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_너덜너덜 레드카펫

by 램램


멋진 드레스, 턱시도, 번쩍이는 플래시, 우아한 발걸음.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밟을 수 있을 것 같은 깐느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나도 밟아보긴 했다. 딱 한번이긴 하지만 말이다.

프랑스 니스 근교의 휴양지, Cannes 에서 열리는 깐느영화제(혹은 칸 영화제, 난 왠지 깐느가 더 친근하게 들린다)는 부산영화제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보는 곳이 아니다.

영화업계에 관련된 사람들만 ID카드(뱃지)를 받아 출입할 수 있고, 그들만 영화를 볼 수 있으며, 영화에 관련한 모든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깐느영화제에 선정되는 모든 영화들은 프랑스 배급사들간의 치열한 로비를 통해 선정되며, 그 마켓에서는 수많은 영화가 가치를 평가받아 사고, 팔린다.

레드카펫 위에서 기립박수를 받는 영화에 대한 모든 환상이 모이고, 한편으로는 달러로 가치가 환산되어 그 환상이 깨지는 곳이라고나 할까.

나는 영화세일즈사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깐느영화제 뱃지 등록이 가능했다. (영화 판권을 팔든 못팔든, 어쨌든 등록된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이 뱃지를 목에 걸고 다니면 깐느에 모인 씨네필, 관광객들이 그 카드 어떻게 구하는 거냐고 묻는데, 그 순간은 ' 나 영화하는 사람이야' 하며 우쭐해지지만, 그것도 며칠 지나면 지겨운 일이 된다.


524429_3623725224746_431580054_n.jpg 65회 깐느영화제 포스터는 마릴린먼로가 장식했었구나. 그 해, 그 사진.

뱃지가 있어야만 'Marche du Film'(영화의 시장), 즉 깐느영화제 필름마켓에 입장할 수 있다. 무섭게 생긴 가드가 지키고 있는 입구에서 뱃지를 스캐닝 한 뒤에야 마켓에 들어설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뱃지가 있어야 깐느영화제의 상영작을 예매하고 관람할 수 있다. 뱃지에도 등급이 있어서, 등급이 높을 수록, 좋은 자리를 여유있게 선점할 수 있다. 이 뱃지에 등록된 정보로 레드카펫 상영 예매도 가능하다. 내가 아무리 작은 회사의 세일즈사 직원이라도, (티켓팅만 잘 하면) <기생충>의 월드 프리미어를 레드카펫을 지나 함께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2012년에 호주의 한 영화를 레드카펫 프리미어로 보았다. 레드카펫에는 드레스 코드가 있어서, 여성은 드레스에 하이힐, 남성은 턱시도를 입어야만 한다 *


* 이 전통을 깬 것이 바로 줄리아 로버츠, 크리스틴 스튜어트다

줄리아 로버츠 기사
크리스틴 스튜어트 기사


나 또한 깐느의 H&M에서 검은 스팽글로 장식된 원피스(이 날 이후 입은 적이 없다)를 하나 사고, 굽높은 샌들을 챙겨 신고 레드카펫에 갔다. 나의 등장 따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왠지 사람들이 우글우글 둘러싸고 있는 레드카펫을 지나가려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여길 밟았어! 레드 카펫을 지나고 있다고!!’


하는 고요한 흥분을 홀로 만끽했다.

나같은 사람 말고, 깐느영화에제 공식 초청받은 영화의 감독과 배우, 제작자 등 영화의 '진짜 주인공'들은 상영 직전에 이 레드카펫에 도착하는데 레드카펫이 이어진 계단 위에서 깐느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그들을 기다렸다가 모셔가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극장에서는 그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게 된다.

관객들의 기대에 찬 박수 소리를 들으며, 영화관 정 가운데에 주인공들이 착석하고, 깐느영화제 로고가 뜨면서 영화 상영이 시작된다.


상영 후 기립박수는 사실 당연한 것이, 상영이 끝나면 극장 내의 카메라가 영화의 주인공들을 비추고, 그들은 감격한듯 관객들을 바라본다. 그 분위기에서는 세상 최고의 영화를 본 것 마냥 박수를 칠수 밖에 없다.

그 영화가 어떻건 그 영화를 찍은 사람들이 그 순간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의 가장 '영화와 같은 순간'을 엿보는 것 같달까. 그날 본 영화의 감독은 눈물이 그렁그렁하던데, 나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영화제 기간에는 매일매일이 파티다. 각 국가, 영화사, 영화제에서 깐느영화제에 모인 사람들을 초대하는 파티를 열고, 그 안에서 서로 네트워킹한다. 화려한 파티장에서 온갖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내 자신이 무척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하/ 지/ 만

이 영화제의 화려한 모습이 영화계의 빛이라면, 나의 대부분의 현실은 어둠에 가까웠다.

