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관하여(2)

주거 안정이 대체 뭐라고!

by 작은별

네 번째 집.

2022년, 회사 근처의 7평 원룸.


네 번째 집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한 첫 번째 집이었다. 원룸은 내 능력의 한계였다. 모은 돈 한 푼 없는 사회 초년생에게는 회사 이름을 앞세운 신용으로 대출받는 것만이 집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마저도 넉넉지 않아 나는 월세에 살기로 했다. 그동안 살았던 집이 마치 당연한 것이었던 듯 굴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 부모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착각했었나.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 모든 행위를 반복하며 '원룸'이라는 단어가 '집'이 아니라 '방'을 뜻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내가 사는 곳은 집이 아니라 방이었다. 잠시 부모님의 집에 살며 넓은 집이 주는 안락함을 온몸으로 즐기다가 다시 방 한 칸의 삶으로 돌아가는 건 심하게 박탈감이 드는 일이었다.

동시에 처음으로 나만의 것을 가져본다는 짜릿함이 있었다. 싱글 매트리스를 퀸으로 바꾸고, 좌식 테이블을 하얀 원형 테이블로 바꿨다. 협탁에 조명을 켜두고 남은 공간에는 카페트를 깔았다. 한눈에 좋고 싫은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취향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그 경계선을 빗자루로 살살 쓸어가며 내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르겠다면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호텔 이불솜이 보기보다 불편하다는 건 이불 커버 속에 덩어리 진 솜을 주기적으로 풀어주기 전엔 모르는 거니까. 그럼에도 좋은 건 내 취향의 경계 안으로 자리했다.




다섯 번째 집.

2023년부터 2024년, 사당동의 6.5평 원룸.


짧은 시간 모은 돈에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 전세를 구했(으나 실패해 결국은 반전세로 들어갔)다. 사당동은 비싼 동네였고, 나는 자취 초보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밈 그 자체였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조금 더 좋은 컨디션'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그럭저럭 살 만한 집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럭저럭이라고는 해도 7평도 안 되는 크기에 침대와 테이블을 두고 나면 건조대를 펼 자리조차 없었다. 침대 프레임 아래 겨울 이불을 쑤셔 넣고, 주방 후드 안쪽까지 수납을 해야 얼추 지나다닐 공간이 났다. 방 중앙의 가벽 때문에 가구의 위치는 시작부터 정해진 셈이었는데, 배치를 달리 하며 분위기 환기를 하는 내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공간 부족으로 놓을 수 있는 곳에 놓을 수 있는 물건들을 두고 나니 동선도 꼬였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 방 저 끝으로 가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고 방 중앙으로 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화장실 앞으로 가 거울을 보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다섯 걸음 안팎이긴 했기만 그래도 불편한 건 불편한 것이었다. 살기 편한 집이란 무엇인지, 집의 구조와 동선의 효율에 대해 생각하며 건축과 교수님의 유튜브를 구독하기도 했다.

불만은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커져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회사 바깥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면 취미 생활을 하라는데, 내 방은 잠을 자고 출근을 준비하는 생존의 공간일 뿐이었다. 당장에라도 복비를 2배 내고 나가고 싶어 부동산 앱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떠나고 싶어도 결국엔 돈이 없어 이곳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야근에 회식에 12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눈은 감기고 몸은 피로하고 터덜터덜 걷는 길은 하염없이 늘어지는데, 이 길 끝에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돌연 마음이 놓였다. 그게 비록 지긋지긋하게 좁은 방일지언정 안전하게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다. 명확히 그러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집이 그 이상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이 그 이상이었던 거라고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여섯 번째 집.

2024년부터, 지금의 9평 분리형 원룸.


