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줴이 Sep 03. 2020

현재 나의 상태

계절의 변화와 내 마음의 변화

동네 친구가 네덜란드에서 재즈 공부하던 시절,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몽롱한 의식 그대로 기타 줄을 튕겼다던, 그야말로 온화한 공기층 아래에서 충실했다던 타인의 시간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그 이상의 행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시기심 마저 들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온전히 그림만 그리면 좋겠어. 혹은 아무것도 안 하고 온전히 책만 읽으면 좋겠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기타를 부여잡고는 어떤 음이든 튕겨대는 일처럼, 기타 줄에 걸려있는 오늘의 음처럼 자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듯, 그렇게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그 무엇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아껴 사용하는 것일 테지만 가끔은 마냥 미룰 수 없다는 듯 내 감정에 즉흥성을 발휘해본다.

오늘의 나는 하루아침에 달라진 공기의 서늘함을 느끼고는 가을이 왔구나 생각했고, 코로나 덕에 이루어진 격리를 강제적 자유로 받아들이며 한껏 더 자유로운 마음을 품는다. 계절의 변화를 느낀 아침의 공기 덕분에 조금 기분이 들떠서는 냉장고에 있는 어제 요리에 쓰고 남은 당근 조각을 입에 물고 평소 같지 않게 뻐근한 저작 활동마저 즐거울 지경이다. 할 일은 늘 쌓여있지만 괜히 들떠있는 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산책을 계획하고, 이 들떠있음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쓸쓸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 기분을 내팽개치지 않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아 뚱땅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입 안에 아까보다 좀 더 잘게 다져진 당근을 오물거린 채 정해진 시간 따위 없는 이 자유로움을 유영하고 있는 나는 현재의 내 상태를 사랑하고 있구나 깨달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고, 오늘은 오늘의 시간이 지나가면 그뿐이니, 지금이 아니면 충실할 수 없는 것들에 온 마음을 기울여본다. 오감을 잔뜩 열어둔 채 지금의 이 순간을 한껏 껴안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나 샴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