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_ 친애하는 봉감독님

by 램램

안녕하세요 감독님. 저는 감독님을 무척 존경하고 감독님 작품을 좋아합니다만, 저희 어머니는 감독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 감독님 때문에 제가 영화일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같은 이유로 <씨네21>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아빠가 <씨네21>을 정기구독 하신 덕분에 제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셔서 아빠도 엄청난 원망의 목소리를 들으셨지요)


감독님을 만났던 순간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2006년 봄(한국은 가을), 저는 호주의 호텔에서 청소를 하던 하우스키퍼였습니다. 그러다 간만의 휴무일에 한인 잡지를 보다가, “<괴물>의 봉준호 감독 호주에서 관객과의 대화!” 라는 광고를 보았어요. 바로 그날 행사였어요. 저는 당장 극장에 전화를 걸었죠. 하지만 매진이라는 얘기를 하더군요. 포기하기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무작정 극장으로 달려갔는데 다행히 취소표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기쁘던지. 극장에 들어가려고 보니 관객들은 호주 사람들이 대다수였어요. 영화가 시작되고, 관객들은 웃었어요. 하지만 한국사람이 웃을법한 장면과 호주사람들이 웃는 장면이 다르더라구요. 신기했어요. 영화상영 후 제가 한국어로 한 질문을 재치있게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괴물을 쫓던 가족들이 한강 매점에 모여 묵묵히 밥을 먹는 장면에서 괴물에게 납치된 딸 현서가 꿈처럼 한 장면에 들어와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무슨 의미인지 여쭤봤었죠. 그때 감독님은 <괴물>은 ‘먹는다와 먹인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영화였고, 그걸 그 장면에 담았다고 답해주셨어요.


행사가 끝나고 사인을 받으러 갔는데, 마침 한 호주사람이 감독님께 사인을 받겠다고 다가왔어요. <괴물> DVD를 감독님께 내밀었죠. 아직 <괴물>은 호주에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감독님이 저에게 물으셨어요 “이 사람 지금 해적판 DVD에 사인을 받는건가요?” 저는 “아마 차이나타운에 풀린 불법 복제 DVD일거에요” 라고 설명해드렸어요. 감독님은 호탕하게 웃으시곤 그 DVD에 사인을 해주셨어요. '역시 감독님은 대인배시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제 다이어리에 사인을 받았고, 아직도 그 다이어리를 간직하고 있어요.


당시 행사를 진행했던 호주배급사에서 지금도 정당하게 DVD를 팔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감독님!


저는 그날 극장을 나오면서 처음으로 '영화를 일로 하는 것'에 대한 꿈을 꿨어요.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 속의 세상을 항상 즐기면서 살아왔지만, 영화를 업으로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었거든요. 영화가 어떤 세상의 어떤 사람에게 가서 새로운 의미가 되는지, 그리고 그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감독님과 영화 <괴물>이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영화학이나 연출을 배우지도 않은 제가 영화제작사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저의 영화인으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답니다.


영화를 원망한 적도 있었어요. 추위 속에서 덜덜 떨며, 온갖 욕을 들어가며 현장을 지킨 적도 있고, 나오지 않는 월급 때문에 아빠에게 손을 벌린 적도 있고요. 영화의 화려함도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화려한 영화제들이 어떤지, 영화가 어떻게 사랑받고 기억되는지 그 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빛과 어둠 사이에서 영화를 계속 하겠다고 생각했던건, 영화가 어떻게든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감독님도 그런 믿음으로 계속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계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님의 영화가 세상을 향해 던지시는 메시지는 항상 묵직하게 마음에 남거든요. 우선 감독님이 호주 멜버른의 어느 극장에서 만났던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신 건 확실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계속 영화일, 영화를 위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저는 사실 바로 감독님 영화에 딱 한 컷만! 출연해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랍니다. 제작부로 일하면서 보조출연자 대신 뒷통수가 한번 나온 적은 있긴 합니다만. 감독님 영화에 출연한다면 제 삶보다 더 오래, 어쩌면 남은 인류의 역사, 영화의 역사에 저의 흔적이 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거든요. 일상에 지친 30대 여성 보조출연자를 구하신다면, 그게 바로 접니다. 혹시 다른 기술이 필요하실지 몰라 온갖 기술들을 섭렵하는 중이오니 오디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