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회사와 함께 부산으로 이주한 이후, 나는 서울 출장을 밥먹듯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 기차를 타고 서울로, 저녁 기차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내가 체류하는 시간이 가장 긴 곳을 계산하면, 집, 회사 다음으로 KTX나 비행기 안, 역이나 공항으로 가는 교통편 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하러 출장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고 이동하는 사이에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어림잡아 계산을 해보니 만 7년동안 한달에 왕복 한번이상은 출장을 갔고, 최근엔 매주 출장간적도 많으니, 왕복 100번은 거뜬히 넘길 것이다.
돈으로 따지면 대략 1천 만원이상 KTX에 소비한 셈이고,
시간으로 따지면 왕복 5시간 x 100번 = 500시간, 일수로 계산하면 21일정도를 기차에서 보낸 셈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7일 걸린다고 하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3번정도 탄 것이나 마찬가지로구나. 세상에.
이렇게 자주 서울을 오가야 하는데, 애시당초 왜 부산으로 이전했지? 에 대한 질문은 더이상 하지 않은지 오래다. 처음에는 낯선 동네에서 맞는 낯선 일상에 우울해하던 나였지만, 이제는 부산역에 도착해야 "집에 왔다"는 느낌이다. 낯선 운명에도 인간은 적응해 가는 동물인 것이다.
출장이 확정되면 우선 KTX 앱이나 대한항공앱을 열어 교통편 예매를 한다. KTX는 맨 뒷자리 구석 좌석을 선호한다. 출입문 바로 앞이라 옆좌석에 앉는 사람 없이 갈 확률이 높다.
금요일 오후에 서울-부산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 매진이 될 확률이 높으니 최대한 빨리 예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장 업무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을 서울역을 배회하며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 불상사를 맞이할 수 있다.
비행기는 무조건 앞좌석 복도를 선호한다. 재빠르게 일어나 비행기를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창가에 앉는 것은 출장러에게 사치다.
출장 전날 팟캐스트와 전자책을 잔뜩 다운로드 해두지만, 멍때리며 갈 때가 더 많다.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나 드라마를 추리하는 놀이를 혼자 할때도 있다.
몰래 화면을 훔쳐보고 저 배경에 저 배우라면? 그 영화겠군! 이 드라마겠군! 생각하며 맞았다고 혼자 좋아하는 놀이다. 기차가 이동할 때마다 날씨가 바뀌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부산에 와서는 보기 힘든 눈도, 북쪽으로 가면 질리도록 볼 수 있다.
비행기에서는 주로 잠을 잔다. 비행시간 40분동안 생각보다 꿀잠을 잘 수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차보다 비행기에서 숙면의 경험이 많았다.
얼마전에는 기차 좌석이 없어 대전에서 다른 칸으로 갈아타야 한 적이 있었다. (출발역-도착역까지 한자리 앉아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을 경우 중간에 다른 좌석으로 갈아타는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무려 3번칸에서 16번칸으로 이동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대전역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심호흡을 하고 일어났다. 문을 열고, 4호차 또 문을 열고 5호차. 뒤쪽 칸으로 계속 이동을 하는데 마치 영화 <부산행>의 마동석이 된 기분이었다.
KTX 좌석 사이사이는 왜이리 좁은지, 사람들은 왜이렇게 많은지, 공기는 왜이리 탁한지, 왜 기차는 끝도 없이 길기만 한지. 어딘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객실의 장애물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잰걸음을 한 뒤 마침내 16호차에 도착하자 땀이 주루룩 흘렀다. 좀비들을 피해 KTX 객실을 이동하는 것은 이보다 더한 일이겠구나.
영화 <부산행>에서 기차는 부산에 결국 도착하지 못하지만, 나는 부산행 열차를 타고 수없이 많이 부산에 도착했다. 그러다 보니 부산이 또 다른 고향이 되어버렸다.
이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추억을 쌓아, 이 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의 첫 KTX 탑승은 2004년, 막 KTX가 개통한 직후라 KTX를 타는 일이 특별한 이벤트같던 시절이었다. 그해 여름방학 친구들과 함께 KTX를 타고 부산엘 왔었다. 오밤중에 갑자기 광안대교를 보겠다고 해운대에서 택시까지 타고 광안리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늦어 광안대교 불이 다 꺼져 있어 실망했었다.
(요새는 조명이 LED로 바뀌어 자정 이후에도 켜놓습니다)
그렇게 광안리를 떠났던 내가, 시간이 흘러 광안대교를 매일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아 살고 있다니, 인생 참 모를일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는 기차에 모여앉아 미래의 남편에게 쓰는 편지를 썼었다. (스무살이니까 할 수 있던 일이다.) 4명 모두 편지에 꿈꾸었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남자들을 만났지만, 4명 모두 잘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웃으며 수다떠는 나이가 되었다.
나의 부산행은, 결코 내 뜻은 아니었지만 내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운명에게 항상 겸손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 하곤 한다.
덧, 본의 아니게 출장전문가가 되어버렸지만 출장은 이제 좀 그만가고 싶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