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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Aug 11. 2020

나만 알고 있는 그 소리의 기원

모든 만남과 만남의 어긋남

8남매 중 맏이인 경상도 출신 엄마 덕분에 오빠와 나는 방학 때만 되면 대구 마산 진주 울산 등 이모와 삼촌들의 거주지를 돌며 경상 일주를 하곤 했다. 당시 휴대전화는 고사하고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미리 여행 일정을 잡고 유선전화로 소통해야 했으며, 교통편도 불편해 기차 타고 8시간은 기본이요, 산 넘고 물 건너 서울의 온도와는 차원이 다른 남쪽의 세계로 진입해야 했다.

인생은 늘 예상과 비껴간 것들의 나열 아니던가. 이제와 인생이라는 우연의 연속을 통해 인연인지, 필연인지, 악연인지를 구별하며 너와 나, 그리고 세상의 온갖 관계가 분류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넷째 이모인지, 다섯째 이모인지 서열을 잘 모르니 우리는 거주지를 이름 삼아 호칭하곤 했는데 그날은 마산 이모집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응당 집을 지키고 손님을 맞이해야 할 집주인 없었고 우리는 얼떨결에 아무도 없는 빈 집에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날 엄마, 오빠, 내가 나란히 누워있던 낯선 공간과 그 낯선 공간에서 생애 처음으로 듣게 된 어떤 소리가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일한 소리를 어디선가 다시 듣게 되면 자동으로 그때의 낯선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집주인 없는 낯선 공간의 문을 열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낯선 공간에 눕기까지의 기억은 다. 불을 끄고 셋이 나란히 눕고는 낯선 공간이 어색해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봤을 때, 그때 깜깜한 공간으로 새어 들어오던 소리가 하나 있었다. 근처의, 혹은 좀 더 멀리 있는 곳의 도로를 달리는 육중한 탈 것의 질주. 내가 생애 처음 듣게 된 그 소리는 아스팔트를 질주하며 달리는 자동차 바퀴의 마찰과 그 자동차를 가르는 바람 소리였다. 그 소리는 시골 할머니 집 뒤켠의 산 너머로부터 들리기도 했고,  거주지인 특정한 공간의 창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어디선가 질주하고 있는 자동차와 그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바퀴와 그 바퀴와 마찰을 일으키는 아스팔트,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가르는 바람 소리를 듣게 되면 그때의 마산 이모집을 떠올린다. 낯선 공간에서 뭔가 쓸쓸했지만 내 귀를 감싸는 새로운 소리가 나를 흥미롭게 했고, 이제 그 소리는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의 소리이기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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