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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Dec 21. 2017

* 컴필레이션 *

짜깁기 음반은 실패하지 않는다

           Emi Fujita와 Diana Krall
            

* 짜깁기 음반

  앞서 프랑스 출신의 디스크자키 '끌로드 샬(Claude Shalle)'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소개했다. 컴필레이션 음반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컴필레이션 음반에 대해서 초등학교 때 개구리 해부하듯이 이번 기회에 아주 철저하게 해부하려는 것이다. 아무튼 좀 지루할지는 모르나 이른바 '완전정복' 차원에서 다루고 두어 가지 사례의 음반도 소개하면서 말이다.

  이른바 컴필레이션 음반(Compilation Album)의 사전적 해석은 '한 음악가 또는 여러 음악가의 노래를 특정 분류에 따라 모은 음반'을 말한다. 그래서 다른 말로는 '편집 음반'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서 짜깁기 음반이란 뜻이다. 이 짜깁기 음반을 보다 폭넓게 본다면 대략 다음 8가지 부류로 더 세분할 수 있다.


1. 한 음악가의 베스트 음반.
2. 한 음악가의 음악 집대성 박스 세트.
이 두 가지 컴필레이션은 이른바 대형 가수나 음악가가 아니면 꿈도 못 꾸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3. 한 가지 주제로 여러 음악가의 음악을 선별해서 만든 컴필레이션.
4. 장르에 따른  컴필레이션.
이것은 예를 들어 '사랑' 같은 친숙한 주제로 뽑는 경우가 많고, 장르로는 클래식, 재즈, 가요 등 같은 분류에서 뽑는 것을 의미한다.

5. 여러 음악가의 히트곡을 뽑아서 만든 컴필레이션.
컴필레이션 음반 가운데 어쩌면 가장 손쉽게 음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팝송을 예로 들자면 비틀스의 'Yesterday' 이글스의 'Desperado' 등과 같은 곡처럼 지나가는 강아지가 들어도 알 수 있는 노래를 모아서 다시 부른 음반이다.

   그런데 이런 음반은 아주 중요한 구분이 있다. 그래도 꽤나 알려진 가수가 불러서 완성도 높게 만든 것은 나름 곡의 해석을 새로 했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의미 있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고 판매도 제법 잘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짝퉁 가수의 니나노 음반이나 싸구려 메들리 음반 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이런 음반을 내려면 세심한 계획과 마케팅이 수반되어야 한다.

6. 프로모션 컴필레이션 또는 샘플러.
여러 음반에서 대표곡 하나씩 만을 선별해서 오디오나 음반 전시회 때 'Not for Sale'이라는 거창한 딱지를 붙여서 비매품을 나눠주는 경우에 사용된다. 애호가들은 그것을 들어보고 엄청 감명받아서 그 속에 들어있는 음반을 다 구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 같은 멍청이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아쉽게도 딱 그 컴필레이션 음반에 들어있는 곡만 좋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것을 두고 꼭 ‘찍어 먹어봐야 된장인 줄 아는 바보’라고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7. 레이블 프로모션 컴필레이션.
필립스나 도이치 그라모폰, EMI, 쏘니, 하이페리온, RCA, 아르히브 등등 음반 회사들이 자사의 음반 홍보를 위해 짜깁기해서 팔거나 무상으로 공급하는 음반을 말한다. 특히 이런 음반은 아주 친숙한 악장이나 멜로디만을 뽑아내서 원판 구매력을 극도로 자극한다.

8. 프로듀서, 디스크자키 컴필레이션.
방송 PD, 디스크자키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모아 만든 음반을 말한다. 이런 경우 각 음반사와 사전에 저작권에 대한 협의를 마쳐야 가능하다.


* 히트곡 다시 부르기

  지금까지 언급한 컴필레이션 음반 가운데 앞서 다섯 번째로 설명했던 '히트곡 다시 부르기' 컴필레이션 음반과 관련된 가수에 대해서 좀 더 부연 설명하고자 한다. 사실 과거에 당대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노래를 다시 부른다면 부르는 가수도 어쩌면 모험일 수 있다. 자신의 곡도 아닐뿐더러 팬들은 히트했던 당시의 폭발적인 인기와 곡 분위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물어물 불렀다가는 고속도로 휴게소로 쫓겨 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 귀라는 것이 좀 보수적이라서 새로운 노래를 단번에 좋아하기가 참 어렵다. 물론 명곡은 단 한 번에 완전히 빠져 들지만 대개의 경우 반복 청취를 통해서 익숙해지고 친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에 한 번이라도 더 자신의 신곡을 내보내려고 혈안이 되고 또 시쳇말로 ‘쌩쑈’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왕년의 히트곡은 그런 걱정이 없다. 이미 동네 강아지도 익히 알고 있는 노래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잘만 부르면 속된 말로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이런 짜깁기 음반을 낸 대표적인 미국 가수는 안타깝게도 생전에 무명으로 지내다가 일찍 생을 마감한 에바 캐시디(Eva Cassidy)가 있다. 당시에는 음반 회사에서 음반도 찍어주지 않을 만큼 냉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가 불렀던 노래가 혹시 어디 좀 더 남아있는 것이 없을까 찾을 정도로 아쉬워하는 가수이다.


