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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Feb 12. 2018

가상칠언(架上七言) - 십자기 위의 일곱 말씀

Heinrich Schütz - Die Sieben Worte

       


  살면서 정말 괴로울 때도 많고 또 목 놓아 울고 싶을 때도 많다. 우리는 본인이 괴로운 때도 있지만 주변의 가슴 아픈 일들을 같이 겪으며 눈물을 푹푹 쏟으며 동병상련하는 일도 많다. 사실 나는 가톨릭이나 기독교 신자도 아니지만 이와 다소 연관된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처음 그를 안 것은 그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시골의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를 할 때부터였다. 사실 시간으로 따진다면 아마도 25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서로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로서 지내왔지만 그와 공유하는 SNS 공간에 그가 써내려간 글을 읽고부터 필자는 몸집이 산만한 후배이자 친구를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됐다. 그가 써내려간 간단한 소회의 글들의 제목은 가상칠언이다. 14편을 끝으로 더 이상은 쓰지 않았다. 그 가운데 서너 편을 필자가 간략하게 요약하고 다소의 수정을 거쳐 여기 소개하고, 그가 또 그렇게 괴로울 때마다 들었던 음악 '가상칠언'도 소개하고자 한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제르니무스 수도원 내부


1. 군인의 길

  20 년도 훨씬 더 지난 일입니다. 저는 충청도의 한 요양시설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200 명이 넘는 노인들이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생활 보호 대상자로서 가진 것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절반 정도는 뇌졸증 후유증 등으로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그 중에 오래 전 퇴역 군인인 박 대령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6.25 참전 용사 입니다. 그러나 5.16 쿠데타 당시에 강제 퇴역 당했다고 합니다. 어찌 된 사연인지는 모르나 이 분은 궁핍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족도 자식도 형제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늘 분노와 원망을 억지로 참는 표정을 짓고 출근한 저를 아무런 말씀도 없이 정면으로 노려보십니다. 저는 그 분의 분노에 찬 눈빛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분은 담도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퍼져 있어서 담즙을 체외로 배출할 수 있는 튜브를 꽂은 채로 요양 시설로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이 암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20년 전 그 당시에는 본인에게 불치병을 알려주는 것을 금기시했던 때였습니다. 자신이 암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 분은 치료만 받으면 자신이 나을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하였는데 수용 시설 측과 의무 담당인 제가 고의로 서류를 만들어 주지 않아서 자신은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가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암환자가 단식을 하니 하루하루 눈에 띄게 여위어 갔습니다. 영양제와 수액을 달아드리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 분은 그 뒤로는 다시 진료실에 오지 않으셨고 사는 것을 깨끗하게 포기하신 듯 하였습니다. 저는 그 분의 침대 곁에서 하루에 얼마씩 자리를 지켜 드렸습니다. 제가 찾아갔을 때 침대에 누워서 저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며칠 후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를 지내겠다는 연고자도 없고 시신을 가져가겠다는 분도 없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던 용감한 군인은 그렇게 쓸쓸히 요양병원의 무연고 매장지에 묻혔습니다.


 요양시설에서 일하면서 너무나 많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요양시설의 작은 방에서 기거했습니다. 그곳은 외진 곳이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를 지켜준 음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인리히 쉬츠의 가상칠언이었습니다.


 

파티마 성당에서...



 2. 박카스 이야기

  요양병원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온 중년의 남자가 의무실에 들어왔습니다. 박카스 한 박스를 주면서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작은 키에 짧은 목  둥근 얼굴이 부엉이처럼 생긴 할머니 환자였습니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출근해보니 부엉이 할머니가 일요일 좀 아프셨나 봅니다.


  "이 나쁜 선생님. 내가 아픈 동안 어디 가서 잘 먹고 잘 놀다가 이제서야 나타났냐? 우리 아들이 잘 부탁한다고 선물까지 줬는데"


  마치 큰 선물이나 두툼한 봉투라도 받았다고 생각하며 수근 거리는 분위기 때문에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 10 년 동안 박카스 안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수시로 저를 불렀습니다. 여기도 만져 봐 달라, 저기도 만져 봐 달라, 내 이야기 좀 더 들어 달라, 내 옆에 더 있어 달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사람이 그리운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떠날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는 계속 웁니다. 그런 날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무거운 마음을 달래려고 다시 가상칠언을 듣습니다.




