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_ 그렇게 우리집이 된다

by 램램


2013년 부산불꽃축제, 그 날 부산에 내 집이 생겼다. 회사 사무실도 함께 이사하는 날이었는데, 당시 회사에서 저녁 당번이었던 나는, 집이 불꽃축제가 벌어지는 광안리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창문으로 불꽃놀이를 봤더랬다. 불꽃축제가 끝날 쯤 집으로 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엔 사람들이 무지무지 많아서 광안역에서 내리는 건 포기상태였다. 지하철 한가운데서 옴짝달싹 못하던 나는 광안역에서 문이 열리자 맥없이 외쳤다.

내...내..릴게요...

갑자기 문 쪽에서 호쾌한 부산 아저씨의 외침이 들렸다

내린단다!!!!!!

그러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듯 내 앞에 길이 열렸고 무사히 광안역에 내렸다. 아직도 웃음이 나는 부산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이후 부산불꽃축제는 나와 부산의 기념일 같은 느낌이 든다. 벌써 햇수로 6년, 뒤돌아보니 이곳에서의 시간과 속도는 확실히 빨라졌다.






브루클린_배.jpg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떠나는 배, 에일리스


처음엔 아주 천천히 오고, 나중엔 빨리 오게 될거야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가는 배, 언니와 주고받는 편지가 언제쯤 도착할까를 묻는 에일리스의 질문에, 배에서 만난 여자가 대답한다. 아마 에일리스보다 먼저 뉴욕에 자리 잡았을 선배다. 처음엔 길었던 낯선 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언젠가부터는 빠르게 흘러갈 테다.


하루의 속도가 너무도 느리고 외로운 시간들. 낯선 브루클린 속 에일리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처음 부산에 왔을 때 내 기분이 떠올랐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도시에서 맞는 주말은 유독 길었다. 늦잠을 자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해먹어도 하루가 넉넉하고, 지루하게 흘러갔다. 사람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난 하루도 있었다. 그렇게 좁은 방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몇 편의 영화와 몇 편의 드라마를 배회하다가 지나가곤 했다.


친구와 가족들을 만나러 금요일 저녁 서울로 올라갈 때와, 일요일 저녁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기분은 너무 달랐다. 다시 조용한 내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렇게 막막하고 서글펐었다. 낯선 곳이 ‘우리집’으로 바뀌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얼마만큼의 경험이 필요할까. 낯선 곳을 나의 공간으로 바꾸려면, 시간과 경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추억이 필요하다. 함께 추억을 쌓을 사람도.


에일리스가 뉴욕에서 만난 남자친구 토니와 닮은(특히 크지 않은 키가 닮았다.) 남자친구와 부산에서 추억을 쌓으며,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부산에서의 주말도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 남자친구는 이제 나의 배우자가 되었다.


타지에서의 외로움에 대한 답이 ‘연애’라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쌓아올린 기억들은 그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나의 곳으로 만든다. 엑스트라로 서있던 공간을 내가 주인공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정말 내가 속한 곳이 되려면, 내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누군가에 등 떠밀려 서있는 것이 아닌, 내 힘으로 단단히 발을 딛고 서있어야 한다. 방향도 속도도 내가 정할 수 있도록.




영화 속에서 에일리스는 아일랜드와 뉴욕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다. 그녀는 다시 그 바다를 되돌아갈까 고민하지만, 결국 자신을 자신으로 있게 한, 브루클린을 택한다. ‘우리집’은 꼭 한 곳이 아니다. 어디든 나를 나로 있게 하는 곳이라면, 내가 주인공이 된다면, 돌아갈 수 있고, 머무를 수 있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도시 부산도 내 인생에 놓인 수많은 ‘우리집’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순간에 집중하되 어떤 방향, 어떤 속도에 대한 결정도 남에게 넘기지 않을 작정이다.


한때는 서울을 떠나는 게 두렵고, 걱정되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멀어지면 난 더 작고, 무력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실제로 종종 세상은 꽤나 서울을 무게중심에 두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곤 한다. 하지만 아마 서울에 계속 살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감각, 열어두지 못한 채 남겨두었을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준 6년이라는 시간과 부산이라는 도시를 정말 사랑한다.



2013년 불꽃축제의 그 날, 택시 아저씨가 (아마도 이런 말투로) 말씀하셨다.

불꽃놀이는 부산이 세계에서 최고라예!

나와의 기념일을 세계 최고의 불꽃놀이로 축하해주는 도시라니,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