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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Aug 31. 2023

가끔 볼만한 로맨스도 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리뷰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실까 모르겠는데, 나는 로맨스 장르를 거의 보지 않는다. 내용이 뻔하기도 하고, 결말도 뻔하기도 하고, 대사가 오글거리기도 하고. 하지만 가끔은 좋은 대사가 있는 드라마라면 보기도 한다. '나의 해방일지'도 로맨스가 있는 드라마이기도 했으니까. 아, 로맨스를 안본다기 보다는 로코를 안본다고 하면 더 정확할까.


그런데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그 날따라 새로운 것을 좆고 싶은 생각보다 좀 더 예전 것들 중 안본 걸 캐내보고 싶었는데, 이 드라마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휴일에 잠잘 때 asmr같이 틀어놓을 작정이었는데, 웬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물론, 오글거리는 대사가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극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차분한 결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1. 차분하지만 지루하진 않은

한 때 일본 영화를 많이 보던 때가 있었다. 차분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영화들도 매력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부터였다. 그게 한 6-7년 전인데, 우리나라에도 이제 그런 컨텐츠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 괜히 좋았다. 은섭이 해원을 바라보는 감정도 따뜻해서 좋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놓지 않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들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흡사해서 그런 드라마를 굳이 해외에서 찾지 않아도 이제 꽤나 찾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도시에서 상처받은 해원도, 그 해원을 키워낸 그녀의 이모도, 엄마도 은섭도 모든 사람들이 각자만의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그 비전들이 소소하더라도 그 소소함을 가진 그들이 너무 빛나 보여서 성공하는 법을 강의하는 사람들보다 더 눈길이 가는 등장인물들이었다.


2. 요란하지 않은 인간관계의 진득함

내가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아주 안 보진 않는다. 나만의 로맨스를 보는 기준이 있다면, 무조건 담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대사든 분위기든. 이 드라마가 딱 그렇다. 은섭과 해원의 로맨스를 이뤄내기 위해 대단한 우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둘의 관계를 보다 보면 그저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사랑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인 것 같았다. 물론 은섭의 짝사랑이 먼저였고, 오래 지속되었던 것도 있지만 은섭이 그렇게 오래 좋아했으면서도 해원에게 흔한 플러팅 하나 하지 않는 그 지점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내 취향이 이상한 건지 그렇게 소심해 보이더라도 조심히 다가와 주는 사람이 참 좋다. 사람이 요란하지 않고 진중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둘 사이의 관계 말고도 모든 인간 관계들이 적당히 따뜻해서 좋았다. 드라마 상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딱 적당한 수준의 관심과 챙김이 보여서 훈훈해 보였던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 선을 넘는 행보를 보이는 인물은 보영밖에 없다. 그 외에는 모든 분위기가 요란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적당히 따뜻하고 진득하다. 튀는 성격의 사람들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이야기를 보나 싶겠지만 각자의 삶을 사부작사부작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나도 내 삶을 다시 내 페이스대로 살고 싶어진다.


3.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명여

이 드라마의 문학적인 분위기를 캐리하는 캐릭터는 해원의 이모, 명여다. 은섭도 독서 모임을 주최하기는 하지만 가끔 도라이같은 소리도 문학적으로 하고 있는 명여를 보고 있자면 웃기기만 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청춘들의 로맨스는 관객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 명여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이야기 중추를 담당한다. 명여는 무관심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인물이고, 재능이 있지만 자기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세뇌하면서 사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해원이 느꼈을 엄마의 빈자리를 명여가 채운 듯한 느낌이 든다. 더 이야기를 하면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에겐 스포가 될 것 같으니 이만 줄인다. 그저 명여 같은 친구, 지인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도시에서 상처 받고온 해원은 고향에서 은섭을 통해, 보영과의 갈등에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하다못해 자신에게 무심하다 못해 무신경했던 이모와 엄마를 마주하며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그렇게 해원은 자신의 상처를 다독이며,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이런 지점들이 '리틀 포레스트' 영화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고향이라는 곳의 중요성은 언제든 내가 재충전하러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리틀 포레스트나 이 드라마 모두 도시에서 상처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다. 나의 고향, 하지만 나는 내 고향에 가면 두문불출한다. 시골이라는 곳이 주는 답답함과 지나친 관심이 가끔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두 작품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시골이라는 장소가 주는 환상을 그렇게라라도 풀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총평

분명히 이 드라마는 로맨스인데, 난 참 쓸데없는 사고의 확장만 하고 말았다. 로맨스에 감동 받는 것보다, 배우들의 얼굴에 감탄을 표하는 것보다 그저 잔잔함에 꽂혀 삼천포로 빠진 것이다. 이걸 좋다고 해줘야 하나, 헛소리 작렬이라고 해줘야 하나. 나도 잘 모르겠다. 이상 의식의 흐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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