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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Jan 30. 2018

일생에 3번의 기회는 정말 오는 것일까?

흙 속의 진주 해롤린 블랙웰 빛을 발하다

 * 惡女 소프라노

   사람은 살아가면서 일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정말 그런지 안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것을 잡으면 운이 트이는 것이고 그것을 못 잡으면 시쳇말로 그저 찌질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오느냐를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나간다. 때문에 평범하게 사는 것이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아주 거지 같은 것이 기회라고 포장된 타이밍이다.


  또한 기회가 눈앞에 다가와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백번 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실력을 갈고닦아놓아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그것이 정확히 언제 오는지 모르는 이유는 아마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이른바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러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기회가 세 번 오는 것이 아니라 늘 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런 사례는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만 말하는 것이 건강에 좋을 듯하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갈라


   아무튼 성악가 중에 이렇게 일생에 세 번 온다는 기회를 잡아 일약 대스타가 된 흑인 소프라노 가수가 있다. 사실 흑인으로서는 성악가로 성공하기가 썩 쉽지가 않고 또 배역도 그다지 너그럽지 않은 환경이다. 캐서린 배틀, 제시 노먼, 바바라 핸드릭스(Barbara Hendricks) 같은 세계 3대 흑인 소프라노 같은 가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 영역까지 가기에는 수없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하는 고행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일단 경지에 오르면 사람은 변한다. 대표적인 가수가 캐서린 베틀(Kathleen Battle)이다. 그녀가 당대 최고의 흑인 소프라노 가수인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속된 말로 성격은 싸가지가 바가지다. 그녀는 동료 연주자, 성악가들에게는 물론 선배 성악가에게까지 모욕적인 말을 퍼붓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연습시간에 지각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아예 땡땡이치는 사례도 많았으며, 이미 배정받은 분장실을 마음대로 바꾸고 다른 성악가의 사물을 문밖에 집어던져 버리는 악행까지 저질렀다. 또한 연습 때에는 다른 가수들이 자신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하게 했다. 오죽하면 모든 연주자, 출연자들이 단체로 티셔츠를 맞춰 입었는데 그 티셔츠에 쓰인 글귀가 “나는 베틀과 싸워 살아남았다(I survived the Battle)" 정도였으니 말이다.


악녀 소프라노로 지탄받았던 당대 최고의 흑인 소프라노 캐서린 배틀


 

 * 기회는 온다

  그러던 중 1994년 한 사건이 터졌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 : 메트) 총감독 조셉 볼프는 마침내 공연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캐서린 베틀을 해고해버린다. 14일로 예정된  도니제티의 오페라 ‘연대의 딸’에 마리 역으로 캐서린 베틀이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더 이상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라는 이유만으로 그 악행들이 용서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1995년 피고용자였던 캐서린 베틀 측이 미국 음악가 조합이라는 노동조합 비슷한 단체를 등에 업고 소송으로까지 끌고 나갔지만 모든 연주자와 출연자들이 베틀의 악행을 증언하는 바람에 패소하고 말았다. 이후 캐서린 베틀은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은 종 치고 막 내렸다.  


  이때 비어버린 배역에 다시 캐스팅된 소프라노 가수가 해롤린 블랙웰이다. 그녀는 일찍이 레오나드 번스타인에 의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에 처음 캐스팅된 적이 있다. 1955년 생으로 나이도 많고, 1980년부터 소프라노 가수 활동을 시작해서 경력도 풍부하지만, 사실 1994년 이전까지만 해도 크게 내세울만한 것은 없었다. 말하자면 레퍼토리는 많은데 히트곡이 없는 평범한 가수 수준인 셈이었다. 특히 1994년 이전까지는 자신의 음반도 단 한 장 발매한 것이 없다. 물론 그 이후에는 엄청 앨범을 쏟아낸다. 그녀의 특징은 ‘서정적 콜로라투라 소프라노(lyric coloratura soprano)’로 분류된다.



  * 콜로라투라 (Coloratura)

  그러면 과연 콜로라투라란 무엇일까?  콜로라투라는 가장 화려한 고음을 가장 고난도의 창법으로 구사하는 부류의 가수를 말한다. 말하자면 엄청나게 빠른 내용 전달과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기교를 동반하여 부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음색이 투명하여야 하며 발음과 음역이 정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바이올린 곡으로 달리 표현하자면 마치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이나 파가니니의 곡처럼 초월적 기교가 필요한 창법인 셈이다. 이러한 창법은 18∼19세기 오페라의 아리아 등에 즐겨 쓰였다. 빠른 연속음이나 떨리는 음 등 고도의 기교를 통해 노래를 화려하게 장식하여 오페라에서 극적인 긴장감을 전달하는데 쓰인 다. 때문에 음표가 콩나물 대가리 쏟아놓은 것처럼 엄청나게 자잘하고 템포도 람보르기니만큼 빠르다. 뿐만 아니라 해변가 곡선 주로를 달리는 트릴과 같은 기교와, 신부의 부케처럼 화려한 장식음도 많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기교가 화려하다 보니 내실이 빈약해져 음악적이지 않다는 평도 많아, 점차 쇠퇴해져 가는 양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이 콜로라투라에 해당되는 곡은 어떤 것일까?  콜로라투라에 해당되는 곡은 여러 가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바로 알 수 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 부분이다. 마치 새가 노래하듯이 끊임없이 고음으로 불러대는 바로 그런 노래의 류를 말한다. 이 <밤의 여왕>은 필자 생각으로 전 세계에 단 한 명 명인이 있다*. 조수미이다. 그 많은 음반을 들어봐도 조수미의 그 콜로라투라 실력은 지존이다. 그런데 블랙웰 이야기하다 갑자기 조수미로 가버려서 좀 내용이 이상해졌다.

