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_엄마의 도쿄

by 램램

요새 엄마와 통화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엄마는 매주 수요일에 문화센터에서 일본어와 한자를 공부하고 , 얼마 전엔 동사무소에서 웰빙댄스 강좌를 등록했다고 한다. (웰빙댄스란 과연 뭘까..?) 엄마가 춤추는 모습이라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빠의 근무지 이동으로 엄마도 함께 전주로 떠났다. 제주에서 태어나 살다가, 수원 그리고 서울로 이사해 계속 살다가 갑자기 전혀 새로운 동네로 가면서 엄마는 걱정이 많았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던 순간부터 항상 일을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봉투 접는 부업부터, 초중생 대상의 공부방 선생님, 문화센터 조각보 공예 강사까지. 수십 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점점 체력이 달린다고 일을 줄이던 차에 사는 곳까지 옮기게 되니 엄마는 일을 그만두었다. 한동안 심심하다는 얘기만 했다. 그 심심함을 좀 더 즐겨도 좋으련만, 엄마는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활기가 되살아난 건, 작년 봄, 일본 여행 이후였다.




영화 <윤희에게>는 2019년 가장 좋았던 영화 중 하나다.

조용하게 마음을 진동시켜서 결국 울게 만든, 감정의 깊은 곳, 아주 소중하고 섬세한 부분을 건드린 영화였다. 이 영화에 덧붙여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지만, 나는 엄마와의 여행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엄마'가 아니라 영화 속 '윤희'처럼 이름을 가진 여자가 생각났고, 그녀와의 여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를 안내해야 한다는 맘으로 초조해지는 그런 여행


엄마와 단둘이 떠난 첫 여행은 홍콩이었다.

어렵사리 월급이 밀리지 않는 곳에 취업을 하고, 자리를 잡자 엄마와 같이 여행이 가고 싶어 졌다.

홍콩과 마카오, 3박 4일의 여정에서 나는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엄마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는 대신 여행의 불확실성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엄마가 챙겨 온 컵라면과 햇반은 여행에서 너무나 유용했다.

한자에 능통한 엄마가 동아시아 여행에 있어서 나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두 번째 여행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에 갔다.

그때 사온 도자기를 엄마는 아직도 애지중지 하며 내어놓는다.

엄마는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일정이 뜻대로 되지 않아 초조해하는 나에게, 여행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함께 헤매는 걸 즐겨주기도 했다.


분명 후쿠오카 여행을 하고 나서, 엄마와 더 자주 여행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그 사이 난 결혼을 했고, 엄마도 전주로 떠나서 한동안 함께 여행 가는 일을 미루었다.

나 또한 지쳐있던 어느 날, 엄마가 꼭 가고 싶은 곳으로 항상 도쿄를 말하곤 했다는 게 생각나 엄마에게 도쿄 여행을 제안했다.




도착한 첫날,

긴자를 구경했는데 엄마는 그 화려함과 눈부심에 연신 감탄을 했다.

다음날 엄마는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긴자의 높은 건물들을 계속 올려다봐서 그런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밤에는 맥주를 마시며 일본 방송을 보았는데 엄마의 한자능력 + 나의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함께 일본어로 나오는 퀴즈를 맞추는 기염을 토했다. 엄마는 그때 일본어가 한국어와 참 비슷하고 재밌다며, 맥주 때문에 발그레진 얼굴로 소녀처럼, 함께 깔깔대며 TV를 보았다.




둘째 날,

우에노 시장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귀여운 베이비 핑크 운동화를 샀다.


나이가 들면, 예쁜 신발이 사고 싶어지더라


엄마는 여행 내내 그 신발을 신고 다녔다.



엄마와 함께 본 후지산

셋째 날,

엄마가 손꼽아 기다리던, 후지산 투어가 있는 날이었다. 날씨가 눈부시게 좋았다.

그림같이 하얀 봉우리가 여행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고, 엄마의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날이었다.

여행 내내 엄마는 "내가 후지산을 직접 볼 수 있게 될 줄 몰랐어!" 라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일본에서, 그중 제일 유명한 산을 보는 것이 엄마에게 그렇게 특별한 일이라니. 나는 갸웃했다. 여행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며 엄마에게 그렇게 후지산이 보고 싶었냐고 묻자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후지산에 가는 게 꿈이었어.
일본 살던 친척들이 보낸 엽서에 후지산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산이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
그때부터 꼭 가보고 싶었어.


엄마가 소녀였던 세상에서 일본은 지금처럼 가깝지 않았다. 엄마가 살던 제주도에서도 산이 보였을 테지만, 엄마에게 일본, 그리고 후지산은 또 다른 세상, 닿지 않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 소녀가 환갑이 넘어서야 꿈을 이룬 그 순간에 내가 함께라는 것, 내가 그 소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는 것에 조금 울컥했다.




영화 <윤희에게>의 모녀는, 함께 일본 오타루를 여행한다. 엄마에게 날아온 슬프고도 애절한 연서를 본 딸이 계획한 여행이다. 딸은 자신이 몰랐던 엄마의 사랑, 첫사랑을 하던 시절의 엄마를 낯설어하는 대신에 엄마의 사랑을 되찾아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경솔한 일일까 조심스럽게, 천천히 재회를 기획한다.


엄마이기 전에 윤희였던 사람,

누군가에게는 소중히 불리던 이름이었던 사람.

그녀의 삶과 사랑을 되찾아 준 여정은 매 순간이 따사로웠다. 수없이 쌓인 눈들이 봄날의 꽃잎처럼 느껴질 만큼.

그리고 그 끝에 서로를 나지막이 부르며 잊고 있던 삶의 조각을 찾은 두 사람의 모습은 짧게 비치지만 길고도 긴 여운을 남겼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엘리베이터에서 한 관객이 말했다 “둘이 너무 불쌍하다” 고.

이루어질 수 없던 사랑을 안고 사는 건 아픈 일이겠지. 재회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옹이처럼 남는 사랑도 있다.

영화 속 윤희와 쥰이 만나는 장면은 너무도 애타게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둘이 만나는 장면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윤희가 행복하리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여행 끝에 비친 얼굴에서, 그녀는 앞으로 좀 더 행복한 윤희로서 살게 되리라는 투명한 믿음이 생겨났었다.




엄마는 여행 직후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다시

일본에 가서 일본어로 여행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매일매일 2시간씩 단어 공부, 회화 공부를 한다. 그게 거의 1년째 이어지는 중이다.

( 일본어 강의 유튜브 채널을 알려드렸더니, “내가 학생일 때 유튜브가 있었으면 난 서울대 갔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엄마와 후지산을 다시 가려면, 일본 정부가 반성을 좀 더 많이 해야겠지만. 나는 엄마와의 도쿄 여행이, 자꾸 그리울 것 같다.


롯폰기힐스에서 본 도쿄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