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주제: 욕망과 윤리, 관음과 애도
핵심 개념: 라캉의 욕망의 대상(a), 페티시즘, 전이적 사랑
헤어질 결심감독박찬욱출연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김신영, 정영숙, 유승목, 박정민, 서현우개봉2022.06.29.
헤어질 결심 각본저자정서경,박찬욱출판을유문화사발매2022.08.05.
1️⃣ 욕망의 구조 ― “당신이 보이는 곳에서만 나는 존재한다”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해준(박해일)은 본능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그는 사건을 관찰하고, 타인의 심리를 추리하며, 늘 ‘타인을 통해 자신을 규정’한다.
이때 그의 시선이 머무는 대상이 바로 ‘서래(탕웨이)’이다.
라캉의 관점에서 보면, 서래는 해준의 욕망의 대상(a, objet petit a)—
즉, 결핍을 채워줄 것 같지만 결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결핍의 대리물이다.
그는 그녀를 통해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고, 욕망할 수 있다”는 환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는 타자의 욕망에 속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그의 욕망은 더 이상 충족되지 않고 불안과 윤리적 혼란으로 변한다.
�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지속된다.
라캉이 말했듯, 욕망의 본질은 결핍 그 자체의 지속성이다.
해준이 서래를 잃고도 계속 그녀를 ‘추적’하는 이유는
그녀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 그 자체를 쫓고 있기 때문이다.
2️⃣ 관음과 애도의 이중 구조 ― “보는 것과 잃는 것”
이 영화는 철저히 ‘시선’의 영화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관찰과 응시,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위치를 바꾼다.
라캉식으로 말하면, 해준은 서래를 바라보는 동안
‘응시(le regard)’의 주체가 아니라 응시당하는 객체로 전도된다.
서래는 항상 약간의 거리에서 그를 쳐다본다.
그 시선은 유혹이자 심문이며, 동시에 ‘나를 보라’는 호출이다.
이때 해준의 관음적 욕망은 단순한 성적 호기심이 아니라,
죽음과 상실의 불안을 통제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다.
서래가 사라진 뒤, 해준은 “그녀의 흔적”을 뒤쫓으며
사건의 현장을 복기하고, 음성 녹음을 반복 청취한다.
이 반복행동은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mourning)’와 ‘멜랑콜리(melancholia)’의 경계에 있다.
그는 잃어버린 대상을 애도하지 못한 채,
그 결핍을 마음속에 고착시켜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수행한다.
“그녀가 나를 떠났기에 나는 더 이상 ‘정상적 주체’로 살 수 없다.”
그는 사랑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근거를 잃은 것이다.
3️⃣ 페티시즘 ― “사랑의 증거를 붙잡으려는 무의식”
해준은 서래의 물건, 음성, 향, 말투 등을 집착적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단순한 사랑의 잔재가 아니라 페티시적 보상(fetishistic substitute)이다.
그는 그녀의 실제 부재를 부인(denial)하면서,
그녀의 일부나 흔적을 통해 결핍을 봉합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예컨대,
그녀의 휴대폰 음성을 듣는 장면은 ‘대체된 접촉’,
시계를 만지거나, 무전기 너머로 교신하는 장면은 ‘관계의 잔향’이다.
라캉적 관점에서 페티시는 결핍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징적 덮개이며,
그 덮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서래가 스스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며 사라지는 장면은
그 덮개가 완전히 사라진 순간, 즉 해준이 더 이상 욕망의 환상 속에 머물 수 없음을 상징한다.
그녀가 사라짐으로써 욕망은 끝나지 않고, 오히려 완성된다.
욕망은 실현이 아니라 부재의 지속을 통해 존재한다.
4️⃣ 결말 ― “윤리적 주체의 탄생”
서래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라캉이 말한 ‘욕망의 윤리’(the ethics of desire)의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욕망을 존중하기 위해 자기 소멸을 선택한다.
해준은 그녀를 잃고 비로소 욕망의 주체로 태어난다.
이 결말은 “사랑과 윤리의 경계”를 묻는 질문이자,
“욕망을 따르는 것이 윤리적인가?”라는 정신분석적 딜레마의 시각적 구현이다.
�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이야기인 동시에,
결핍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응시와 윤리적 각성의 이야기이다.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은 곧 욕망이 사라지는 순간이며,
박찬욱은 그 ‘사라짐의 아름다움’을 라캉적 언어로 시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