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에 관하여

요가 지도자 과정 25% 달성...

by 작은별

지난 두 달간 요가를 하며 많은 것이 변했다. 묵은 지식과 습관을 벗겨내고 정화되는 과정이었다면 너무 고상한 표현일까. 입술 껍질을 한 겹 한 겹 뜯어내는 느낌에 가깝겠다. 그만큼 내 마음에 짜증과 분노, 좋지 않은 습관이 덕지덕지 붙어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물론 아직 과정이고 영원히 과정이겠지만, 의미는 그 과정에 있기에 요가란 운동 이상, 삶이라 부르는 듯하다.


요가에는 비교가 없다.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원래 그런 것도, 한계도 없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지금의 호흡과 이다음의 호흡도 다르다. 그저 한숨, 한숨 정성껏 호흡할 뿐이다. 몇 번의 호흡이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 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얼굴 뒤로 팔을 넘겨 발을 잡냐, 안 잡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단단한 하체에 둔 중심을 잃지 않는다면 손은 어디에 두든 상관없다. 나의 상태는 나만이 알기 때문에 더 나아갈지, 이 상태를 유지할지, 조금 물러설지는 나의 선택이다. 인지하고,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중심 잡기, 인지하기, 진심으로 대하기

내가 배운 요가는 이런 것들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너무나 닮았다.


성과와 속도만을 요구하는 나의 업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에 다 그만두고 요가만 하며 사는 미래를 잠시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요가가 데려가는 곳에는 회피와 고립보다는 도전과 포용, 그리고 자유가 있다. 극과 극에 있는 듯한 나의 업과 취미 사이에 균형을 찾아보라 한다. 그러면 인생이 얼마나 특별하고 풍성해지겠냐며.


관심사가 이리저리 튀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이 있었다. 음악을 좋아해 기타를 배웠다가, 옷을 만들어보고 싶어 재봉틀을 배웠다가, 공예가 재미있어 보여 라탄 공예를 배웠다. 와중에 나의 전공은 통계. 운동을 해보고 싶어 러닝을 했다가 요가를 했다가, 현대 무용도 배워보고, 웨이트를 했다가 다시 요가로 돌아왔다. 와중에 나의 업은 공학. 뭐 하나 끝까지 하지 못하고 가벼운 호기심에 발만 담그는 게 진득하지 못하고 큰 일을 해낼 만한 그릇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취미로 노래를 부르거나 다른 악기를 배우는 사람이랄지, 공학을 전공하며 취미로 로봇을 조립하거나 앱을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다.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중심 없이 뻗어나가는 것에 대한 불안, 흔들리지 않고 싶은 욕망이었지 않나. 사람은 한 그루의 나무와 같아 두 발로 지탱하는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그로부터 뻗어 나가야 한다. 몸도 마음도.

중심을 찾아가는 요즘은 나의 호기심이 그리 싫지 않다. 그 덕에 나쁘지 않은, 어쩌면 꽤 근사한 조합의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코딩을 하고, 퇴근 후엔 요가를 하고, 옷을 수선해야 할 때는 직접 재봉틀을 돌린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노래 한 곡 뽑거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수도 있다. 이리저리 튀어나가는 가벼운 호기심은 나를 이만큼이나 특별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굵고 단단한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싶다. 동시에 잔잔한 물결처럼 흐르고 싶다.

요가에는 두 가지의 '1인칭'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현재의 나', 또 하나는 요가 수련을 통해 완성할 '미래의 나'. 수련이란 머나먼 미래의 나(3인칭)와 관계를 맺고(2인칭), 비로소 새로운 자신(1인칭)이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단연 삶도 그렇지 않을까. 어느새 굵고 기다란 뿌리로 물가를 찰랑찰랑 거니는 울창한 나무가 되길 바라는 진심을 담아,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손을 뻗어 인연을 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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