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밤 Jul 11. 2019

만들어져 온, 만들어 낸

느릿한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 가득한 장소

세월이 쌓아 만든 분위기와 흔적은 독특한 형질의 무언가를 가진다.

이름 없는 그 길 또한, 어딘가 어설프지만 고요함이 매력인 그 길 또한 그렇다.



세월을 담은 흔적이 사람을 닮은 골목을 만든다.





6-7년 전에는 삼청동을 굉장히 좋아했다. 나고 자란 곳이라 지극히 익숙함에 절어버린 서울에서 여행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에서도 가장 아끼던 길이었다. 구불구불한 길에 좁은 인도를 따라 걷다 보면 마주하는 소소하고 특색 있는 작은 가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갈 때마다 바뀌는 물건들은 그 가게 만의 특색을 가득 담은 채 인사동의 그것과는 다른, 좀 더 세련되면서도 여전히 투박한 그들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그 길이 좋았다.


어느 날, 당시 그곳을 함께 구경하시던 엄마는 몇 년 전 만해도 가로수길 또한 이러했다며, 지금은 대형 브랜드의 샵들로 가득 해져버린 혹은 며칠 간격으로 매장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그곳을 안타까워하셨다.


당시 엄마의 가로수길을 향한 안타까움은 지금의 내가 삼청동을 떠올릴 때의 그것과 같다. ‘임대’를 써 붙인 곳이 늘어가고 또 빈 가게는 금세 어디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샵이 자리한다.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며 점차 생기를 잃어간다.

변화하는 그 길의 모습을 지켜보자니 그곳에서 쌓은 나의 기억과 추억마저 나날이 변색될까 싶어 잘 찾지 않게 되었다.

그냥 기억 속의 그곳으로 남겨두고 싶어 찾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는 다른 곳을 찾아 나섰다.


마음의 안정과 동시에 적당한 신바람을 줄 수 있을 만한 곳이 없을까. 웬만하면 사람도 좀 없었으면 좋겠고 흔하지 않은 샵들도 간간히 있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그곳만의 분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방금 만들어진 분위기가 아닌, 자연스레 묻어 나오는 무언가가.





계동길

계동은 사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나 2학년이었나, 그 어느 때 전시를 하기 위해 찾았던 곳이다.

그때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길을 탐방하는 것에 큰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곳은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좁은 골목에 불과했지만, 그때 당시에도 슬쩍 구경한 그곳은 어딘가 재미난 분위기가 물씬 나는 듯했다.

투박한 느낌의 가게들이 줄지어 있지만 촌스럽지 않고 너무 예스럽지도 않은 느낌. 그러면서도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그 골목의 느낌이 많이 남아있어 요즘 보기 힘든,  추억을 되살리는 듯한 길이었다.


그러고 나서 일 년 전쯤 다시 이곳을 찾았다. 이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이 인위적이지 않았고 그저 세월의 흐름이 얹어진 느낌이었다. 마냥 유행을 좇아 요즘 뜬다 하는 가게가 생긴 것이 아닌, 젊은 예술가들의 공방이 생기고 트렌드에 맞는 동네 카페들이 몇 개 생겨난 정도.


찬찬히 둘러보며 느낀 이곳의 매력 중 유난히 흥미로웠던 것은,


한 시야 안에 지극히 예스러운 모습과 지극히 트렌디 해 보이는 모습이 담긴다. 꽤나 이질적이다.

이곳은 순간순간 내 시야의 풍경이 모두 그러하다. 북촌을 옆에 두고 있어 빈번히 보이는 기와지붕과 옛 느낌의 양옥집 옆으로 위치한 새로 생겨난 수직 수평의 신식 구조물. 세련된 글씨체로 쓰인 베이커리의 간판과 그 옆 파란색 궁서체로 된 철물점의 간판. 시크하면서도 독특한 소재의 편집샵과 맞은편의 참기름집.

글로 보아도 이질적인 이것들이 한 공간에 심지어 한 시야 안에 담길 정도로 서로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그러나 이 이질감이 불편하지 않다. 그저 매력적이다.  



도로명주소가 아닌 특별한 명칭이 붙어버림과 동시에 대기업의 상점이 모인 길목으로 변해버린 여느 곳들과 달리 아직 동네 주소만으로 일컬어지는 이곳은 지난한 세월과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만이 반영되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이곳만의 분위기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외지인과 현지인의 비율에서 현지인 즉 원주민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 이곳에 담긴 변화의 흐름은 단순히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작은 미용실이 존재하고 소소한 떡볶이 집이 있고 참기름집과 철물점이 있는 이곳.



