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결산
서른한 살이 되었다.
30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1월 1일이 따지고 보면 12월 31일의 다음 날이자 1월 2일의 전 날일 뿐인 것처럼, 30도 29의 다음이자 31의 직전일뿐이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나의 서른은 의미 부여를 하기에 충분한 해였다.
도전은 항상 두려웠다. 성공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진다. 기본적인 역량이 평균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못할 것 같은 일은 지레 겁을 먹고 안 하는 선택을 해왔다. 그런데 스멀스멀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사는 데에 중요한 건 뭘까. 아니, 살아가게 하는 건 뭘까. 매일 같은 사무실로 출근하고, 힘든 일을 하고, 지쳐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으면 잘 시간이 되는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삶이 계속될 텐데 과연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한참 지친 와중에 떠난 여행 중에 정말 갑작스럽게도 머리가 쪼개지듯 신선한 생각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안 살면 되잖아.'
어라, 이게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거였나. 얼떨떨한 기분에 어이가 없었다. 적어만 놓았던 하고 싶은 일들을 시간이 없다면 시간을 내어서, 돈이 아까워도 좀 쓰면서, 실패하더라도 시도라도 해보자는 결심은 정말이지 한 순간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고 나니 모험가가 된 양 세상에 해볼 게 이렇게 많은데 언제 이걸 다 해보냐는 벅찬 마음까지 들었다.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게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작은 도전들이었다. 보컬 학원에 등록해 노래를 배우는 것, 자전거를 배워 멀리까지 타고 나가보는 것,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보는 것. 길어봐야 한 줄 밖에 안 되는 이 경험들에 서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부딪힐 수 있었다. '부딪힌다'는 표현을 쓰는 게 참 얼척 없지만서도 노래 부르는 게 싫어질까 봐, 자전거에서 넘어져 다칠까 봐, 집이 더럽혀지고 힘들까 봐 지금껏 미뤄오던 경험들이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놀랍게도 실패함으로써 극복되었다. 중요한 건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기 때문이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영 시도도 못했던 것들은 못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에야 즐길 수 있었다.
산다는 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사업의 번창'보다 '저녁에 맛볼 케이크 한 조각'에 가까울지라도 좋다. 케이크를 굽다가 엎어 바닥이 엉망이 되어도 좋다. 사소하고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일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해 쩔쩔매더라도 좋다. 삶의 동력은 성취가 아닌 도전에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