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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찬란하고 기특하다

세계의 주인

by Anonymoushilarious

누구보다도 명랑하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 주인. 오늘도 그녀는 신나게 까불며 학창시절을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감옥에 갔던 성폭력범이 동네에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자, 학교에서는 반대운동 서명을 받기 시작하는데 주인의 비협조로 인해 그녀의 행복한 시절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1. 공감과 위선은 한 끝 차이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생각보다 범죄자들을 맞닥뜨리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은 것 같으면서도 꽤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경험한 사람들보다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래도 더 많을 것이다. 무경험자들이 피해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언론을 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무경험자들에게 상식적 지식을 주는 데 있어 언론은 큰 역할을 하긴 하지만 언론이 가진 단점이 있다면 피해자들이 겪었을 법한 감정을 증폭시켜 이해시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경험자들은 피해자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확증편향을 갖게 한다. 물론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만 범죄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한다고 해봐야 뭘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이해가 피상적인 이해로 비춰질 수도 있고, 함부로 이해한다고 했다가 괜히 위선자로 오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 수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수호의 의도는 분명히 선이었고, 수호에게는 어린 여동생이 있기 때문에 수호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다소 유난맞아 보일 수 있지만 수호에겐 그 유난맞음이 자신의 여동생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유난맞음인 것이다. 아주 합당한 모습이다.

하지만 수호는 성폭력에 노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언론이나 피상적인 말들에 더 잘 흡수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호는 주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수호의 입장이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에게도 공감이 갔지만 수호 캐릭터에 내 자신을 대입해볼 수 밖에 없었다.


2. 어두운 과거 때문에 내 현재를 망치지 않는 것, 그것이 이기는 것

하지만 주인이가 세차장에서 목놓아 우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꾹꾹 참지만은 않는구나 싶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그 상처가 엄마한테 다시 옮겨간 것은 아닐까 싶었다. 상처를 준 인간은 따로 있는데, 받은 사람들끼리 표현해봤자 상처 돌려막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상처는 꼭 표현해야 하는데, 진정한 상처의 치유는 상처 제공자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것 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럼 또다른 범죄가 될 테니 아주 위험한 발상이긴 하지만 그래서 사이다 복수극들이 각광을 받는 걸까.

주인이 왜 그렇게까지 밝은지 이해가 되면서도 되게 멋있어 보였다. 세상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더 밝은 척하는 거라고' 까내리기도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예전에는 너무 밝은 사람들을 그렇게 까내리기도 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상처를 감추냐 마냐를 내가 평가할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 극복했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까. 그건 당사자만 아는 부분인데 너무 주제넘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만, 상처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운 과거를 매번 떠올리면서 내 현재를 망치지 않기 위함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을 그렇게 바꾸고 보니 굉장히 멋있더라. 그건 나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픈 순간들이 있고 한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 순간들에 매여있지는 않은가 자기점검을 할 때가 있다. 주인이를 보며 느낀 건 아직 나는 조금 멀었다는 것이다.


3. 총평

'몰랐을 때가 더 나았다'는 주인이의 친구들의 말이 생각보다 기억에 남고 마음이 아팠다. 괜히 주인이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러운 것일 테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겠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랑함을 잃지 않는 주인이가 너무 예쁘고 기특했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의 영화였음에도 나는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가 반짝반짝 빛났던 것 같다. 주인이의 동생 해인이가 너무 일찍 철든 것 같아 그것도 좀 마음이 아팠는데,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이 종종 있는 집안에서 사는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라도 밸런스를 맞추는 걸까. 영화 속 모두가 (범죄자 빼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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