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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Feb 23. 2022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당연하지 않은 것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 들어 성인남녀를 불문하고 어린 학생들까지도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곤 한다. 흔히 특정한 언행을 보이는 여성을 가리키며 "너 페미냐?"라고 묻곤 하는데, 이들이 모두 페미니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사용한다고는 볼 수 없다. 남녀 갈등의 골이 깊어져 가는 상황에서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의미가 왜곡된 채 사용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당연시 여기던 것들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물꼬가 터졌을 뿐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한 미투 운동에서부터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남발해 사용하는 “너 페미냐?”의 ‘페미’는 아마도 페미니스트를 지칭하는 것일 테고, 아무래도 그들이 잘 모르는 것 같은 그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대가족 안에서 왜 남자들과 여자들의 식사 시간이 달랐고, 왜 남자들과 여자들의 밥상 사이즈가 달랐는, 왜 아빠는 바깥일만 하고, 왜 엄마는 집안일만 했는, 그 누구에게도 왜라고 묻지 못했다. 모두가 그렇게 행하고 있으니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깐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세상은 온통 이상한 것 투성이다. 그래서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모두가 빨간색 옷을 입고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나에게 빨갱이라고 말하는 꼴과 다를 바 없다.

 세계 인구의 성비는 여성이 52%로 남성보다 그 수가 많다. 그런데 “높이 올라갈수록 여자가 적어진다.”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왕가리 마타이는 권력과 명예가 따르는 지위의 대부분을 남자가 차지하고 있다며 이와 같이 표현했다. 흔한 알바 공고에도 몇몇 분야에는 남자와 여자의 시급 다르게 표기되어 있으며, 남성의 평균 연봉보다 여성의 평균 연봉이 더 적은 것이 사실이다. 2009년 미국에서 릴리 레드베터 공정 임금법이 발효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똑같은 자격 조건으로 똑같은 일을 했는데 남자가 여자보다 더 돈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글쓴이의 경험담을 풀어보겠다. 아시아 최대 뮤직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모 페스티벌에서 글쓴이는 무대 지원 자원봉사자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공연이 끝난 후까지,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게 일이다. 각 공연 팀별로 악기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리허설 과정에서 그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다른 공연팀으로 전환될 때 재빠르게 악기의 이동을 도와야 한다. 그중에 드럼은 바퀴 달린 이동식 무대에 따로 세팅하게 되는데 연주 중에는 바퀴가 움직이지 않도록 이동식 무대를 들어 올려서 그 자리에 나무로 된 버팀목을 끼워 넣어야 한다. 당시 무대 지원 자원봉사자 4명 중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젊고 건장한 남자였다. 이동식 무대를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건장한 남자 셋 중 아무도 그것을 해결하지 못해 결국 내가 하겠다고 나서야 했다. 물론 모두가 나를 말렸다. 우리가 못한 걸 네가 할리가 없잖아 따위의 생각이 포함되었을 거라 짐작한다. 그런데 재빠르고  흔들림 없이 내가 그것을 해결하고 말았네? 젊고 건장한 남자 셋은 그 순간 아무짝에 쓸모없었고, 정작 해결한 사람은 그중에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아무도 젊은 여자애가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 잘하고도 인정 못 받는 이상한 기분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이다.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은 없다.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영역을 제외하고 그 무엇도 남자만 해야 하고 여자만 해야 하는 것은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가 당연시해오던 것들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세상이다. 너 페미냐? 며 말끝마다 페미니스트를 거론하는 그들은 아마도 할아버지, 아버지가 누리던 것들을 누리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논점을 흐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별을 내세우며 징징대는 연약한 이들은 논쟁에서 제외.

We should all be feminists - Chimamanda Ngozi Adichie / TEDxEuston

 도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위 강연의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현재(2022년 2월 기준) 728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화제가 되면서 비욘세 노래에 강연 일부가 피처링되기도 했다.

Beyonce - ***Flawless ft. Chimamanda Ngozi Adichie


+ 책을 읽으면서 매끄럽지 않은 번역 때문에 일부 인내해야만 했음을 고백한다. 한국출판문화상의 번역 부분 수상이력이 있는 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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