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이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나 침실도 주방도 나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주지 못했다. 요가원에서 만나는 내 매트 위의 공간이 진정한 나만의 방이었다. 온전히 나를 들여다보고, 내면과 만나는 곳.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 곳.
1년 뒤 전세 만기를 앞두고 이사 갈 지역을 탐색하다가 친구네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지만 방 3개에 베란다까지 있는 남향의 밝은 집이었다. 나도 여기로 이사 오겠다며 진한 김칫국을 마시고 처음으로 희망이 보였다.
거실에는 소파와 낮은 탁자, 벽걸이 TV를 두어 휴식의 공간으로, 방 1에는 침대와 붙박이 옷장을 두어 수면의 공간으로, 방 2는 책상과 컴퓨터를 두어 업무의 공간으로, 방 3은 매트를 두어 요가의 공간으로. 방을 결정하고 어떤 가구를 어떻게 둘지 생각하니 어찌나 설레던지, 매트만을 간단히 둔 방이 생긴다는 기대감에 잠을 설쳤다.
이 정도면 내가 몇 달 사이 비싼 매트를 2개나 산 것에 대한 변명이 되려나. 희망은 미래의 일이요, 당장 지금의 집에도 자기만의 방이 되어줄 매트가 필요했다.
새로 마련한 매트는 손길이 묻을수록 길드는 매트였다. 꾸준히 수련하지 않으면서 이 매트를 나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사치했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매트 위에 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기만의 방에 들어가 나를 만났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구슬땀, 힘겨웠던 아사나가 미묘한 차이로 수월해지는 희열, 단단한 몸에 들고 나는 편안한 숨. 눈을 돌리면 보이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 드러나고 싶어 안달을 냈던 순간이 많았다.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것을 하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에는 나만이 있다. 나는 나와 싸우지 않고, 나를 탓하지 않고, 추켜세워주지도 않는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숨을 쉴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매트 위에서 온전했고, 안전했다.
미치게 행복했던 시간을 지나, 조금은 무감각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덤덤한 시간이 찾아왔다. 존재하는 나에 대한 연민, 아마도 사랑. 목청 높여 Love Myself를 부르짖던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감각이다. 사랑이란 아주 잔잔하고 고요한 물결 같은 것이었구나. 나를 사랑하고 나니 남을 미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유 없이 미워진다면 그건 오로지 내 안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질투가 나는 건 더 잘하고 싶기 때문이고, 으스대고 싶은 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인 것처럼. 그러므로 이 사랑은 결국 나를 통해 바깥으로 향한다.
이렇게나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처럼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도 가능한 일일까.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미워해 놓고 앞으로 만날 수많은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조급하진 않다. 나의 조그만 사랑이 여러 순수한 마음을 들고 나면 미움조차 사랑으로 바꿀 만큼 커질 테니. 사랑하려고 애쓰니 사랑이 왔듯, 미워하지 않으려 애쓰면 밉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