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불합격자들에게 건네는 글
'안타깝지만 응시자는 불합격되었습니다.'
불. 합. 격이라는 세 글자가 눈앞에 들어온 순간 머리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하였다. 그리고 주변이 온통 캄캄한 암흑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내가 불합격이라니. 이건 말도 안 돼. 당연히 합격이어야지. 아니 우습지도 않아. 어디 보자. 답안지, 점수는 도대체 얼마야!"
재식은 정신없이 점수를 확인하고 틀린 문항을 확인해 보았다.
"크억! 이게 말이 돼? 내가 채점한 거랑 30점 가까이 차이가 나잖아. 여보! 여보! 이거 봐봐! "
거의 반쯤 영혼이 가출한 듯한 재식은 아내랑 급히 컴퓨터로 성적 이의신청까지 일사천리로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재식은 자신이 정확히 답안지에 어떤 답을 썼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 에이 이런 병신 새끼. 그렇게나 공부를 새벽부터 열심히 하면 뭘 해. 정작 시험장에서 떨어 답도 잘 못 쓰고 말이야. 죽어도 싸. 죽어도!"
재식의 처 미주는 그로부터 한 동안 재식의 이 말을 주제가처럼 들어야 했다.
미주는 남편이 시험에 떨어진 게 공부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공부를 좀 쉬엄쉬엄 하라고, 아니 좀 적당히 해도 되지 않나 타일렀던 터였다.
자격증시험이 여러 종류였지만, 이 시험은 평가사시험이라 국가자격증 중에서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어서 불합격한 이력도 있고, 이번에는 꼭 합격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열심인 모양이었나 보다.
재식이 퇴직한 지 2년이 지나 집에서 지내자 자연스레 미주는 가사를 같이 분담하기를 바랐다.
그러다 식기세척기와 건조기 덕분에 가사가 편해지자, 그 일을 남편에게 주로 맡겼던 것이다. 왜냐하면 미주는 무릎이 아팠고, 요리를 전적으로 맡았으니 설거지는 남편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점점 영역이 넓어져 빨래도 같이 개 주고,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도와주었다.
가끔은 설거지가 너무 많이 쌓여 있으면 재식이 화를 내며 자기를 너무 부려먹는다고, 집에 있으니까 무시한다고 역정을 내곤 했다.
지금에 와서 미주는 남편이 시험에 불합격하니까, 집안일 많이 시켰던 것까지도 미안해졌다.
사실 재식은 이 자격증시험 빼곤 평생 대학부터 회사승진시험, 임원이 되기까지 승승장구를 달려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자신감과 약간은 교만이 그 속에 가득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두 번이나 시험에 실패를 했으니, 그 얼마나 자존심과 기가 꺾이겠는가.
우리는 무엇에서 인생의 진리를 배우는가.
나는 경험에서 주로 배운다고 믿는다.
그 경험 중에서 값진 경험 중 하나가 바로 실패의 경험이다.
실패의 경험을 통해 그냥 넘어져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시 딛고 일어나 극복하는 사람이야말로, 단번에 성공한 사람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결과를 맺을 것이다.
이 세상의 불합격자들이 많고도 많은데, 먼저 용기와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그대들은 이 시간을 더 멋지고 큰 열매를 맺기 위한 옥토로 만드는 과정으로 삼고, 물 주고 거름 주고 햇빛을 비추는 부지런한 경작의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그대들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싹을 틔우고 열매 맺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