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에 관하여

떠날 용기와 머물 용기

by 작은별

적성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지 4년차에 접어들었다.

적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같은 자료를 봐도 이해가 잘 안 되고, 설명을 들어도 상상이 잘 안 되고, 명확히 다른 용어를 헷갈리고,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그럼에도 3년을 버텼다. 버텼다기보다 어느새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이직하지 않은 이유는 겁이 났기 때문이다. 힘들게 쟁취한 안정적인 직장을 제 발로 나간다는 게 쉽사리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다. 내 길이 아니라고 빠르게 판단하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여기저기 찔러보면 정답이 있겠다는 산뜻한 태도는 결코 내가 가질 수 없는 능력이었으므로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내 적성 좀 찾아달라며.


적성을 찾아주기는 커녕 상담사는 질문만 끊임없이 했다. 어떤 일을 하는지, 누구랑 일 하는지, 업무 분배는 어떻게 되었는지, 일주일에 회의는 얼마나 있는지, 어느 정도의 업무 강도로 일을 하는지, 업무에 대한 기여 정도와 책임의 정도를 물었다.


몇 번의 만남 뒤 상담사가 물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꽤나 오래 버티신 것 같아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글쎄요... 저한테 그건 어쩌면 용기인 거 같아요."


나도 모르게 나온 '용기'라는 단어. 스스로 말해놓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빨리 탈출하는 게 용기가 아니라 참고 버티는 게 용기라니, 그게 용기라니, 그게 용기구나...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힘든 길을 걷는 것은 용기였다. 참고 또 참고 끝까지 참는 것이야말로 용기였다. 포기하지 않는 자신을 겁쟁이라고 치부하다니, 미안한 마음과 기특한 마음이 울컥 솟았다.


최선을 다하고 나면 미련이 없다는데, 정말 그렇다. 신중했던 마음과 신경쓰이는 마음은 안개 걷히듯 사라지고 이성만이 또렷하게 남았다. 하기 싫은 일, 책임과 권한의 비중을 달리하면 해볼 만한 일,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 명확한 기준으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떠날 용기가 생겼다.


마음은 매 순간 머리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 언뜻 느끼고 있던 마음을 머리로 확실히 인지하기에는 정말 오랜 시간과 여러 단계의 거듭된 확인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고되고 지치지만 깊이 고민했기에 얻을 수 있는 명료한 마음처럼 깔끔한 것도 없다. 오롯이 해야할 일만이 내 발 밑에 가지런히 놓인 기분.

상황의 변화에 마음은 또 뒤바뀌고 판단은 다시 흐려질테다. 그럼에도 몇 겹 거둬내면 그 안에는 마음이 일찍이 알고 있던 진심이 있다는 사실만은 꼭 잊지 않으려 한다. 그 진심을 머리가 알아채기까지는 머물 용기를, 알아챈 뒤엔 떠날 용기를 재차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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