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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바 lambba Apr 28. 2020

“소리가 안 나와요”

나는 문제없어!

  결혼 10년이 지난 후에야 난임이란 사실을 알았다. 나는 아이를 갖기 위한 검사를 결혼초부터 하자고 했지만 아내는 완강히 거부했다. 검사를 원했던 이유는 늦은 결혼과  아내와의 나이 차이가 8살이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꾸준히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아내의 거부 이유는 단 하나! 본인은 정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순서가 있다. 나이가 몇 살인지? 애인은 있는지? 애인이 있으면 언제 결혼할지... 결혼을 하면 애는 언제?, 애가 있으면 몇 살, 몇 학년... 이 한결같은 질문은 사람을 옥죄게 한다. 급기야 친척과의 만남도 기피하게 된다. 애 안 생기는 질문을 왜들 그렇게 할까? 

같은 질문을 하니 짜증 나서 무정자라고 말한 적도 있다. 정말 끊임없다. 그때는 안쓰럽다는 듯 무자식이 상팔자란다. 그래도 병원에는 가보라고 마지막으로 입양들도 많이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10년 내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마저 받았다. 8살의 나이 차이는 장모님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조차 나를 충분히 문제아로 만들고도 남는 숫자였다. 결국엔 정상적인 나의 모습을 당당히 알리고 싶어 비뇨기과를 찾았다.


  정자검사를 해본 남자들은 알 것이다. 검사방법은 노골적이고 원시적이며 디지털스럽다. 종이컵 하나 주고 

쪽방에 들어가면 컴퓨터가 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바탕화면엔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성인물들이 폴더별로 나열되었는데  한국,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 참 알차게도 준비돼 있다. 곧바로 성인물들을 능숙한 솜씨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이용하며 짧은 시간에 가장 선호하는 타입의 성인물을 선택했다. 헤드폰을 쓰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런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쪽방 문을 열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면 스스로가 창피함을 느끼고 있다고 보이는 것 같아 당당하게 간호사에게 외쳤다.

  


"여기요 컴퓨터에서   소리가 안 나와요? ”


  여기가 비디오방도 아니고 저리 큰소리로... 간호사의 표정에서  ‘뭐 이런 걸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 그 자체다.  간호사는 본인도 모르니 알아서 하란다. 할 수 없이 해야 할 일을 멈추고 컴퓨터를 고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프로그램을 만져보고 드라이버가 잘 깔려있는지 확인하며 재부팅을 여러 번 실시했다. 혹시나 마지막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이어폰으로 테스트를 해보니 보드 불량, 정확히는 이어폰 단자의 고장이다. 그 순간 내가 정자검사를 하러 온 건지 PC를 고치러 온 건지 쪽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웃음이 나왔다. 


 하는 수 없이 의사에게 이 공간이 낯설어 집에서 해결하고 싶다고 했더니 가까우면 그렇게 하란다. 대신 가지고 올 땐 정자를 담은 용기를 온도 조절을 위해 겨드랑이에 넣어 최대한 빨리 가져오란다. 걸어서 15분 거리의 병원이라 시간은 충분했고 집에서 해결했다. 혹시 늦을지 모르니까 겨드랑이에 용기를 끼우고 자전거를 타고 5분 만에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 달리면서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가뜩이나 눈 풀려 다리 풀려 힘들어 죽겠는데 병원까지 미친 듯이 달려야 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불쌍하기도 했다.  어쨌든 노력한 결과는 훌륭했다. 


  “오! 너무 좋은데요. 아주 건강합니다. 하하하”


  그 말 한마디에 난 세상의 임금이 된 듯했다. 그날 밤 당당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나 오늘 정자 검사했다.  

직진, 좌회전, 우회전 유턴도 할 정도로 아주 건강하다고 뻥을 조금 보태서 20대라고...

 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래? 근데 왜 했는데? “ 


  아내는 나의 마음을 모른다. 나는 말도 많고 목소리도 크고 수다스러워 특별한 스트레스나 상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랑하고 싶다기 보단 나의 건재함이나 혹시 있을 오해를 방지하려는 목표였지만 

아내의  대응으로 봐서는 검사한 이유가 본인을 검사하게 하려는 술책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아내가 아이를 갖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나는 있으면 좋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갖자고 말했다. 비로소 아이를 갖기 위한 시작을 한 것이다. 결혼 10년여 만에... 


 나는 다시 비뇨기과를 향했다. 산부인과에 가면 나에 대해 물어볼 것 같아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 졌다. 의사는 한번 정상 판정을 받았으면 또 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나는 반드시 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간호사가 종이컵과 함께 쪽방을 가리켰다. 그 순간 갑자기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병원인지 비디오방인지 어이없었던 그때 그 상황, 조심스럽게 이번엔 초조한 마음으로 사운드를 먼저 확인했다. 

컴퓨터를 켜고 아무 영상물이나 더블클릭!  


 “아 뭐 이런... 시바스 리갈,  소리가 또 안 나와!  5년이야 5년! 

이런 거 하나 안 고치고, 뭐 이따구 병원이 다 있어?”


  결국 그날도 겨드랑이에 용기를 넣고 또 열심히 달렸다. 신촌로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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