에미 후지타


* 흘러간 팝송 다시 부르기

  동양권에서도 이런 가수는 각 나라 별로 꽤 많지만 그저 자국에서 인기가 있었을 뿐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음반도 국제적으로 엄청나게 판매한 가수는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런데 묘하게 일본에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컴필레이션 가수가 하나 있다. 에미 후지타(Emi Fujita)라는 가수이다. 이 가수는 애초 남편과 듀엣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어 노래나 본인의 곡이 있기는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에미 후지타가 세계적인 컴필레리션 가수로 알려지게 된 음반. 카모마일.


  그녀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그냥 흘러간 옛날 팝송을 이것저것 모아다가 동양적 분위기로 아주 곱게 불러서 크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어찌 들어보면 앳된 소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 노래를 하는 가수가 다소 호흡이 짧은 듯 느껴지기도 할 뿐만 아니라 중간에 간혹 음정이 불안해서 반음 정도 플랫(b)이 되는 경우도 있어서 가창력에 대해서는 다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느낌이야 어찌 됐든 간에 가수가 노래하는데 묘한 매력이 있어서 음반만 잘 팔리면 뭐 장땡이다. 아무튼 그녀의 곡은 각종 광고에도 적지 않게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Emi Fujita의 노래가 광고음악으로 꽤 많이 사용됐다. 'Desperado'는 대한생명, 'Today'는 구몬학습과 삼성카드,  'What a Wonderful World'는 오피러스 자동차와 한화금융 네트워크 광고음악 등으로 쓰여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에미 후지타의 대표 음반은 2003년에 낸 <Camomile Extra>라는 음반인데 곡들은 앞서 말한 대로 흘러간 팝송이다. 대표적인 수록곡으로는 'Desperado'  'Unchained Melody '  'Moon River' 등 14곡이다. 아무튼 국제적이라는 것은 때로 의미가 있다. 서양의 팝송 애호가들이 일본 엥카의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 ひばり, Misora Hibari)는 몰라도 에미 후지타는 안다는 면에서 그렇다. 이 음반은 이른바 장사가 잘 돼서 시리즈로 마르고 닳도록 엄청 우려먹었다. 조금 다른 유명 팝송을 집어넣어서  2004년에는 <Camomile Blend> 2006년에는 <Camomile Classics> 2010년에는 <Camomile Smile>을 냈다. 하지만 '형 만한 아우 없다'라고 나머지 들은 맨 처음 것만큼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 우리들의 리그

  다음으로 소개할 컴필레이션 음반은 Diana Krall이라는 가수의 'Wallflower'이다. 그런데 제목인 'Wallflower'는 왜 'Wall'과 'Flower'를 붙여서 썼을까? 그 이유는 붙여진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즉 '벽의 꽃'이란 낱개의 단어를 떼지 않고 붙여서 쓰면 '무도장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벽에 홀로 있는 여자'라는 뜻이 된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1964년생인 Diana Krall 은 본래 캐나다 출신 재즈 가수이다.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재즈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라이프 스토리를 보면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고 침이 튀게 자랑하는데, 솔직히 어려서 뛰어난 재능이 없었던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 여러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이렇게 저렇게 살다 보니 그 재능을 살리거나 키우지 못한 것일 뿐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녀가 별나게 재능이 뛰어났다 하니 뭐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자.


  Diana Krall은 재즈계에서는 여성 보컬로 비교적 알려진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그래미상을 5차례나 수상했고 주노상을 여덟 번이나 받았으니 대형 재즈 가수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녀가 재즈계뿐만 아니라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은 바로 2015년 컴필레이션 음반을 내면서 더욱 대중성을 얻게 되지 않았나 싶다. 앞서 그녀가 낸 여러 장의 음반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Wallflower'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음반은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Desperado'  엘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와 같은 명곡들을 재즈 풍으로 다시 불러서 낸 것이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차분히 부르는 재즈는 정말 재즈이면서도 재즈 같지 않다. 아무튼 듣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고 또 천천히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컴필레이션 음반은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 음반에는 자신의 곡 ‘Wallflower'가 하나 들어있다.

다이아나 크롤 음반 표지. 이 음반에 자신의 곡은 '월 플라워' 딱 하나 들어 있다.


  이 곡들을 들으면서 필자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 재즈를 하는 이들의 연주를 자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의 재즈 보컬에는 이상하게도 임프로비제이션이 너무 많고 또 호소력보다는 오히려 전체적으로 흥얼거리는 듯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어서 좀 들떠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음악의 본질적인 정서의 전달보다는 오히려 들뜬 즉흥성에 너무 치중하는 본말전도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재즈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애호가들이 쉽게 접근하고 또 피부에 와 닿고 심금을 울리는 가슴 뜨거운 재즈가 오히려 대중성을 넓혀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협소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광대한 '우리들의 리그'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다이아나 크롤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하는 모습.

  

https://youtu.be/RKRxrOj5b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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