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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군 Jan 08. 2017

부산대병원 9병동 6호실


두 시간 만에 짠내나는 부산이 내 코앞에 풍기다니, 세상이 좋긴 좋아졌다. 소음도 흔들림도 거의 없는, 그러나 가끔 멈춤은 있는, KTX는 나를 어느새 한반도 동남쪽 끄트머리로 디밀어 주고 있었다. 객실에 열 명에 세 명 꼴로 보이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이들은 도대체 왜 이런 성수기에 부산을 가려나 싶었는데 북적함 그 자체가 한국만의 볼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침 열 시에 도착한 부산역 광장은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이 보일 정도로 한산했다. 오늘 비가 예고되어 사람들이 바깥에 나오길 꺼리나 싶어 쾌재를 부르며 커피 한잔 하러 갔다 왔더니, 이내 광장은 사람들로 메워졌다. 온다던 태풍은 소식도 없고 사람들의 열기와 폭염만이 광장의 온도를 높이고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교수님은 암병동에 계셨다. 병실 앞에 서 계시던 사모님께 인사드리는 순간, 사모님은 초면인 나에게 눈물을 보이셨다. 그렇게 건강하셨던 교수님은 귀국 며칠 만에 초췌한 모습이셨다. 당뇨가 함께 닥쳐서일까, 얼굴이 누렇게 변하셨다. 나를 보시더니 눈을 크게 뜨시고 난데없이 "내가 그러니까 27년을..."이라고 중얼거리신다. 그렇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 문장은 종결되지 않고 사모님의 덧칠을 기다린다.
 
 "이 양반이 정신이 이렇게 왔다갔다해요"
 
국문과 교수로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의 이십칠 년은 그렇게 허무하게 스러져가고 있었다.  
 
사모님과 나란히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엄마 아빠 같은 생각이 들어서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어느새 어머님이 되어 있었다. 어머님은 내가 아들 같다며 내 손을 붙잡고 지난 4년을 두런두런 이야기하셨다. 적절히 자식자랑도 하셨지만 난 어느새 교수님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암병동에 계신 교수님의 모습이 어머님은 믿기지 않으시는 듯 했다. 어머님은 마른 입술을 연신 깨물었다.
 
"문 선생님요. 제가 이 양반이랑 여기 며칠 있어보니까요. 삶과 죽음이 서로 달리 있는게 아니더라니까요. 삶과 죽음이 요로케 동일선상에 있어요. 지금은 사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란 말이에요"
 
어머님은 두 손을 나란히 이어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에 세우셨다. 어머님께 이제 삶과 죽음은 손바닥 뒤집기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올라오는 열차는 휴가철 탓인지 만원이었다. 승강장을 걷다보니 헤어지는 연인들이 눈물 빼는 모습이 보인다. 당분간 헤어질 염려 없는 애인을 가진 나로서는 설레는 풍경이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아까 그 눈물 빼던 스무살 남짓 여학생이 애처롭게 누군가를 찾는다. 주인공은 내 뒷좌석 어느 남학생. 처자는 애타는 마음에 바싹 말라버린 몸을 바스라지게 접어 남자의 여행가방에 담겨 서울로 쫓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열차가 1분의 에누리도 없이 부산역을 박차고 나서기 무섭게 시작되는 그들의 전화통화.
 
"하아... 방금 헤어졌는데 왜 이렇게 보고싶냐. 응 미치겠다. 쪼금만 참아. 9월에 올 거잖아. 응, 나도… "
 
이 눈부신 청춘들에게 9월은 곧 오겠지만 플랫폼에서의 쿵쾅거림이 또 올까 싶다. 삶과 죽음처럼, 만남과 헤어짐도 결국 동일선상에 혼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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