3. 자살

  오랜 기간 지방에 있는 조그만 병원의 응급실에서 일했습니다. 거기서 별의 별 환자를 다 만나고 온갖 종류의 일을 다 겪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농약, 쥐약, 수면제 등을 먹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리고는 응급실에 실려 옵니다. 그러면 저는 위세척을 합니다. 그런데 위세척이라는 게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굵은 튜브를 억지로 식도를 통해 위로 밀어 넣는데 그것만으로도 구토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환자들이 뱉는 토사물을 뒤집어쓰기 일쑤였습니다.


  어떤 30 대의 아름다운 여인이 소주와  쥐약 10 봉지를 먹고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위세척을 하는 동안 증오에 불타는 눈빛으로 저를 노려봅니다. 죽겠다는 사람을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왜 이렇게 괴롭히느냐며 분노의 눈빛으로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세척을 마치고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저한테 화가 많이 나셨다 해도 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살리고자 한 일입니다. 이제 당신을 풀어드릴 거예요 .밤새도록 당신을 지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또다시 쥐약을 먹을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심으로 부탁을 드릴께요. 당신은 아직 젊고 무척 아름답습니다. 분노를 참으시고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보세요"


환자를 입원실로 올려 보내고 나니 너무 힘들어 다리가 풀리고 팔다리가 덜덜 떨립니다. 온 몸에 토사물로 인한 악취가 납니다. 샤워를 해도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 젊은 날 저에게 주어진 운명이었고 저는 그런 일을 반복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마다 가상칠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파티마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



4. 집창촌

한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대규모 집창촌 인근에 위치한 병원에 근무했습니다. 24 시간 응급 환자와 교통사고 환자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참으로 별의 별 희한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겪고 수많은 죽음과 사고로 인한 장애를 목도해야 했습니다. 성매매 여성 수백 명이 일한다는 집창촌에서는 하루 밤이라도 결코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정육점 불빛 같은 조명을 켜고 영업하는 집창촌과, 술을 마시고 성매매 영업을 하는 룸싸롱이 같이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술 마신 손님들이 업소 아가씨들을 두들겨 패는 일은 다반사이고 맥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매일 밤 아가씨들 머리 꿰매기 바빴습니다.


  성매매 여성들이 대부분 빚이 많습니다. 빚 때문에 그 세계를 떠날 수가 없죠.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자살 시도를 많이 합니다. 손목을 자해하는 것부터 수면제, 쥐약, 농약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 옵니다. 그 사이 사이로 계속해서 실려 들어오는 교통사고 환자들. 영화에서나 볼 듯한 상황들을 저는 실시간 현장 체험으로 겪었습니다.


  어느 날 얼굴에 너무나 심한 상처를 입은 인근 금은방 사장님이 피를 철철 흘리며 뛰어들어 왔습니다. 조폭에게 당했다고 하는데 얼굴 전체를 2 시간에 걸쳐서 간신히 봉합을 했습니다. 봉합이 끝날 무렵 조폭이 병원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일단 간호사에게 문을 잠그라 하고 마지막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뒷문으로 도망치게 했습니다. 조폭이 제가 있는 진료실로 들이닥쳤습니다. 저는 진료실에 감금당했고, 환자를 도망가게 한 걸 무릎 꿇고 사과하라면서 흉기를 들이댔습니다. 사과를 하지 않고 버텼지요. 그 때 정말 죽을 뻔 했습니다. 조폭들은 뒤에서 저를 잡고 강제로 무릎을 꿇리고 제 얼굴과 배를 살살 문지르면서 실실 웃더니 뺨을 때리고 폭행을 가했습니다. 실컷 두들겨 맞고 돌아와 분하고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멍하니 천장을 보며 다시 하인리히 쉬츠의 가상칠언을 들었습니다. 그 음악은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줬습니다.


하인리히 쉬츠가 묻힌 프라우엔 키르헨(성모교회)



* 친구와 함께


  그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오랫동안 다른 의사들은 피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해왔다. 그는 하인리히 쉬츠의 가상칠언을 듣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와 친한 친구의 집에 가면 늘 같이 가상칠언을 듣는다 했다. 그의 친구는 애인이 폐렴으로 사망한 후 늘 그녀와 함께 듣던 가상칠언을 듣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가상칠언과는 어떤 경우에서라도 깊은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상칠언(Seven Words from the Cross)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형장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남긴 일곱 가지 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 말이기에 사세구(辭世句), 임종을 맞아 한 말이므로 임종게(臨終偈)라고 한다. 이것은 네 복음서에 흩어져 있다.


