞을수록 다음이, 그다음이 더 아프고 오래갔으니까.


차라리 내 의지로 도망쳐 나왔음 내 의지 문제라 생각하겠는데 아파서 좋아하는 일을 놓아야 했던 그 순간은 정말 왼발을 자르고 싶었다. 통풍에 안 좋다는 술과 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술은 원래 안 먹는 데다 고기는 기숙사에서 자취를 하면서 사치였을 뿐 아니라 구내식당에서는 일주일에 고기냄새 한번 맡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출근을 해야 했지만 발이 아팠던 나는 급하게 병원을 찾았고 익숙한 천장과 주사바늘로 흘러들어오는 소염제와 진통제를 맞으며 전화를 걸었다. 내게 합격통보를 해줬던 담장자에게 말이다. 혹시나 통풍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좁은 요식업계에 소문이 날까 두려워 여차저차 변명하며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한달 정도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며 하루하루 계약서를 쓰며 계약직으로 전환한 뒤 정규직 전환을 했어야 했는데 일용직 근로자여서 그런지 퇴사 또한 순조로웠다. 이후 4일 정도 발이 아파 걷지 못했을 거다. 통증이 거의 가라앉아 걸을 수 있게 된 날 담장자에게 출입증을 반납하고 정말 퇴사를 하게 됐다.


사실 그 하루를 못 버텨서 그만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래 하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던 사실을 애써 외면해 왔지만 결국 그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전에 일했던 식당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 아팠다. 많게는 2번 그 강도는 저마다 달랐지만 통풍발작이 계속 왔다. 매번 통풍발작이 오더라도 쉬는 날에 아프기만을 기도하며 출근을 했다. 그렇게 매번 고통을 참아가며 일을 했는데 운 좋게 쉬는 날 아파서 소염진통제를 맞더라도 그 다음날 출근 또한 고통이 가시질 않아 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일어날 때마다 발을 바닥에 디뎌보며 오늘은 다행히 아프지 않음에 감사해야 했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아니면 사실 내 의지 문제였을 수도 있다. 애써 아니라고 했지만 이런 삶에 지쳐서, 매일 아플까 두려워 아침 눈 뜨는게 무섭던 그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이 앞섰다. 가족들한테는 뭐라고 이야기하지? 나는 앞으로 뭐 먹고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들 때문에 순간 숨이 막혀왔다. 막혀오는 숨을 한숨으로 겨우 내뱉고서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와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웠다. 이후 나는 그냥 백수가 되었다. 그것도 건강한 백수가 아닌 아픈 백수로 말이다.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일을 하고 말고가 돈, 건강이라는 내 인생 가장 중요한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일을 할수록 건강을 잃었고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잃어간다. 나는 이것들 중 저울을 재가며 건강과 돈을 교환해 왔는데 이제는 강제적으로 건강을 챙길 수 밖에 없게됐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면접장까지 걸어갔던 내 모습이 문득 생각났다. 그때 했던 생각이 다시 일어 다짐했다.


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아니?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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