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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Sep 02. 2020

그 골목의 냄새

미로 같던 어두운 골목의 기억

태어나고 돌이 지난 후부터 나는 쭉 아파트에서 살았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엔 아파트 이외의 거주지 생활은 없다. 그래서 자연스레 마당이 있거나 옥상이 있는 주택에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아파트 바로 앞에는 몇 개의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친구들과 놀 때면 규격화된 지루한 아파트보다 들쑥날쑥한 택의 골목길이 더 재미난 놀이 공간이었다. 미로 같던 주택들의 골목 사이로 가택 침입인 듯 아닌 듯한 경계선을 도둑고양이처럼 지나가던 때에 유독 특정한 골목 위치에서 나던 쿰쿰한 냄새를 기억한다. 반듯하지 않은 시멘트 계단을 따라 볕이 들지 않는 집과 집 사이의 골목을 지날 때면 늘 코를 찌르던 쿰쿰함인지 퀴퀴함인지, 악취 아닌 악취인 듯 악취 같은,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냄새가 있었다. 그 골목은 늘 어두컴컴했고 잠시라도 발을 붙이고 머뭇거렸다간 집안에서 불쑥 뭐라도 나올 듯이 비밀스러운 기운이 있었다. 그 골목이 지니고 있던 어둠, 정체된 공기, 특정한 냄새는 두려운 공간이었지만 파헤치고 싶은 욕망의 공간이기도 했다.

반듯한 아파트의 동과 동 사이를 돌아다니던 기억보다 미로 같던 옆 주택의 골목 칩입의 기억이 내게는 더 생생하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공간이다. 그곳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정갈하고 반듯한 공간보다 규정되지 않은 들쑥날쑥한 공간에 나는 더 이끌린다. 예상하지 못한 동선에 비밀의 공간이 숨어있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 짜릿한 발견은 없을 테니까. 현실과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그런 허름한 옛 동네에서의 남루한 생활이 나에겐 로망이다.

성인이 되어 마당이 있고 옥상도 있는 주택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평생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독립을 하게 되어 지독한 층간소음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됐다. 성냥갑이 차곡차곡 쌓여있듯 공동주택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규정된 모양 그대로 지루하고 딱딱하고 비정했다. 넌덜머리 나는 규정된 박스 안에서의 층간소음을 뒤로하고 남루하더라도 규정되지 않은 공간에 로망이 있는 이유이다.


지독한 층간소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다시 립된 공간을 차지한 나는 마당도 있고 옥상도 있는 이 집에서 배부른 소리를 쳐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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