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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바 lambba Apr 27. 2020

다음 주엔 세 쌍둥이?

새로운 가족의 시작

축하해요. 쌍둥이 입니다.

의사의 직업적이고 무미건조한 이 한마디에 우린 순간 아무말 없이 서로 바라보며 

놀라운 표정과 함께 소리없는 웃음이 나왔다. 아니 당황스러웠다. 의사도 우리의 그런 표정을 

많이 본것처럼 다음주에 오세요. 이 말이 전부다. 마치 마트에서 줄서서 계산 끝내고 

나가는 기분이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쌍둥이래...그래 쌍둥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왜 이런 반응인가?

쌍둥이가 될 가능성은 생각했지만 막상 닥치니 당황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스러움은 흥분상태로 바뀌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과 함께

미래의 일어날 일들에 대해 서로가 이야기를 장황하게 쏟아냈다.

그러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내 나이 만으로 46살에 애들 아버지가 된다. 

우리 아버지는 나를 51살에 낳으셨다. 초등학교 들어갈때는 몰랐지만 초등학교 졸업할때는

챙피함을 느꼈다. 또래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은 아버지가 나에겐 영 불편한 존재였다. 
 아니 챙피한 존재였다. 그 챙피함을 되물리기 싫어했는데 기어이 나도 늦둥이를 보게 된 것이다.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미리 알고 있는 나에겐 커다란 숙제가 생긴 셈이다. 

다행이라고 할까 불행이라고 할까 쌍둥이가...

기쁨도 두배, 챙피함도 두배, 서운함도 두배가 될 것이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찾아간 병원

의사선생님이 갑자기 볼펜을 만지작 거리다가 모니터를 보다가 살짝 머뭇거리며

애써 톤을 낮추는 듯한 말투로 유산이란다. 

우린 또 놀라움에 아무말도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한명만 유산이란다.

일주일전과 일주일 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지만 느낌은 달라도 너무도 달랐다.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기도 전에 그냥 녀석이 사라져버렸다. 유산된 아기는 어떻게 

되느냐고 했더니 그냥 놔두면 된다고...

화는 나지 않는데 억지로 화를 내야할 것 같은 기분, 누군가를 붙잡고 아무소리나 

지껄이고 싶은데 그냥 멀뚱멀뚱 의사선생님의 눈과 입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아내와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이번엔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상심이 더 컷을 아내에게 뭐라 할말도 없고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내가 위로를 받고 싶정이다. 

우리 부부가 툭툭 가볍게 대화한 것이 죄가 된 모양이다. 

기뻐해야 할 일에 대해 너무 장난스럽게 받아들였던 죄인가 보다.

생명을 너무 쉽게 생각한 죄인가보다. 스스로 온갖 죄명을 만들어 붙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다. 아내는 난임여성이다. 시험관아기를 얻기 위해 유명한 병원을 찾았다.

검사를 받기 위한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한달이란 시간이 걸려 병원에 갔다.

병원에선 10프로 미만의 성공확률을 이야기했다. 원인은 자궁내막증 때문이란다. 

시험관외에는 방법이 없으니 할려면 다시 오란다. 

친절함은 바라지도 않는다. 너무 혹독한 느낌이랄까 그냥 가기 싫어졌다. 

마침 어떤 방송에서 난임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송한 내용을 알게 되어 그 방송을 보았다. 

부부가 함께 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눈물이 나면서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 방송에 나온 병원을 찾아간 것이다. 그 의사선생님은 조금은 나은 편 같았다. 

아내의 말은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이것도 운명이니 이 선생님에게 맡겨서 해보자고 우리는 합의를 봤다. 그래서 시험관아기

시술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우리부부는 쌍둥이를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수정란 한 개만 넣기를 바랬다. 의사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이미 동의서에 두 개를 넣기로 했단다. 우린 선택지가 없었고 그냥 따라야만 했다. 

그래서 2개의 수정란이 임신이 된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어렵다는 시험관아기를 단 한번에 그것도 10프로 미만의 확률을 뚫고 

성공한 것이다. 너무 빨리 쉽게 된 만큼 쌍둥이의 꿈은 단 일주일만에 사라져 버렸다.     

 계획은 한명이었지만 쌍둥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너무나 큰 상실감이 찾아왔다.

 “우리 원래 한명만 원했으니까 계획되로 된거네...” 이렇게 무겁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명만이라도 충실하자고 했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힘겨움이 느껴졌다. 

뱃속에만 있었던 녀석의 얼굴은 본적도 없는데 왜 그렇게 안쓰럽고 답답한지

태어나지도 않은 녀석도 이렇게 가슴 아픈데 태어난 아이를 귀찮다고 버리고, 떠든다고 

때리고, 짜증난다고 죽이는 이런 사회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이젠 정말 지난 일인데 마음을 추수리고 있었다. 매주 있는 정기검진을 위해

일주일 후 다시 찾은 병원 선생님의 표정이 또 이상하다. 우린 그 표정에 겁이 덜컥 났다. 

그 짧은 순간이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함축시켜 보여주는 듯 했다.      

 “쌍둥이입니다.” 

뭐? 이 양반이 낮술을 했나? 아님 오진 한거야? 뭐야?

지난주엔 유산이라 해놓고 다시 또 쌍둥이라니... 너무 기가막혀 말이 안나왔다.

이놈의 병원에 와서 벙어리 삼룡이 되는 연습만 한다. 눈깔은 홀딱 뒤집어지겠는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차분히 말을 이어간다. 

유산은 맞단다. 처음에 쌍둥이라고 말한 것은 두 개를 넣은 수정란이 착상에 성공해서

이란성 쌍둥이란 의미였고 두 개 중 한 개가 심장이 멈췄고 다른 한쪽에선 일란성 쌍둥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의사가 봤던 쪽에선 뒤에 숨어있어 처음부터 못봤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본인도 처음이라 미안하다고... 

와~ 진짜, 정말, 와~ 정말 와~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다. 

쌍둥이였다. 유산했다. 다시 쌍둥이다. 당황스러웠고 상실감이었고 다시 당황스러워졌다. 

병원을 나오는 기분은 이번엔 상기된 얼굴이었다. 솔직히 기뻤다. 먼저 간 녀석에겐

안타까움은 남아있지만 다시 살아돌아온 기분으로 변해버렸다. 나 다시 쌍둥이 아빠가 되었네... 한주를 보내는 시간이 긴장되는 시간들이었다. 

아내와 농담으로 처음엔 셋쌍둥이였네 와 엄청날뻔 했네...그래도 아쉽다. 

하지만 다음으로 이어진 농담 이번에 가면 다시 셋쌍둥이라고 말하는거 아냐? 하하하

다음주도 그다음주도 그 다다음주도...

다행이도 의사선생님의 멘트는 좋아요. “정상적으로 잘자라고 있습니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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