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같은 날에 내가 쓴 글이라며 낯선 글이 나타날 때가 있다.
영화를 막 시작해 제작 현장에서 일하던 시기부터 영화를 그만둬야지 결심하고 한창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까지 끄적끄적 글을 썼고, 10여 년 전에 글을 쓴 나는 낯설 때가 더 많다.
그 글 속에서 나는 현장에서 느낀 한계를 적으며 그래도 배워야 한다고 다짐하기도 했고, 영화를 그만두고 상처를 안은 채 취업을 해야 했던 시절에는 나에게 '영화'가 무엇이었고,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했다.
그렇게 뗏목 위에서 태평양을 건너는 것 같던 '취업준비생'의 시간이 끝나고 내가 다다른 곳은 다시 영화였다.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었다가 절뚝거리며 떠나 온 영화계에 다시 돌아갈 때 결국 나에게 영화는 운명이었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나는 잠시 일을 멈추고 내가 건너온 길을 다시 뒤돌아보고 있다. 영화를 사랑해서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그 무모함, 일과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힘을 얻기도 하며 이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 위에 고민을 던지던 20대의 시간들.
그 속에 나를 지켜주던 건 영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영화를 사랑했고, 영화는 누군가에게 가 닿을 것이고, 나 또한 영화라는 세상 속에서 행복하리라는 믿음.
2011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 그 믿음과 사랑이 그대로냐고 물으면
난 눈길을 피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을 듯하다.
순수하고 단단한 믿음이 가득했던 나의 글을 읽다가 차마 스크롤을 더 내리지 못한다.
영화에 대한 내 사랑과 믿음이 여러 순간을 거치며 어디론가 다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두 교황>에서 두 교황은 인간으로서 느꼈던 두려움, 부끄러움 그리고 믿음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네딕토 16세 역을 맡은 앤소니 홉킨스는 자신이 느낀 무력감과 후회를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 에게 고해성사한다.
이제 더 이상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어려서부터 늘 함께 있었고, 자신을 여기까지 이끈 신이 더 이상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고.
깊은 주름과 하얀 머리, 떨리는 목소리를 마주하며 왠지 눈물이 났다.
모든 답을 알고 있을 것 같고, 모든 것을 거쳐온 '신의 사람'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흔들림은
내 안의 많고, 작은 믿음들을 진동하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 믿음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거움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영화'였다.
더 이상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베네딕토 16세는 스스로를 속이는 대신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인 프란치스코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남들을 속이지 않고 천천히 자신에게 주어진 명예와 무게를 내려놓으려 한다.
자신과 전혀 다르며 자신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프란치스코에게 스스로 교황직을 내려놓겠다는 결정을 고백하고, 이후 둘은 서로의 길을 잇는 사이가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후회와 부끄러움은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무게다.
아르헨티나의 혼란 속에서의 자신의 선택, 그 선택으로 겪어야 했던 어두운 과거와 죄책감이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말한다.
돌아보면 뚜렷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당시엔 모두 헤매기 마련이죠.
영혼이 어두운 밤을 헤매고 있었죠.
과거의 언젠가, 어둠 속을 헤매면서도 손에 닿는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애써 감각하며 길을 걸었다. 그 길은 나를 다치게 하기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게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장 상처 주었다. 여전히 문득 떠오를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고, 그동안 영화를 사랑하는 일을 잊고, 잃었다.
그렇게 암흑 같던 3년 전에 어떤 글을 썼는지 궁금해져 2019년의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이상하게도 일기장 속의 나는 애써 그 시간 속에서 즐거운 일들과 소중한 추억들을 꾹꾹 눌러쓰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일기장에 좌절과 자책, 후회와 분노의 감정 대신 그렇지 않은 감정을 넣어두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돌아보니 이제는 그때의 시간이 무엇이었고, 무엇으로 남았는지 알 것 같다.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어둡고 참담했지만, 나를 지켜보려 최선을 다해 보았다.
분노와 좌절, 후회와 부끄러움은 무거운 감정이라 오래 남았지만, 지금은 그 무게를 조금 덜어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나에게 남아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또한 안다.
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도. 그렇게 방황은 내게 다시 의미가 되었다.
종교와 영화를 감히 비교하는 것은 불경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의, 우리의 경험을 불러들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천천히, 영화를 사랑했던 마음을 조금씩 그러모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