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보다 더한 것은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던 인생 최악의 사태는 늘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최악의 사태를 보여준다. 인생이 그렇게 쉽냐는 듯 가볍게 비웃어 재끼는 시간의 어퍼컷은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무기력하게 길을 헤매게 한다.
무거운 공기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숨만 쉬고 있던 나는 마지막 종착지로 향하는 길 위에 누워 있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마지막 경유지를 떠올렸고 그대로 서둘러 짐을 싸버렸다. 마치 사약을 마시기 전의 사탕 한 알 같은 것.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도망치듯 시간에 잡히지 않기 위한 마지막 티켓이었다.
좁고 불편한 기내에서 장시간 비행하는 내내 눈물은 마르지 않은 채 차오르기만 했고, 훔치고 받아내느라 정신없던 시간은 마냥 무겁기만 했다. 그저 시간을 벌어보기 위한 경유지로써의 행선지 일 뿐이었다. 오헤어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빠져나가는 출구에서까지 도망치듯 달아나는 내 발은 나를 넘어뜨리기에 이르렀고 타인의 도움은 도망치는 내 시간을 방해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에 잡히지 않기 위해 한걸음 달아났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상한 것들을 비껴간다. 바닥만 보고 걷고 있던 의미 부여하지 않은 길 위에서 우연히 내 발등 위로 떨어진 또 다른 티켓 한 장.
시카고 미술관에서 그림 하나와 마주한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는지,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빌어먹을 인생의 무거운 숨을 들이쉬던 무기력한 내 공간으로부터 멀어져, 지구 정반대편인 이곳에서 이름 모를 그림 한 점과 마주한다.
Paris Street; Rainy Day 1877
Gustave Caillebotte(French, 1848-1894)
인생은 어쩌다 우연히 마신 그날의 음료처럼 입안을 감싸는 복잡 미묘한 과일 맛과 꽃 향을 기억하고는, 잊을 수 없는 그날에 또 다른 하루를 더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위한 마지막 경유지에서 그날의 간절한 시간이 잊히지 않는 것, 두 번 다시 재현할 수 없는 그날의 음료를 기억해내기 위해 또 하루를 살아내는 것. 종착지였던 그곳은 출발지가 된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때 예상하지 못했던 그 길을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이들과 함께 나아간다. 그날의 복잡 미묘한 과일 맛과 꽃 향을 기억해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