촬영현장 제작부 막내로 일하다가, 영화계의 사무직이라 말할 수 있는 해외세일즈사에서 두번째 영화일을 시작했는데 월급은 첫 월급을 제외하고 매달 늦었다. 직장인은 월급날을 기다리며 산다던데, 나의 월급날은 걱정이 더 컸다.

"오늘은 과연 월급이 들어올까?"

라는 불안감은 점점 사람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그렇게 1년을 버텄다. 그리고 그 사이 부산, 산타모니카, 베를린, 깐느까지 해외 출장을 다녔다.

(내가 유능해서 모든 출장에 불려간게 아니라, 그냥 일할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였다.)


베를린영화제 출장에서 돌아온 날, 엄마가 내 눈앞에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국민연금 체납통지서였다. 월급도 제때 주지 않는 회사에서 내 국민연금을 납부했을리 없다. 그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들 줄은 몰랐지만.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킨 딸내미, 어렸을 적 한번도 속썩인적 없는 자랑스러운 딸이, 다 커서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는 회사를 다닐 줄이야.

엄마의 슬픈 표정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합격 소식을 전할 때까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회사를 1년간 다니고 그만두고, 알바와 취업준비를 하던 백수 시절에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 를 보게 되었다. 다시 볼 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영화들이 있는데 이 영화가 그랬다.


이 영화를 처음 본 대학시절, 나는 그냥 마냥 재밌게 봤었다.(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내편일줄 알았으니까)

앤 해서웨이의 미운오리 백조되기 스토리도 짜릿했고, 메릴 스트립의 초강력 포스에 압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백수가 되어 다시 보니 주인공 앤디가 느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직업이 주는 환상과 현실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깐느나 베를린에서 느꼈던 마법같은 순간들. 화려한 파티, 멋진 셀러브리티와 함께하는 패션계 저 편, 뉴욕 한 구석의 허름한 아파트,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는 구질구질한 현실.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몇개월간 스스로에게 몇번이나 다짐했다.

"넌 여기서 멈춰서는 안돼. 더 잘될거야" 하고.

하지만 매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이 계속 늪처럼 나를 어둠으로 끌어들이고 있어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내가 서있던 곳은 돌다리가 아니라. 번쩍이는 모래성이였던거다.



movie_image.png
movie_image2.png 자신의 길을 가기로 한 앤디, 그녀의 선택을 깨달은 미란다

영화의 마지막, 샤넬 부츠와 디자이너 백을 내려놓고 자신의 길을 향해 간 앤디의 모습은 정말 눈부셨다.

아마 주인공 앤디도 화려한 모래성 대신, 작더라도 단단한 내 징검다리를 찾기 위해 편집장을 뒤로하고 떠났을 거다.


풋내기 사회인이 직업과 회사, 그리고 동료들을 통해 느끼는 경험이 나 자신을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는다. 나 또한 앤디처럼 그 과정 속에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화려한 파티는 없고, 멋진 해외 출장도 없다.

하지만 잿빛의 옷을 숨긴채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화려한 장면속에 구겨넣지 않아도 되고,

다시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 이리저리 바라보며 발을 동동구르지 않아도 된다.

내 눈 앞에 있던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무언가를 쌓아올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모래성에서 배웠던 것들이 이 새로운 건축에 큰 도움이 된다.

영화제와 마켓에서 겪었던 일들, 만났던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고, 또 헤어지며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어갈 것이다.




글을 올리려던 오늘, 좀 전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 또한 영화계의 일원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쁘다.

영화계는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매일매일 우중충한 것도, 구질구질한 곳은 아니다.

내가 현장에서 일하던 시절보다 제작 환경은 훨씬 나아졌고,

악덕기업주에게 월급을 받지 못하면 구제받을 방법도 분명히 있다.


영화, 영화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업과 소명으로 존경받으며 이어갈 너무도 당연한 권리가 있다.

혹시라도 영화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면, 항상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되, 그 마음이 혹시라도 나를 자책하거나, 후회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

너덜너덜한 레드카펫은 절대 당신 혼자만의 탓이 아니다. 모두가 박수받을 수 있는 레드카펫을 위해 단단한 징검다리를 하나씩 놓아야 한다. 나 또한 다른 영화인들과 함께 그 징검다리를 놓아갈 것이다.


한국 최초의 황금종려상인데, 마침 올해가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이다. 칸영화제가 한국 영화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줬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혼자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김기영처럼 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님이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남긴 소감이다.

봉감독님 뿐 아니라 100년의 영화와 역사속을 걸어간 많은 사람들, 나의 동료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덧, 주접스럽지만 나와 봉감독님의 만남도 다시금 기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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