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많지_내가 왜 영화를 그만두었냐면

by 램램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 조지 오웰




글쓰기 모임에서 ‘글쓰는 이유’에 대한 문장카드를 읽다가 이 독설 섞인 묘사에 “이건 딱 영화감독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글쓰는 작가는 작가 본인이 글을 쓰기 위해 싸우는 일이 8할 이상이라면, 영화감독은 혼자 영화를 찍을 수 없어서 본인의 시나리오를 투자자부터 스태프, 관객까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독 대신에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 바로 프로듀서다. 연출 이외의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주인공 찬실은 마흔살의 프로듀서, 한 예술영화 감독과 오랫동안 일해 온 프로듀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감독이 과음하다 급사를 한다! 줄곧 감독과 한 묶음으로 여겨졌던 찬실은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는다. 항상 찬실을 칭찬하던 제작자는, 어차피 영화는 감독의 것 아니냐며, 찬실에게 새로운 기회도 주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백수가 된 그녀는 절친하지만 어딘가 맹한 여배우의 가사도우미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게 되고, 이제 영화는 그만두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던 중 찬실의 환상이 그녀 일상에 섞여 들어오고, 영화 <아비정전>의 장국영을 닮은 환상속의 남자가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자꾸 영화를 그만두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나도 한때는 프로듀서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졸업하자마자 영화 제작사에 들어가, 마케팅 보조를 하다가, 제작부 막내로 말똥을 치우며 꽃다운 청춘을 보내다가(말이 주인공인 영화였다) 백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주말도 밤낮도 없이 지내는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어 그만두었다. 이후 나름 영화계의 사무직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세일즈사에 들어갔다가, 거기서는 겨우 백만원 남짓한 월급을 제때 받지도 못해서 겨우 1년을 채우고 퇴사했다. ‘다시는 영화 안할거야!’ 라고 외치고 나와서는 지금 하는 일은 또 영화와 관련된 일이다. 그때 했던 일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의 일에 많은 영향과,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달까.


프로듀서를 꿈꿨던 건, 내가 감독이 될 만한 그릇은 안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충분히 허영심이 많지도 않고, 이기적이라기엔 남의 눈치를 많이 보며, 게으르긴 하지만, 또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위해서 삶을 다 바칠 배포도 없었다. 하지만 영화와 어딘가 맞닿은 일을 하고 싶었고,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영화를 만드는 일중, 손도 많이 가고 고생스럽긴 해도, 감독과 함께, 영화가 되려는 시나리오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바로 프로듀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오만하기 짝이 없는, ‘프로듀서라면 나도 할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을 한 거였다. 감독은 너무 위대하니까. 하지만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어쩌면 프로듀서야 말로 더 큰 그릇이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감독은 카메라에 담기는 영상만 바라보면 되지만, 프로듀서는 그 이외의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어두운 산길에 전구를 사러 내려가는 찬실과 동료들이 있다. 찬실이 손전등을 들고 있는데, 처음에는 찬실이 앞서 가다가, 나중에는 뒤로 가서 그들의 앞길을 비춰준다. 감독, 배우, 스탭들이 가는 길을 뒤에서 빛을 비춰 주는게 바로 프로듀서의 역할이니까. 그 것이야 말로, 오랜 시간 프로듀서로 일했던 감독이 프로듀서라는 직업에 바치는 찬사와 같은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어쨌든 나는 영화를 그만두었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그만두지 않았다. 만드는 일은 그만두었지만,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지기 위해 더 많은 영화인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있다. 말똥을 치우던 날 매섭게 손가락을 찌르던 찬 바람, 좀처럼 오르지 않는 관객 수에 수없이 새로고침을 누르던 날들은 영화인의 나이테로 내 안에 남아있다. 나는 이기적인 감독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사랑하고, 그 영화를 만든 엔딩크레딧의 모두를 존경한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모든 과정을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다.


movie_imageGS04MVVQ.jpg 찬실에게 '영화'의 의인화 버전, 장국영씨.

결국 찬실은 영화를 계속하기로 한다. 찬실이 만들었을 어떤 영화를, 환상 속의 장국영이 관객석에 앉아 지켜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과 보고자 하는 사람들 속에서 영화가 진정한 생명을 얻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찬실. 이처럼 현명하고, 일복도, 사람복도 많은 수많은 찬실들이 만들어 낼 영화들이 너무나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