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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Sep 02. 2020

나나 샴푸

실체 없이 기억만으로는 소환할 수 없는 냄새

스물 무렵 한강을 건너고 있는 전철 안이었다. 마지막 남은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질세라 온몸을 날려 그것을 주우려는 순간의 제스처. 찰나의 순간에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간 것은 나나 샴푸 향기였다. 80~90년대 챠밍 샴푸가 나오기 전 살구색 통에 담겨있던 나나 샴푸는 혼자 머리 감을 수 없어 엄마의 무릎에 눕혀지던 때의 기억이다. 한강을 지나고 있던 그때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간 그것을 주워 담으려 이리저리 킁킁댔으나 나나 샴푸 향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본디의 것이 아니면 기억만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후각 앞에서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간 그 향기의 기억을 쫒느라 발을 동동 굴린다. 그 심정은 본디의 것 앞에서 연일 킁킁대는 들숨의 집착과 맞물린다. 숨을 들이켜지 않으면 향기를 맛볼 수 없다. 날숨에는 사라져 버리는 것. 정량보다 더 한껏 들이쉬지만 다시 내쉬어야 들이쉴 수 있으니 후각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그때 한강을 지나고 있을 때 내 들숨과 함께 스쳐 지나간 나나 샴푸의 향기를 온전히 소환할 수 없다. 언젠가 또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면 보존될 수 없는 후각 앞에서 분명히 집착의 들숨을 쉬게 될 것이다. 그렇게 후각이 제외된 오감의 이미지 만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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