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merbooks & Afterwords Cafe
2011년 11월 어느 토요일,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을 데리고 워싱턴 DC에 위치한 독립서점 Kramerbooks & Afterwords Cafe에 들렀다. 이들은 중동 관련 서적 등 몇권의 책을 구입했는데, 이곳을 찾은 까닭은 '자영업자를 위한 토요일(small business Saturday)'을 맞이해 이들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고. 독립서점의 규모와 고객이 우리와 비할 바 없이 큰 미국임에도 '독립'과 '영세함'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이미지인 모양이다.
사실 크레이머스는 내가 지금껏 경험한 독립서점 중 가장 활기찬 곳이었다. 듀퐁서클에서 잡힌 약속에 먼저 도착해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금요일 늦은 밤 버스를 타고 뉴욕에서 건너올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알맞은 영업시간과 위치를 지녔다.
그간 낮에만 보아왔던 크레이머스의 빨간 네온사인, 그리고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책들이 금요일 밤을 맞아 더욱 매력적으로 빛났다. 카페와 바를 함께 거느리는 서점인 만큼, 늦게까지 열어둘 만 하겠다고 생각하며 얼른 입장했다.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도 때울겸,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라 밤거리가 좀 무서웠다.
서점 안쪽으로는 불금의 열기가 묘하게 책장에 스며들고 있었다. 한쪽에선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엮인 손님과 점원들이 책과 세상에 관한 느슨한 잡담을 주고 받는다. 게다가 늦여름 밤의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책방에서의 라이브 공연을 듣는다는 것은 묘한 경험이다. 음악이 사람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듯 하다.
책방 한켠, 모든 잡담과 생음악이 닿지 않을 위치에 크레이머스 바가 들어서 있다. 물론 이곳에선 다른 종류의 음악과 잡담이 이어진다.
1976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 처음 문을 연 크레이머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주말에는 밤새 문을 열어두는 (요즘에는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새벽 네시까지만 연다고) 서점/카페를 기획하게 되었을까.
섣부른 추측으로는 독립서점의 자유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밥벌이용 야근이자 문라이팅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평소에 꿈꾸던 책읽는 곳의 모습을 실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프라인 서점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춰가는 2015년, 크레이머스가 오래도록 유지해온 그만의 전략은 보기좋게 먹혀들고 있었다.
2010년 크레이머스를 지나친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가본 나는 물론 듀퐁서클이 어딘지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밤거리를 거닐다가 마주친 서점이 크레이머스였다. 그시절 나는 그렇게 근사한 서점을 지나치기 어려웠던, 뭔가 채워지지 않는 소유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비록 그날 한 권을 구입한 이후 아마존의 수렁에 빠져 더이상 지갑을 열지 않았지만 지금도 DC에 갈 적에 여전히 발길이 향하는 곳이 크레이머스다. 바라건대 다음번 방문에선 우연이 한번더 묘수를 부려 주인장을 만나고 싶다. 만나서 책방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물론 쉽사리 말 붙일 자신은 없기에 우연을 운명으로 바꿀 용기도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