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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길, 그 아저씨

by 램프지니

처음 자전거를 배운 건, 내가 국민학교 고학년 때쯤,

네 살이나 어린 여동생에게서였다. 형제자매 사이에서 나이 많은 쪽이 항상 가르치는 입장인 줄로만 알았던 나는, 그날 자존심을 접고 동생에게 고분고분하게 따라야 했다.


그야말로 혹독한 수업이었다.

“핸들 똑바로!”,

“넘어졌으면 다시 타!”

같은 말들이 채찍처럼 날아왔고, 나는 삐뚤빼뚤 중심도 못 잡은 채 구르다시피 배워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싫지만은 않았다.


며칠 뒤, 드디어 자전거는 조금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치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동네 골목이 갑자기 놀이터처럼 느껴졌고, 바퀴 굴러가는 소리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자유로웠다. 학교가 끝나면 동생들과 자전거를 끌고 골목을 돌았고, 작은 동네를 탐험하듯 누비며 ‘라이딩’이란 단어도 몰랐던 나만의 라이딩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끝자락에 있는 자주 다니지 않는 내리막길을 마주했다.

그 길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숨이 턱 막힐 만큼 가파른 경사고 적어도 내 눈에는 45도쯤 되어 보였다. 아래는 6차선 대로에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저기로 한 번 내려가 봐!”

누군가의 한마디에, 별생각 없이 핸들을 돌렸다. 어릴 적의 용기는 생각보다 무모한 경우가 많다.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부릅뜨고, 온몸의 용기를 끌어모아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밟아선 안 된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경사는 아무런 말 없이 속도를 더해줬다. 거기에 가속도까지 붙은 속도는 공포 그 자체였다. 브레이크는 이미 내 말 따위 듣지 않았다.


“아악! 살려줘!!”

내가 터뜨린 외침은 너무 짧고도 날카로웠고, 세상은 잠시 정지된 듯했다.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오직 속수무책 바라보고만 있던 동생들의 어쩔 줄 몰라하는 당황한 표정뿐이다.


그리고 그때, 길 끝 어귀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배달용 자전거를 끌고 가던 한 아저씨. 나는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그 아저씨를 향해 돌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저씨는 움직이지도 않았고, 달려오던 나를 막을 준비가 된 것처럼 서서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쿵!

충격이 전해졌고, 바닥에 나뒹굴며 멈췄다. 숨이 턱 막혔지만, 다치진 않았다. 도로에 닿기 직전, 나는 그 아저씨에게 부딪혀 멈춘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그 아저씨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고, 서로 어떤 말도 주고받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괜찮니?”라고 묻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가던 그 아저씨.

세상이 무심히 스쳐 지나갔을 그 순간,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자전거만 보면, 문득 그 아저씨가 떠오른다.

그날의 그 내리막길, 그 날카로운 속도, 온 신경이 곤두선 두려움, 그리고 그 아저씨의 무심한 듯 다정한 등.


살면서 다시 만날 수 없었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 안나는 그 사람.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때, 그 길 그리고 그 아저씨로 기억합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렇게나마 당신께 그때 못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 덕분에 저는 지금도 이렇게 인생의 길을 잘 달리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선행이 누군가에겐 큰 기적이 된다는 걸, 저는 아주 오래도록 간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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