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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호 Feb 17. 2018

몰리엔도 카페에서 ...

페루 출신의 Martin Zarzar

   다리 걸고 싶은 뮤지션
                    마틴 자르자르(Martin Zarzar)


* 망각과 반복 학습

   “내가 리모컨을 어디 두었지?”
   “내가 차 열쇠를 어디 두었지?”
   “내가 스마트폰을 어디 두었지?"
  이런 일을 우리는 수시로 경험한다. 그리고 TV 리모컨을 냉동실에서 발견하고, 차 안에 열쇠를 두고 내리거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몇 초 동안 찾고 있기도 하다. 심한 경우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몇 분 동안 찾는 분도 있다는데 이 경우는 건망증에서 알츠하이머의 경계선을 넘어 간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극장이나 마트, 백화점 같은 대형 건물 지하 주차장에 주차한 후 주차 구역 번호를 외우고는 다시 내려와서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정말 더운 한 여름에 이럴 때는 머리를 마구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점점 흐려지고 지워지고 마침내 잊혀진다


  일예로 암기한 단어는 10분 후 42%, 한 시간 후 50%, 하루가 지나면 67%, 한 달 후에는 80%를 까먹는다고 한다. 따라서 극장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영화가 끝난 뒤에 주차 구역 B5 F-39 뭐 이런 번호를 잊어버릴 확률은 50%가 넘는다고 보면 된다. 또 마트에 가서 한 시간 쯤 열심히 장을 보고 이것저것 해찰을 한 뒤에 주차장에 내려와서 B4 K-701 같은 주차 구역 번호를 잊어버릴 확률도 50% 정도는 된다. 때문에 “난 정말 왜 이러는 걸까?” 하면서 그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특히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런 것을 더 잘 잊어버린다는 설도 있기는 하다. 이것이 이른바 ‘기억은 시간에 반비례 한다’는 망각곡선(Forgetting Curve) 이론이다. 그래서 외국어는 다른 학문보다도 더 반복적으로 죽어라 외워야 그나마 단어를 많이 기억하는 아주 지겨운 학문이다. 아무튼 이런 망각곡선 이론을 주장한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 1850~1909)는 망각을 막으려면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외국어도 외국어지만 악기 연주는 외국어 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악기를 배우려면 정말 많은 시간을 반복 학습에 투자해야 하고 또 경지의 반열에 오르려면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밥 먹고 똥 싸고 연습만 해야  한다. 특히 악기는 연주의 스킬도 필요하지만 예술성을 가지려면 수없는 반복 학습 속에서 자신만의 뭔가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이해와 악보의 암보도 필수이다. 따라서 연주를 잘한다는 것은 사실 내면적으로는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연주자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 몰리엔도 까페 (Moliendo Café)

  하지만 때로 엄청 얄미운 경우도 있다. 한 가지 악기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데 어떤 뮤지션은 전혀 성격이 다른 여러 악기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이 한다. 첼로 연주자가 비올라를 연주하거나 색소폰 연주자가 오보에를 연주하는 정도가 아니라 피아니스트가 첼로를 연주하고 퍼쿠션 연주자가 피아노나 콘트라베이스, 기타를 자유자재로 연주한다. 이런 얄미운 종족들은 어두운 극장에서 매트리스 깔아놓고 살짝 발은 걸고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종족이 연주하고 노래한 독특한 음악들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뮤지션이 마틴 자르자르(Martin Zarzar)이다. 그는 본래 세계적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핑크 마티니 (Pink Martini)의 멤버로서 퍼커션을 연주하는 뮤지션이다. 자르자르는 페루의 리마 출신으로 열세 살 때부터 드럼과 퍼커션을 연주했고 15세 때부터는 Al-Andalus Ensemble과 함께 전문적인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6년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게 된다. 이후 핑크 마티니의 멤버가 되어 그가 작곡한 곡 'Mar Desconocido(낯선 바다)'는 핑크 마티니의 세 번째 앨범 <Hey Eugene>에 실린다.



  한편 자르자르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앨범을 내게 되는데, 지금까지 두 장을 선보였다. 첫 번째 앨범은 2012년에 낸 <Two Dollars to Ride Train>이다.  이 앨범 수록곡 중에  'Moliendo Café'라는 곡이 꽤 유명세를 타면서 핑크 마티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본래 '몰리엔도 까페'라는 곡은 자르자르의 곡이 아니고 베네수엘라 출신 작곡가 Hugo Blanco (1940년 9월 25일 출생 – 2015년 6월 14일 사망)가 18세 때인 1958년에  작곡한 곡이다. 이 곡은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혼혈아 마뉴엘의 슬픈 사랑 노래이기는 하지만 그 삶의 고단함이 배어있으면서도 리드미컬하고 흥겨운 곡조 때문에 오랜 동안 사랑받아온 곡이다. 그 이유는 베네수엘라라는 라틴 문화에 아프리카 리듬이 가미된 이른바 아프로 라틴 음악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가사를 들여다보자.


몰리엔도 까페 / Hugo Blanco

커피 열매를 갈며  날이 저물고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커피 농장들은 고요함 속에서
다시 상념에 잠기네
이것은 오래된 제분기의 슬픈 사랑의 노래

한밤중 무의식중에 말하는 듯한 슬픈 사랑의 노래
사랑의 고통과 슬픔
마뉴엘을 쓰라린 비통 속에  몰아넣는 감정
밤이 새도록 지칠 줄 모르고
커피를 갈게 하네


몰리엔도 카페가 수록된 음반



* 톡톡 튀는 음반

  자르자르의 또 한 장 앨범은 'Libre(자유)'라는 표제를 달고 나왔다. ‘Libre’라는 곡은 다섯 번째 커트에 들어있다.  이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곡들은 꽤 많다. 우선 가장 친근하게 귀에 들어오는 곡이 두 곡 있다. 하나는 'Petite fleur(작은 꽃)'이고 다른 하나는 'Quizás, quizás, quizás'이다. 두 곡 모두 아주 유명한 샹송이고 라틴 음악이다. 특히 'Quizás, quizás, quizás'는 쿠바의 작곡가 Osvaldo Farrés의 곡으로 1947년 쿠바의 대통령 영부인이었던 Mary Tarrero-Serrano에게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요즘은 이렇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날 음악들을 한 두 곡 씩 끼워 넣는 것이 어쩌면 보험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귀는 사실 좀 보수적이라서 들어본 익숙한 음악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일단 그 앨범에 관심을 갖게 된다.  


LIBRE



 이 앨범에는 모두 15곡이 들어 있다. 모든 곡들이 빈대처럼 톡톡 튀는 재미있는 연주 모음곡 같다. 그리고 제목부터 '빈대'라는 곡도 있는데 이 곡은 정말 빈대가 튀는 느낌으로 들리기도 한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앞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악기 연주에 관한 것이다. 자르자르는 자신의 전공인 퍼커션 이외에 기타, 드럼 세트, 베이스 기타, 콘트라 베이스, 피아노, 멜로디카, 칼림바, 실로폰, 플루트, 바이올린, 오드를 모두 연주한다. 그리고 노래도 직접 한다. 정말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한다. 이러니 매트리스 깔아놓고 발 걸어 넘어뜨리고 싶을 만큼 얄밉지 아니할까?! 아니면 빈대를 몇 마리 등에 넣어 주든가.



<세계음악 컬럼니스트 김선호>


https://youtu.be/DD97YL3w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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