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0과 무한대 사이의 확률
우선 주선자들과 당사자들과의 관계가 있고, 그 관계가 생판 남인 두 사람에게 연결되는 그 확률은 (계산은 안해봤지만) 수백만분의 일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만난 둘은 한 순간 인연을 느끼기도 하고, 천천히 적응해 가기도 하고, 다시는 안보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대단한 확률이었더라도, 아닌건 아닌거니까.
소개팅, 불확실성의 긴장감
주선자에게 서로의 번호를 넘겨받고, 어색한 인사메시지를 주고받고, 언제, 어디에서 만날지 정한다. 약속 전까지 매일 아침 실없이 날씨 얘기를 하는 상대방도 있고, 약속을 잡은 후엔 약속 당일까지 조용한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프로필 사진을 보고 대략의 느낌을 추정해보고, 흐릿한 인상을 떠올려본다.
대망의 약속당일은 긴장의 연속! 무엇을 입을지, 몇 시에 일어나, 몇 시부터 준비를 할지, 약속장소에 다다르는 과정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모르는 그 예측할 수 없음이, 소개팅의 긴장감의 근원일터.
남편과 나는 이 엄청난 확률과, 우주적 긴장감을 거쳐 소개팅으로 만났다. 부산에 온지 1년에 접어들고 누구든 '사람'이 만나고 싶던 나는, 부산에 놀러온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김해던가? 거기서 일하는 남자를 알아! 소개팅 할래?' 란 말에 '콜!'을 외쳤다.
그 자리에서 '김해던가 거기서 일하는 남자'에게 연락을 한 친구는 '김해가 아니라 김천이라는데? 같은 경상도 아냐? 그냥 만나' 라며 내 번호를 그에게 넘긴다. 참고로 김해는 경상남도, 부산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천은 경상북도 한가운데에 있다. 김천에서 부산까지는 거리는 약 200km 다. 서울인들의 머릿속 지도에서는 '경상'만 붙으면 다 같은 동네인 것이다. 서울것들이란.
그런데 '사실은 김천에서 일하고 있던 남자' 또한 의외로 이 장거리 소개팅에 '콜'을 외쳤고, 우리는 둘 다 선글라스를 낀 프로필 사진으로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무려 '대전'에서 소개팅을 하기로 한다. 둘 다 그 누구도 연고가 없는 '대전'! 역시 교통의 요지인 것이다.
당신은 KTX를 타고 소개팅을 하러 간 적이 있는가? 나는 그랬다. 대전역 어딘가에 서서 처음 서로를 만났다.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가 전혀 모르는 동네에서 차를 마시러 갔다.
나의 소개팅에는 불가피한 질문루틴이 있다.
- 무슨 일하세요?
- 영화관련 일을 해요.
- 우와 저 <○○○○> 좋아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정보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주긴 한다. 취향이란 꽤 많은 것을 내포한 정보니까. 통계적으로 <인생은 아름다워> .<어바웃 타임>이 꽤 많았고, 종종 독특한 장르영화를 언급한 이도 있었다.
'사실은 김천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는 <인터스텔라>를 얘기했다.
얼마 전에 봤는데 너무나 걸작이었다고, 그날 최초로 눈을 반짝이며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라는 스토리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았고, 난 '아 그렇구나'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남편은 영화를 볼 때 과학적 개연성을 중요시하는 이과생이었다.
작년에는 영화 <엑시트>를 보는 내내, 나는 꺄르르 꺄르르 재밌게 보았건만 남편은 '기체가 저렇게 확산되는 것은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며 첫 설정에서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너무나 과학적인 영화 <인터스텔라>가 더 감동적이었던 건 아닌가 싶다.
'사실은 김천에서 일하고 있고 인터스텔라를 좋아하는 남자'와의 대전 데이트는 왠지 여행 같았다. 모르는 동네를 헤매면서 처음 가본 카페와 식당을 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몇시간이 흘러, 자 이제 헤어질 시간,
나는 대전역에 왔으니 성심당 튀김소보로를 사야겠다고 빵집 앞에 줄을 섰다. 내가 그에게 빵을 사주겠다고 하자, '사실은 김천에서 일하고 있고 인터스텔라를 좋아하는 남자' 는 한 개면 된다고 했다.
나는 정색하며 '그럴 수는 없다. 튀김소보로는 2개는 먹어야 한다!' 며 터프하게 2개를 손에 쥐어주고 부산행 KTX를 탔다.
다음날 튀김소보로를 우유랑 먹으니 맛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고, 우리는 김천과 부산을 오가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대전, 인터스텔라, 튀김소보로와 함께 내 인생 마지막 소개팅은 끝이 난 것이다.
결국 마주칠 리 없던 두 사람이 만나, 함께 궤도를 돌기로 했으니, ‘인터스텔라’(항성간의) 의, 우주적 소개팅이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