더 넓은 집에 가고자 한다면 대출을 더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간 열심히 갚은 만큼 다시 대출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2년 사이 세상이 바뀐 건지, 몰래카메라를 하는 건지 집값은 오를 대로 오르고 매물은 없었다. 기적적으로 집을 구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으나 그 이후는 끔찍했다. 세입자가 생겼으니 당장 나가달라더니 만기가 두 달 남아 집을 구하는 중이라니 곤란하다던 집주인, 연락 없이 집 앞에 찾아와 집을 보여달라며 냅다 문을 두드리던 중개인, 물건을 팔고 나가고 싶다기에 방문해서 보겠다니 집을 보여주기는 싫다는 이사 갈 집의 세입자, 이삿날 들어와 마주한 얼룩진 벽지와 그 위에 겹겹이 쌓여 벽지와 한 몸이 되어버린 먼지층까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튼 이러저러하여 이 집에 살게 되었고, 혐관이 맛도리라는 마음으로 주방에 실리콘을 새로 짜고, 화장실 기물들을 교체하고, 수전에 필터를 달고, 구석구석 쓸고 닦으며 살고 있다. 고쳐 살면서 정을 붙이는 부분도 확실히 있는 듯하다(는 개뿔, 2년 다 채우면 무조건 신축으로 갈 거다). 낡았지만 2평 넓어진 공간에서 오는 여유가 있다. 넉넉한 개수대 덕에 설거지가 조금은 할 만해졌고, 그래서 요리를 자주 하게 되었다. 수납공간이 많고 창고 공간이 있어 침대 밑을 비워둘 수 있게 되었다. 화장실 앞에 화장대를 둘 수 있어 씻고 나오자마자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릴 수 있게 되었다. 구역이 분리되고 물건이 정리되니 비로소 방이 아닌 집에 산다는 기분이 든다.




처음엔 단순히 이사가 싫다는 생각뿐이었다. 깡통 전세에 대한 리스크, 계약 전후로 바뀌는 중개인의 태도, 집주인의 갑질, 이사 비용 등등 '세입자의 설움'으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싫었다.

살다 보니 그건 표면적이고 실상은 능력의 문제였다.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으려면, 갑질당하지 않으려면, 몇 십만 원에 손 떨며 통장 잔고를 확인하지 않으려면 능력이 필요했다. 월에 천만 원씩 번다면 월세 200만 원을 턱턱 내고 강남 오피스텔에 사는 데에 아무 문제도 없을 터였다. 나는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원했다. 침실과 취미방을 하나씩 두고, 거실엔 소파와 TV를 두고, 스스로 원하기 전까지는 이 짐들을 빼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을 원했다.

그런데 또 살다 보니 실상은 능력이 아닌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최소한의 공간 분리로 방이 집으로 느껴지듯, 기준을 넘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작고 낡은 공간에서도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중요한 건 집이 몇 평이고 어떤 가구가 있는지가 아니라 집에서 어떤 꿈을 꾸고 어떤 행복을 그리는 지였다. 집이란 그런 공간이었다. 기준이 낮아지면 세상 어디서든 집을 가질 수 있겠다는 희망, 세계 곳곳에 살아볼 수 있겠다는 설렘까지 느꼈다. 그러므로, 그럼에도 소파와 거실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잠시 미뤄두고 지금 사는 이곳을 소중히 하기로 했다.


마음은 항상 주눅이 든다. 기왕이면 넓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게 좋은 것 아닌가, 다 가졌으니 더는 필요 없다는 건 정신 승리 아닌가, 무소유니 미니멀리즘이니 하는 건 풀소유나 맥시멀리즘을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에 마음은 휘둘리고 만다.

그럼에도 아는 것은 소유 자체에 행복이 있지 않다는 것. 그러니 사실 있어야만 하는 건 없고, 내 마음이 부족해 필요한 것이 있을 뿐이라는 것. 기준을 낮추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느 정도는 갖고 살아야 하는 게 보통의 삶이고 나는 보통의 사람이니까. 다만 조급하지 않으려 한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다 보면 다음 집은 다다음 집은 거실도 있고 방도 하나 더 있겠지, 생각하다가도 그렇지 않은 집에서도 행복할 수 있길 바란다.

집은 곧 나 자신이므로 주거 안정이란 곧 내 마음의 안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실은 마음의 안정이고 나발이고 수도권 20평대 아파트를 원한다. 심지어 언젠가는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때까지의 시간에 부족함이 없길 바랄 뿐이다. 언젠가 그 집에 다다를 때까지 거칠 여러 집에 행복한 날들이 새겨져 지도 위에 별자리를 그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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