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달리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분하다!!' 다. 내 몸과 마음의 한계를 처절하게 느낀 날이었다.
요새는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속도도 빨라지지 않고 금방 한계를 느껴버린다.
8월까지만 해도 덥고 습한 날씨 탓을 할 수 있었지만, 어제는 달리기 딱 좋은 날씨였는데 5킬로미터 직후 오버페이스로 달리다 과호흡이 와버리고 말았다.
결국 천천히 걸어서 호흡을 되찾고 간신히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그 사이 나를 제치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니 스스로에게 잔뜩 화가 났다.
1킬로미터를 달리는 시간을 '페이스'라고 한다. 최근에 5분 30초 대의 페이스를 만들려고 노력 중인데, 이게 정말 쉽지 않다.
속도를 높이는 것도 문제지만, 거리를 늘려가는 건 더 어려운데, 속도도 거리도 몇 달째 제자리걸음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달리기 기록을 볼 때 부러우면서도 뾰족한 질투심을 느낀다. 최근에 나에게 가장 강렬한 질투심을 느끼게 한 건 바로바로 기안 84다.
그가 풀마라톤을 신청하고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 엄청나게 체중을 감량한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제부터 기안 84는 내 라이벌이다!"
(속도를 높이려면 체중을 줄여야 하는데 나는 체중도 몇 달째 그대로라서 더 화가 났다.)
그 어떤 아름다운 연예인이나, 부족할 것 없는 부자들에게 느끼지 못한 질투심이었다.
단 한 번도 좋아하거나, 동경한 적 없는, 솔직히 그 정반대의 감정을 가지고 있던 유명인을 이렇게 부러워하게 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기안 84의 달리기에 대한 태도는 나의 성격과 정 반대다. 그는 그냥 달린다. 그는 운동화도 운동복도 갖추지 않고 혼자 인천까지 무작정 달려가던 사람이다.
나는 뭐든 좀 완벽해야 시작한다. 운동화와 운동복 갖춰 입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달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기안 84는 너무 쉽게 풀마라톤을 신청했다. 우선 도전하고 본다. 반면에 나는 풀마라톤을 신청했다가 얼마 전에 취소해 버렸다. 아직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완벽하게 잘 해내지 않으면 달리기가 싫어질지도 모를 것 같아서 도전을 미뤘다. 풀마라톤을 포기할 만한 이유는 그 외에도 많았고, 그럴만한 선택이었지만 마음 어딘가 포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 인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자꾸 도전하고 나아가고 싶은데, 나는 계속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2년 전의 나는 1킬로미터만 뛰어도 입안에 쇠 맛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던 초보 러너였다. 하지만 꾸준히, 천천히 성장해서 올해 봄에는 10킬로미터를 57분에 완주하는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운동회 달리기에서 매번 꼴찌를 도맡고 달리기를 '극혐'하던 어린이가 달리기를 즐기는 어른이 된 것이다.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싫어하던 애가 갑자기 왜 달리기를 하냐며 부모님이 황당해할 정도의 변화였다.
이렇게 달리게 된 건 진짜로 달리기가 즐겁기 때문이다. 바람을 가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신이 나고,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달린 뒤 마시는 이온 음료는 온몸에 아드레날린처럼 쫘르르 번져간다.
매 순간이 즐거움이었던 달리기에 질투심과 욕심이 섞이기 시작했다. 더 빨라지고 싶고, 더 잘 달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성장 속도는 더뎌진다. 당연한 일이다. 초보였을 땐 금방 10초씩 빨라지지만, 꼭짓점을 찍고 나니 성장이 쉽지 않다. 생각해 보면 삶의 많은 순간들이 그랬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책하고, 남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포기만 하지 않으면 문득 어딘가에 닿아있었다. 위대한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아도, 조금씩 성장한 내가 있었다.
질투는 나의 힘이다. 하지만 질투심 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질투는 온전한 연료가 아니라 불을 더 빨리 붙여주는 촉매제인 것 같다. 진짜 성장하려면 조금 더 발을 뻗어보고, 10초만 더 고통을 참으며 나아가는 과정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계속 달리기 위해, 오래오래 달리기 위해 나에게 집중하며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이어가야지. 이 레이스의 끝에는 기안 84에게 승리한 내가 아니라(그럴 수도 없거니와), 달리기를 백 퍼센트 즐기는 내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