제1언 (눅 23:3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평소의 가르침을 예수가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에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제2언 (눅 23:42-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가 십자가에 함께 처형당한 죄수와 주고받은 대화로, 그리스도교의 종말론과 내세관을 나타내는 말로 풀이된다. 죽어 예수와 함께 있을 곳이 낙원이라는 말이다.
제3언 (요 19:26-27)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가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요한)에게 한 말인데, 실제로 마리아와 제자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논란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부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자는 그리스도 교회를 가리킨다고 풀이한다.

제4언 (마 27:45-46)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임종 단계에서의 고독감, 절망감을 나타내는 말로, 예수가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에 희망을 걸었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제5언 (요 19:28)
"내가 목마르다."
자기의 성업(聖業)을 완성하려는 염원을 드러낸 말로 풀이된다.

제6언 (요 19:30)
"다 이루었다."
성부가 예수를 통하여 이루려 하였던 일, 즉 신앙인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는 일을 끝냈다는 말로 풀이된다.

제7언 (눅 23:46)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것은 본래 유대인들이 바치던 저녁 기도로 예수가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이 기도를 한 것은 곧 임종을 수락하였다는 뜻이라고 한다.



 * 쉬츠(Schütz)의 가상칠언

  사전적 설명에 따르면,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ütz, 1585년 8월 8일 ~ 1672년 11월 6일)는 바흐 이전의 독일이 낳은 최대의 작곡가이다. 폭넓은 인문주의적 교양을 기초로 독일의 전통적인 폴리포니(多聲音樂)에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극적이며 표출적인 양식을 채택하여 많은 감동적인 교회음악을 작곡하였다. 바흐로부터 1 백 년 전인 1585년에 중부 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카셀의 헤센 변경의 영주에게 재능을 인정받았다. 1609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유학하여 대작곡가인 조반니 가브리엘리를 사사, 새로운 바로크 양식을 배우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카셀의 궁정 오가니스트가 되었고, 1617년에는 궁정악장으로서 드레스덴에 초빙되어, 일생의 대부분을 이 지방에서 보냈다. '부활제 오라토리오', 종교합창곡집 '칸초네스 사크레'(1624) 등으로 점차 명성을 떨쳤으며, 1628년에는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몬테베르디에게서 극음악의 양식을 배웠다. '심포니 사크레'(1629)나 '크라이네 가이스트리헤 콘체르테'(1636-1639)를 그 성과로 보기도 한다. 그 후 '종교합창곡집'(1648)으로부터 만년의 '마태 수난곡'(1666)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작품을 계속 작곡하여 독일교회음악의 아버지가 되었고, 1672년 87세의 고령으로 드레스덴에서 별세하였다.


  아무튼 약 400 전 사람인 하인리히 쉬츠의 곡들 중에서 오라토리오 '가상칠언'은 초기 바로크의 경건하고 엄숙하고 장엄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기적 같은 곡이 아닐 수 없다. 이 하인리히 쉬츠의 가상칠언은 작곡 시기로 보아 북유럽 일대가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되다 시피한 때이다. 하나의 복음서에서 간단히 뽑아 쓰지 않고, 4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그리스도의 일곱 말씀을 가져다가 작곡한 것이다. 하인리히 쉬츠는 당시 전쟁이 남긴 처절하고도 참혹한 상태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곡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필자는 한참 전까지 만해도 이 곡을 그렇게 심오하게 듣지는 않았다. 물론 필자가 신자는 아니지만 들을 때 마다 경건한 마음은 들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필자의 음악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더 깊이 빠져들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 곡은 누가 성악부를 맡아 부르고 누가 지휘하고 연주해서 더 좋다는 것을 논하고 싶지 않다. 그저 누가 지휘하든 누가 부르든 심연의 인간 사랑만 느껴지면 그것이 곧 아름답고 성스러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가상칠언 음반



https://youtu.be/AkrfAF3g-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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