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nymoushilarious Dec 29. 2022

내년에도 또 보고 싶은 2022년 영화 결산

키워드는 관객으로서의 나를 설득한 캐릭터의 '욕망'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참 많은 드라마, 영화에 기록을 남겨왔다. 특히 이번 해에 열심히 써왔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올해 리뷰한 영화 중 내년에도 또 볼 것 같은 영화들을 다시 되새기고자 한다. 물론 기준은 내 마음이다. 기준은 나를 설득한 '욕망'이라고 하자.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지어 소개할 예정인데 이번 글은 영화에 대한 글이다.


1. 내가 가지지 못한 이름값에 대한 욕망, '하우스 오브 구찌'

올해 초 개봉했던 영화인데 많은 부분을 잊어버렸을 법한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레이디 가가의 연기가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표출하던 표독스러움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오래 기억 남는 것은 배우의 연기인 것 같다. 한 인간의 탐욕의 일대기를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연민이 느껴졌다는 것은 레이디 가가의 연기가 설득력이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파트리치아 구찌의 삶에 박수를 쳐줄 순 없지만 그에게 삶은 투쟁이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녀의 '구찌'라는 이름값에 대한 집착은 자신의 태생적인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아님 그저 '구찌'라는 이름이 주는 명예와 돈이 좋았던 것일까.


2. 자신의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다면, '나이트메어 앨리'

관객들은 욕망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자의 최후를 보며 통쾌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은근히 주인공 스탠턴에 연민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서사는 통쾌함을 담고 있지만 연민까지 느끼게 하는 데에는 브래들리 쿠퍼의 신들린 연기력 덕분이었던 듯하다. 눈속임이 만연하는 서커스라는 배경 속에서 스탠턴이 자신의 욕망을 아낌없이 표출하며 파멸을 향해 가는 이야기인 만큼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것을 넘어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사람의 인과응보를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가 파멸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기예르모 델 토로, 이름은 들어봤지만 영화를 본 적은 없다는 사람들에게 입문용으로 추천할 만한 영화였다.


3. 진정한 어른을 보고 싶은 젊은이들의 욕망, '탑건: 매버릭'

잼민부터 꼰대까지. 각 나이대를 대표하는 멸칭들이 있다. 하지만 '탑건'이 흥행하는 것을 보니  '꼰대'라는 말은 어쩌면 멋있는 진짜 어른을 기다리는 젊은 세대의 기대를 반영한 결과인 듯하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평가하며 나이만 들어가는 '노인' 같은 어른 말고 진짜 실력으로 승부해 모시고 싶어지는 그런 어른 말이다. 다음 세대의 파일럿들이 톰 크루즈를 존경했던 것은 그의 끊임없는 자기 관리에서 비롯된 노하우가 젊은 혈기를 눌렀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마치 전투기에 탑승한 것처럼 관객을 순식간에 끌어들이는 조종씬이 관객들의 스릴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점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4.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삐뚤어진 애정 욕망, '헤어질 결심'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코드를 담은 영화다. 영화는 박해일 배우의 소년미와 탕웨이 배우의 사연있어 보이는 연기가 만나 이들의 금지된 사랑을 그린다. 보편적인 소재인 로맨스를 담았지만 어딘가 뒤틀려 있다. 해준의 사랑이 끝나자 서래의 사랑이 시작되며 서래는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다정한 남자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결국 서래의 애정 결핍이 이 영화의 감정적 도화선으로 작용해 해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야 만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넘쳐 날 사랑할 수 없다면 상처를 내서라도 잊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삐뚤어진 심보로.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


5. 망가진 인생을 다시 리셋하고 싶은 욕망,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올 한 해 가장 화제작을 꼽는다면 단연 이 영화를 꼽겠다. 수많은 멀티버스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에블린들 중 가장 후진 에블린에게서 가장 큰 희망을 보는 발상의 전환이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소 병맛스럽지만 신박한 액션도 한 몫 하지만 말이다.

블랙홀처럼 한 번 빠지면 끝이 없을 것 같은 인생의 밑바닥을 찍고 망가진 나의 삶을 다시 복구하겠다는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해야할 첫 스텝은 다시 주변을 되돌아 볼 것. 내 고통에 매몰되어 이기적이었음을 고백하며 관계도 새로이 재정비할 것. 그리고 내가 블랙홀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면 바닥까지 내려가보자. 바닥을 봐야 찍고 다시 튀어오를 것이 아닌가.


6.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를 아이 시절의 모험 욕망,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내가 피아노 학원에서 픽업 버스를 타지 못해 집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당시 6세였던 나는 집까지 혼자 걸어가본 경험이 없어 버스가 가던 길을 되짚으며 빙빙 돌아 지금 생각하면 '효율적이지 못한 경로'로 집에 다다랐다. 가족들은 내가 미아가 된 줄 알고 경찰까지 불렀는데 너무 멀쩡히 집으로 와 문 열어 달라고 해 엄마가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의도치 않은 모험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집까지 걸어왔는지 기억하지 못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른들의 관점에서 재단된 기억이다. 이후 타카라의 모험도 어떤 언어로 기억될지 기대가 된다. 또한 이 기억을 되살리면서 어른이 된 지금은 잊었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아이 시절의 모험 욕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독의 말에 동감하게 되었다.


7. 전쟁 포로의 살고자 하는 욕망, '페르시아어 수업'

전쟁 속에서 페르시아인이라는 거짓말로 위태로이 삶을 이어온 유대인, 질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보여준 인물이다. 인간이 죽음의 순간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너무 당연해서 욕망의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나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나치에게 총살 당하기 직전에 그런 기지가 나왔다는 것은 다른 전쟁 포로보다 그의 생에 대한 욕망 혹은 의지가 더 강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페르시아인 행세를 하게 된 것은 우연히 얻게 된 페르시아어 책 하나 덕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질이 페르시아인 레자로 살아온 우연 덕분에 독일군이 불태운 유대인 명부 일부를 기억하게 되는 우연한 결과를 도출하게 되다니, 삶은 어쩌면 연속적인 우연의 집합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애초에 인생 계획이라는 것은 의미없는 짓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