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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바 lambba May 02. 2020

아내에게 버림받은 나

주말이면 어김없이 부모님이 계신 요양원에 간다.

 주말이면 항상 부모님이 계신 요양원에 간다. 부모님이 잘 드시는 빵과 사탕 그리고 식사와 함께 드실 반찬 

몇 가지도 챙긴다.  매주 가야 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인사보단 군것질거리를 해결해 드려야 한다는 의무적인 

생각이 먼저인 것 같다. 

 

 사실 때로는 귀찮고 가기 싫을 때가 있다. 가면 할 말도 없고 할 말이 있어도 잘 듣지 못하시기에 대화를 하기 

힘들다. 그저 서로 눈만 바라보고 아쉬우면 악수라는 핑계로 내 손을 잡으신다. 헤어질 때면 인사말로...


“에휴 미안하다. 짐만 되어서,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 니 아버지도 얼른 죽어야 하고...

 아픈 데는 없냐? 힘들면 연락을 하고 “ 


그때마다 


 "그 소리만 10년째고 나도 아프고 싶다고, 연락을 하면 뭐하냐고 듣지도 못하는데..."  이게 나의 대답이다. 


 몹쓸 소리 한 사발 하고 요양원을 나서면 맘이 편하겠는가? 요양원에 들어갈 때마다 마음을 먹는다. 

오늘은 몹쓸 소리 하지 말아야지 굳은 결심을 하지만 결국엔 쏟아낸다.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신다. 그런 마음이 어떤 형식으로든 전해져 내 가슴을 흔든다. 물론 일이 있거나 

특별하게 여행을 갈 때는 말씀을 드리고 가지만 그 불편한 마음은 숨길수가 없다. 특히 아버님은 고령인 데다 

몸 상태까지 좋지 않아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내내 불안하다. 


 외국에 나가기 전 요양원에 당부를 하고 간다. 전화만 오면 가슴이 벌렁벌렁 거리니까 급한 일 아니면 절대 

절대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해도 전화는 온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에휴~

어디를 갈 때 부모님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집착이라면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나를 품에만 두려고 했다. 어디를 가도 안되고, 무엇을 해도 안 되는 그런 나를 만들었다. 자라면서 그런 모습에 반항적으로 행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엄마 죽는 꼴 보려고 하냐"

이 문장 하나로 압도당해 지금까지 살아왔다. 한마디로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시다. 

눈에 안 보이면 큰일이 난다. 같은 일주일의 시간이라도 여행을 떠난 그 한주는 어머니의 속을 다 뒤집어 놓는 시간들이다.


 요양원분들이 어머니를 참 얌전하시다 하지만 피곤한 스타일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좀 이해들을 하시는지 갈 때마다 요양원분들은 나보고 효자란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그냥 오기만 하는데 무슨 효자냐? 방문 기록지를 보여준다. 

매주 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단다.  정말 내 이름 밖엔 없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웃어야 할 일인지 뿌듯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바보같이 순진한 건지...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며느리 걱정까지 하나 더 늘었다. 친자식도 가기 싫어하는 마당에 며느리라고 매주 가고 싶겠나? 가끔은 나 혼자가 기도 한다. 그럴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며느리를 찾기 시작하신다. 그러고는  며느리가 어디 아픈 것이 아니냐? 왜 혼자 왔냐? 같은 방식의 대답과 질문으로 나를 지치게 한다. 근데 참 신기하게도 손주 얘기는 특별하게 하지 않으신다. 아주 가끔 아이는 낳긴 낳을 것인지 그 정도만 

물으셨다. 갑자기 나 혼자 가는 기간이 길어졌다. 한주, 두 주, 세주... 


 어머니는 이상한 느낌을 받으셨다. 며느리가 어디 갔냐고? 몸이 많이 힘들어 친정으로 당분간 가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싫어 며느리가 도망간 것으로 생각을 하신 눈치다. 자꾸 물어보고 직접 며느리와 통화도 하게 했지만 의구심은 더 해갔다. 당신 때문에 도망간 것은 아닌지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자식이 그렇게 썩 당당하게 내세울만한 놈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그러다 불쑥 결혼 전 아내를 소개해줄 때가 생각났다. 


 결혼할 여자가 생겼다는 말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과 세상에 너하고 결혼할 미친년이 어딨냐고? 

이런 소릴 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소개하는 장소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미친년 데리고 왔다고... “ 


그 말에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얼버무리셨다. 하하하


 내 성격이 좀 그렇다. 직선적이고 돌려 말할 줄 몰라 표현이 거칠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좋아한다는 표현 하나 받지 못했고 나 또한 그런 표현을 해본 적도 없다. 

무뚝뚝함이 가장 멋진 남자로 알고 그렇게 살아왔다.  


 요양원에서는 길어진 아내의 부재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아내는 임신을 했다.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성격이 한 부분을 크게 차지했다. 

10년 만의 처음 임신인 데다 유산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안정이 필요한 시기이고 차츰 안정화되어도 불안감은 우리 부부에겐 계속 있었다. 어머니에겐 죄송한 마음이지만 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을 했다. 

그 긴 기간 갈 때마다 난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자가 되어야만 했다. 최선이라면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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