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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Jun 13. 2021

섬의 기운

병풍 같은 바다로부터 지켜지는 것들

앞으로 예상할 수 있는 삶의 나락이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쯤 육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홀가분히 바다 건너 섬으로 갔더랬다. 도피 혹은 유배. 짙게 드리운 바다 밑 검은 세계가 두려우면서도 그 검은 세계를 방패 삼아 내 세계를 지키려는 것이었다. 바다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모인 이방인들은 대체로 잃을 게 없는, 상처 받은 자신의 영혼에 조금 무뎌진, 그래서 그곳에서만큼은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꿈은 김치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다는 육지에서 섬으로 떠밀려온 이방인들에게 공통의 마음을 갖게 했다. 희한하게도 그랬다.


제주도에서의 삶이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 못해 성공적인 유배생활은 못되었지만, 나는 그곳의 이방인들에게서 공통의 마음 상태를 발견한 것만으로 대리만족을 느꼈다. 삶이 진중하고 무거워야 할 필요는 없다고 그들과 같이 생각했다. 그래서 하와이에서의 삶은 어떨까 하고 지독히도 불안하고 슬프고 아팠던 지난 제주도의 실패한 겨울을 떠올리며 섬나라의 기운을 상상해본다.


고립의 긍정 기운은 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주체적 고립을 위해 육지를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으로 하와이를 한 번 생각했고, 잭 존슨*때문에 하와이를 또 생각했으며, 심시선* 자식들의 행보에 다시 한번 하와이를 생각한다. 다양하게 글루텐 프리까지 섭렵하던 시카고의 팬케이크 가게에서의 그 맛과 분위기, 기분을 재현해 낼 수 없어 자꾸 그날의 팬케이크를 생각하는 것처럼 하와이 섬을 자꾸 머릿속에 띄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하와이 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정세랑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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