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만난 사이

출간작가 우리 동네 통장님

by 강소록

오늘로 인구주택 조사원 일도 끝이 났다. 매일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3주라는 시간이 꽉 채워서 후딱 지나가 버린 듯하다.


건물마다 조사를 하다가 어느 건물을 조사하는데, 그 건물 집주인이라는 중년의 여자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2통 통장이에요. 우리 집은 걱정 말아요. 다른 데도 내가 도와줄게요. 통장이 다 그런 일 하는 거지."


이게 무슨 대박사건인가!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 통장님 덕분에 다섯 가구나 조사완료를 할 수 있었다.


통장님은 내 가슴팍 정도까지 밖에 오지 않는 아담한 키에 아주 독특하고 화려한 패션감각의 소유자이다.

70의 나이에 양갈래 긴 머리를 묶어 새초롬이 어깨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초록색을 좋아하시는지 초록색 두건에 초록색 톤의 롱원피스를 유니폼처럼 입으셨는데, 직접 염색한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는데, 조사를 하고는 알 수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나이에 놀랐던 것이다.

나도 그 나이에 저렇게 멋을 내고, 멋지게 활동적으로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의문이 들었다.


그. 런. 데.

그 통장님이 일이 끝나고 내게 무얼 주시겠다고 하며 건네셨다.

시집이었다.


' 인생아 고맙다' 장숙자 제3 시집


우리 통장님 알고 보니 미술과 시분야에서 심사위원도 하시고,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해 오고 계신 분이었다.

그것도 몰라보고 그저 동네의 평범한 할머니, 통장님 정도로만 여겼다.

물론 평범하다고 해서 무시할 건 아니다.

다만 자기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고생해서 어느 시점에 열매를 거둔 사람들은 평범을 넘어 비범으로 가는 거라 생각한다.


이 통장님도 나는 비범한 분이라 여긴다.

자신의 시간을 내어 추운데도 잘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


칠순의 나이에도 취미이자 일을 갖고 경제활동도 하는 것.


나이는 가라. 소녀소녀하게 머리하고 공주풍으로 착장 한 채 동네를 활보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볼 때는 젊고 멋지게 사는 법이 아닌가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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