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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Jul 11. 2020

나를 갉아먹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였다.

악순환의 정점에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치다.

이렇듯 인생에서 살만하면 한 번씩 오는 슬럼프는 나의 쓸모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의 사회성, 신체적 능력, 업무적 능력 등등의 나를 아우르는 모든 요소들이 모두 쓸모없다는 자체적 판단이 서면 나는 비로소 무너지게 된다. 이 글은 나의 실패를 내가 만들어야 했을 성과와 인간 관계의 측면에서 기술하며 그에 따른 내가 느끼는 나의 두려움은 어떤 것이 있는지 기술하고자 한다.


<내가 결국 만들어내지 못한 성과>


나는 일개미와 같은 대학원생으로서 논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논문에 대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정체된 기간만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최근 나는 내가 준비하던 논문의 장례를 치렀다. 내 허접한 논문과 그 허접함을 채우고자 말도 안되는 브리핑을 한 결과, 내 논문 주제와 내 말빨에 대한 참혹한 결론을 교수님의 친절함과 답답함이 섞인 말투로 들으니 생각나는 결론은 한 가지였다.


아, 내가 지금 실력도 안되면서 6개월동안 까불고 있었구나.


그 다음에 교수님이 너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면서 논문을 쓸 건지 말 건지 결정하고, 쓸 거라면 다른 방향을 생각해보고, 아니면 말라는 교수님의 권유에  논문에 대한 집착이 놓아졌다. 그리고 허탈해서 살짝 눈물이 고였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논문을 엎겠다고 다 포기한 듯 말씀드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교수님은 갑자기 논문 쓰는 것은 원래 힘든 거라며 사람을 회유하는 듯한 어투로 논문 쓰는 것이 왜 이렇게 고된지 꽤 오랫동안 위로성 멘트를 던져주셨다. 왜 그렇게 갑자기 태도가 바뀌셨는지 의문이었는데,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채팅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살짝 목이 멘 듯한 목소리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고들 한다. 그래서 교수님이 내가 울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말을 바꾸신 거였다. 이 사실을 듣고, 개인적으로 또 자신을 자책했다. 감정 하나 컨트롤 못하고, 그 감정을 또 들킬 거면서 뭘 하겠냐는 식으로 내 자신을 저주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격려도 사실 그렇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교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논문을 포기해야 겠다는 마음은 변하질 않았다. 결코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격해진 감정은 교수님의 말씀 때문이 아니라 아는 것도 없는 애가 아는 척하다 들킨 것 같은 내 처지가 객관화되어 정확히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격해진 감정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과감히 버리는 것도 용기'라는 생각까지 뻗치게 되었다.


이 논문 주제로 빙글빙글 돌면서 6개월 동안 붙잡을 동안 나는 그  6개월 동안 조급함과 불안함 속에서 살았다. 그 조급함과 불안함 속에서 나는 나름대로 지옥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대학원에 괜히 들어왔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아등바등했던 논문이 사망 선고를 받는 그 순간부터, 아니, 그 논문을 살려보려고 했던 그 순간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면서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기나긴 슬럼프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척 했지만 사실은 그것은 모두 허세였다.  요새는 그저 은퇴한 공무원이 은퇴 후에 뭐할까 고민하듯이 미친 듯이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있다. 언제 회복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허탈하면 여행이라도 갈 텐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서 이 실패에 대한 우울함이 점점 배가되고 있다.


<인간 관계의 굴레>


요즘 인간 관계에 대해 느끼는 실패는 여전히 내 인생에서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를 아껴주는 친구가 없다는 허탈함에서 비롯된다.'내가 아무리 친하다고 생각해서 의지하면 내 의지가 남에게 부담이구나' 라는 사실을 느낄 때, 내 의지는 짐이었음을 깨닫고, 나는 또다시 자기 혐오에 빠진다. 나의 눈치 없었음을 저주하며.


그리고 요즘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화내지 말고, 그냥 대꾸를 하지 말라고.

배려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그 반복되는 상황에 항상 반기를 드는 나의 행동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더불어 그 분은 내 성격에 대해 총평을 해주셨는데,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자기 주장이 강하고, 그 주장에 사용되는 기분 나쁜 말투로 인해 발생하는 공격적인 태도는 우리 가족 중에서 나만 있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분은 또, 나는 그런 네가 불편하다면서 너의 공격적인 태도로 가족을 불편하게 만드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을 해보니, 나는 그저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묵인하니까 배려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한 번 정도는 나처럼 솔직하게, 때론 공격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출했는데, 다들 자신의 의견이 부정당해 그저 그냥 타성에 젖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그 조언을 통해 깨달았고, 나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인터폰에다가 작동이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남이 나를 해하고 있다고 생각헀는데, 내가 나를 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 관계는 가족이든 친구이든 이렇게 얄팍하게 깨지고, 또, 깨지게 한 돌은 절대 물러지지 않는데, 내가 짱돌의 단단함과 맞서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발언들은 무례하게 들릴 가능성이 있지만 나는 소수의 누군가는 나의 솔직함에 박수 쳐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고, 그 소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내 가까운 사람들은 반복되는 배려없는 상황에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참지 못하고 한 소리를 하는 나를 더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또 내 자신의 쓸데없음에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어가고, 의지가 없어진다.


인간 관계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니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도 오래 지속해내질 못한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내 못난 점을 들킨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견딜 수 없이 불안해진다. 기본적으로 남이 나에 대해 고깝게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기 때문에 모든 인간 관계는 껍데기이기에 연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를 높게 평가해주는 사람들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내가 그 사람들에게 나의 실력없는 모습을 들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력없는 모습, 못난 모습을 들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 다음에 그들을 만나게 될 때, 나의 자격지심이 그들 앞에서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없게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속에서 나름 큰 고비들을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번 고비를 겪을 때마다 이번 고비가 가장 뚫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에 다다르면, 무엇인가 할 의지를 잃게 된다. 그리고 자기 혐오에 빠지고, 그 자기 혐오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내용이 들리면 사람이 뾰족해지게 만든다. 지금도 나는 그 블랙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인간 관계 관리의 실패이든 하던 일을 관두게 되는 실패이든 내가 겪는 모든 고비는 내 자신을 더욱 혼자라고 느끼게 만들고, 이 감정이 지속되면 나는고립되겠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감정적인 두려움을 뚫고, 의지가 생겨난다면, 나는 또다시 다른 길을 찾아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혹시 내가 고립되더라도 다시 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또,  내면의 컨텐츠를 강화하기 위해서 잠시 인간관계를 끊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맘껏 해보려고 한다. 지금 내 상태는 누가 좋은 말을 해줘도 그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내가 너무 망가졌다. 내가 나를 좀 예뻐하고, 덜 자책하려면 내가 자신있는 컨텐츠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내가 나를 자랑할 컨텐츠가 없다.


다시 나를 자랑스러워할 컨텐츠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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