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는 전철을 탔다. 술자리가 있는 대학 동창들 모임이다. 학생 때 절친으로 지내던 서너 명이 모인다. 그중 신문기자 출신인 영찬은 입담이 청산유수이다. 그는 선린중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중3 때 담임선생이 그랬다. "어디든 배정받아도 된다. 딱 한 군데 영등포의 J고등학교만 가지 말아라"
그는 J고등학교에 배정됐다. 이 학교는 그 해 처음으로 정규 일반 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그 전에는 학년 당 한 학급만 있는 전수학교였다. 또 밤에는 여고생이 다니는 야간 여자 전수학교가 된다. 등굣길 왼쪽으로는 OB 맥주공장이 있어서 시큼한 맥주 효모 냄새가 코를 찌른다. 또 오른쪽에는 진로 소주 공장이 있어서 고구마를 쪄서 발효시키는 듯한 시금털털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렇게 허연 수증기와 묘한 냄새를 내뿜는 사잇길을 경수는 3년이나 지나가야 했다. 지금은 그 공장들이 있던 부지가 영등포공원으로 조성됐다.
영찬이 수업을 끝내고 하교하는 길에서는 등교하는 야간반 여학생 선배와 자주 마주친다. 여학생들은 지금은 타임스퀘어가 들어선 자리에 있던 경성방직 여공들도 있고, 대한제분 여직원들, 그리고 크고 작은 보일러, 철물 공장 경리 직원들도 있다. 영찬은 여학생 선배들의 짧게 잘라서 입은 교복 치마가 신기했고, 또 그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뽀얀 허벅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슬쩍 쳐다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여선배들이 영잔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런다. "야 이 ××새끼들아. 뭘 봐? 눈 깔어!" 영찬은 깩 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지나간다.
한참을 지나면 영등포역 근처에 이른다. 어둠이 슬슬 머리를 풀어헤치는 시간이 되면 역 앞에는 포장마차의 불빛이 나란히 줄을 맞추고, 골목에 늘어선 집들의 유리창 너머에도 핑크 빛 등불이 하나 씩 둘 씩 어스름 하늘에 묘한 빛의 인사를 건넨다. 사랑의 여신이 좋아하는 색은 핑크 빛인지도 모른다. 핑크 빛 등불을 등지고 짙은 화장과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아가씨들 여럿이 팬티 길이와 거의 비슷한 짧기의 치마를 입고 밖으로 나와 길을 막아선다.
"얘야. 누나랑 놀다가! 재미나게 해 줄게" 가끔은 모자를 뺏겨서 안으로 찾으러 갔다가 동정을 잃은 친구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튿날 친구들이 놀리면서 묻는다. "진짜 재미있게 해 줬냐? 어땠는데?" 모자 찾으러 갔던 친구는 그랬다. "너네 같은 애들이 재미가 뭔지나 알아?!ㅋㅋ "
이렇게 학교를 다녔으니 무슨 공부가 제대로 됐겠냐고 영찬은 그 특유의 입담을 늘어놓는다. 그가 J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입학했던 동기 7명 가운데 5명은 예비고사조차도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예비고사는 합격했지만 대학 입시에서 1차 대학에 보기 좋게 낙방하고 2차 대학에 진학했다.
앞서 그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재야 운동으로 제법 이름이 알려졌던 이모 선생이 국어 교사로 부임해 왔다. 그 선생은 전수 학교 때 입학한 영찬의 선배들을 가르쳤다. 영찬의 선배들은 공부와는 거의 담을 쌓고 지내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한테 두들겨 맞았다. 마치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과 장동건이 선생한테 흠씬 두들겨 맞는 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그들의 가방에 책은 들어있지 않고 면도칼만 몇 개씩 있었지만 그래도 선생한테 대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선생은 면도칼 졸업생과 우연찮게 조우를 하게 된다. 조우한 곳은 안양교도소였다. "아이고! 선생님께서는 여기 웬일로 들어오셨어요?" "응. 세상이 하수상하니 그렇게 됐네" 선생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면도칼 졸업생은 안양에서 내로라하는 깡패였기에 조폭으로 잡혀와 형무소로 왔고, 선생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재야 운동을 하다가 내란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형무소에 들어왔다. 그들은 거기서 그렇게 다시 만났다. 이른바 '빵 동기'가 된 것이다. 방장을 하던 면도칼 졸업생은 선생을 깍듯이 모셨고, 선생은 그 졸업생의 보호 아래 그다지 고생하지 않는 수감 생활을 했다.
또 세월이 흐르고 흘러 둘은 또 만나게 된다. 면도칼 졸업생은 개과천선하여 안양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고깃집을 열었다. 재야운동을 하던 이력으로 어떻게 보수당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무렵 선생은 '지조가 좀 수상하다'는 비판 속에서 국회의원에 두어 번 당선되어 여당의 당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국회의원은 면도칼 졸업생의 고깃집에 대문짝만 한 개업 축하 화환을 보냈고, 또 직접 찾아가 축하해 주기도 했다. 그 고깃집은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고, 또 여당 대표의 후광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아무튼 경찰이나 세무서, 구청에서도 그다지 까탈스럽게 따지고 들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