 

  
 

<콜로라투라의 정수를 보여준 ‘밤의 여왕’이 수록된 조수미의 앨범. 이 앨범 9번째 트랙에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Queen of the Night’가 들어있다. >



* 헤롤린 블랙웰
   그러면 이제 헤롤린 블랙웰의 호구조사를 해볼 차례다. 그녀는 본래 워싱턴 D.C. 출신이다. 부모는 모두 교사였는데 민권운동과 사회참여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주로 주거환경 개선과 같은 활동이었는데 아마도 흑인들의 주거 문제가 심각해서 이 같은 운동에 전념한 것 아닌가 싶다. 블랙웰은 10살 무렵 학교에서 성악과 피아노를 배운 정도로, 어려서는 음악과 그렇게 가까운 조건은 아니었다. 더욱이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패션디자인 역사를 전공으로 택하여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다. 다행히 그의 선생들이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음대를 추천하는 바람에 가톨릭대학교 성악과에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1980년 석사과정까지 마친다. 1991년에는 사업가인 Peter Greer 와 결혼한다.


  블랙웰은 1980년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준비하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오페라 오디션에서 눈에 띄어 성악계에 등장하는데, 아무튼 앞서 언급한 대로 1994년까지는 빛을 발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독집 음반 한 장도 없었다.  하지만 블랙웰이 결정적인 찬스를 잡은 1994년 이후 발매한 앨범은 대단히 많다. 그 가운데 독집 앨범은 3종이다. 최초의 앨범은 그녀가 혼신을 다해 내놓은 음반으로 <Strange Hurt>가 있다. 블랙웰이 1994년 유명세를 타자마자 RCA에서 광속으로 계약해서 내놓은 음반이다. 이 음반에는 ‘December Songs’와 ‘Genius Child'의 두 파트 곡이 들어있다. 각 곡마다 10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고음역에서 숨이 차게 부르는 콜로라투라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게다가 그렇게 클래식하지도 않아서 그저 편히 들을 수 있다. 다만 ’Where are you now' 같은 곡을 부를 때는 하도 숨차게 호흡을 해서 대신 숨을 쉬어주고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strange hurt  음반 표지


  

  헤롤린 블랙웰은 2004년 우리나라에 온 적이 있다. 당시 서울시향이 말러의 교향곡 2번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는데 블랙웰은 비교적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당시 금관악기 목관악기 연주자들은 음정도 박자도 틀리고 160명에 이르는 대규모 합창단은 다리 흔들고 작은 소리로 잡담까지 하는 등 엉망이었다는 후기가 엄청나게 올라오기도 했다. 당시 지휘는 객원 지휘자 요엘 레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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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미의 <밤의 여왕> 콜로라투라에 대한 생각은 필자만이 그런 것은 아닌 듯싶다.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도 이렇게 쓴 바 있다.


 “적어도 이 노래에서만큼은 조수미가 선후배 소프라노를 압도한다. 웬만한 소프라노는 ‘고음불가’로 전락시킬 만큼 높은음이 나오는 곡이다. 조앤 서덜랜드, 에디타 그루베로바 같은 선배들의 소리는 조수미에 비하면 무겁고 둔탁하게 느껴진다. 조수미보다 10년쯤 어린 소프라노들과 비교해 봐도 우열은 확실하다. 파트리샤 프티봉, 디아나 담라우 같은 세계적 스타도 고유의 스타일은 있지만 고음 부분만큼은 조수미만 못하다. 높은음에서 경직된 소리를 내거나 고음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음악의 맥이 끊기는 경우가 있다. 고음부를 끝낸 소프라노의 입에서 얕은 한숨까지 터져 나온다.
(한 네티즌이 편집한 ‘밤의 여왕’ 40명 비교. 날고 기는 성악가들도 이 노래에서만큼은 음정을 잃거나, 높은음 부분에서 갑자기 템포가 느려지면서 한 음 한 음 공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급 차렷’ 자세도 바뀌는 성악가도 있다. 똑같은 고음을 불러도 퀄리티가 다르다.)

조수미는 달랐다. 극도의 고음을 부르면서도 오케스트라 반주의 템포까지 마음대로 끌고 간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로 높은음쯤 하룻저녁에 수 백 번이라도 부를 수 있다는 태도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https://youtu.be/j86k2ANVg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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