흔치 않은 컨셉의 흑백 사진관은 골목의 분위기를 가장 대표하여 나타내는 듯하다. 전통의 주제인 전신사조를 기반으로 그 정체성을 나타내는 흑백 사진관은 외관부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길의 가장 특별한 점, 매력은 가게마다 가게 주인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붙어있다는 점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기도 하고 가장 편안한 웃음을 띠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의 정다움과 자연스럽고 독특한 매력을 내비친다. 이러한 소소한 재미는 소소함을 넘어서 그곳만의 대표적인 특징이 되고 그곳의 분위기로까지 이어진다.

아기자기한 소품샵은 홍대 거리가 아닌 이곳에 위치한 탓에 더욱이 희귀성을 띠고 그 분위기가 독보적으로 보인다. 골목에서도 더욱 골목에 있는 이곳들은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공방 옆에 위치해 있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한 공간에 있을 때 만들어지는 독보적인 분위기란. 젊은 예술가들의 세련된 감성으로 꾸며져 있는 공방 또한 이곳에 위치해 그 매력을 부각한다. 전통적인 분위기 사이에 있을 때 더욱 독보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젊은 감성, 그리고 그 젊은 감성을 통해서 살아나는 길의 분위기. 서로가 서로를 돋보이게 만드는 구조를 지닌 듯하다.


적당히 북적이는 길목의 활기, 그리고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원주민들. 이들의 느낌과 분위기는 어느 누구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어떤 대형 브랜드가 오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년의 시간으로 만들어온 그곳만의.





역사박물관에서 성곡미술관까지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살았던 곳이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장소는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향수를 일으키고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 길이 그러하다.

역사박물관에서 성곡미술관까지 이어지는 작은 골목길.

중학교 3학년 시절 등하굣길이었던, 나 혼자 애틋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이 골목은 알고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의 핫한 약속 장소이자 아끼는 산책코스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이 작은 골목은 내 기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보다 훨씬 더 독특한 매력을 내보이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내가 가치를 두는 매력의 기준에 매우 부합하는. 그래서 더 애착을 가졌던 것일까. 역사박물관에서부터 성곡미술관까지 이어지는 이 작은 골목은 어느 곳보다도 이름이 없고 이렇다 내보일 뚜렷한 특색은 없다. 하지만 어느 곳과도 다른 단 하나의 특징이 있으니,


외지인의 때가 묻지 않은 길목이라는 것이다. 이는 독보적인 매력으로 작용한다.

이곳은 조용한 주택지역이지만 그 주택이라는 것의 모양새가 뻔하지 않다. 외교관저 같기도 하고 혹은 그냥 이름 모를 누군가의 집일 수도 있는 그 주택들은 끊임없는 공사를 통해 하나씩 특색 있는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개인의 취향이 물씬 담긴 건물들. 그리고 띄엄띄엄 위치한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꽤나 알려진 성수 혹은 망원동의 그것들과도 닮긴 했지만 이들과는 다른 것이, 그곳의 샵과 레스토랑은 가지치기된 골목들 사이사이에 있어 작정하고 어떠한 장소를 가지 않는 이상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쭉 뻗은 하나의 골목을 따라 띄엄띄엄 있기 때문에 주욱 산책하듯이 걷다 보면 모든 곳곳을 볼 수 있다.

작지만 뚜렷한 분위기를 보이는 곳곳의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굉장히 흔치 않은 매력을 지닌다. 한식집과 일식집 이태리식과 프랑스 가정식, 스페인식 레스토랑까지 전 세계 곳곳의 매력을 작은 가게 하나하나에 담아낸다.


외지인의 때가 묻지 않았다는 것은 관광지화가 되어있지 않다는 말이다.

아직 이곳은 이곳 주민들의 동네이자 이 동네 사람들의 분위기 있는 약속 장소일 뿐이고 호기심 많은 누군가가 잠깐 구경을 가는 곳일 뿐이다. 물론 유명한 골목에 비해 볼거리가 많지 않기에 앞으로도 그리 유명해질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어느 핫한 길과 견주어 보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세월이 흔적이 남고 또 관광객을 위한 골목이 아닌 동네 사람들, 원주민을 닮은 골목들.


자연스레 생겨난 골목, 스스로 만들어낸 분위기들.


작가의 이전글 일상에도 환기가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