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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Dec 25. 2020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살아갈 너에게

사랑은 1도 모르지만 애송이가 주절주절 써 내려가는 영화 조제 리뷰

찬란했던 20대 초반을 지나 20대 중반을 향해가며, 졸업과 취업이라는 현실이라는 압박을 스멀스멀 느끼고 있는 어정쩡한 청춘, 영석은 시크한 듯 엉뚱한 조제를 만난다. 보자마자 반말을 하는 조제를 소소하게 도와주고, 그 소소한 도움에 대한 대가로 밥을 여러 차례 얻어먹다 보니, 영석은 자연스레 조제에게 스며들어버렸다. 그렇게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던 두 청춘은 서로의 암흑과도 같은 시기를 함께한다. 암흑 같은 시기를 함께했던 결과는 헤어짐이었지만.


고등학생 때인가, 이 영화의 원작을 본 적이 있다.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이 영화의 마니아층이 많은 이유를 이해하기에는 내가 그 당시 너무 애송이였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의 메시지가 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판을 보러 갔을 당시의 나의 상태는 아득한 과거의 언젠가 본 적이 있었지만 내용을 잊고야 만 아예 새로운 영화를 보러 간 것과 진배없었다. 한국판과 원작을 비교할 만큼 이전 영화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도 않았고, 이전 영화에 대한 깊은 감명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원작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이 영화가 어느 영화의 리메이크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영화 자체를 감상했다. 그랬더니 보이는 감상 포인트 몇 가지가 있었다. 이 감상 포인트는 원작 영화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으신 분들의 기준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1. 외로운 청춘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

영석의 시점


영석은 그저 요새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20대 학생이다. 졸업은 다가오고, 취업은 해야겠는데, 뭐 딱히 앞날이 잘 보이지 않아서 혼란스럽고, 적당히 우울한 그 시기에 영석은 휠체어에서 벗어난 한 여자를 구해준다. 그리고 그 묘하게 기분 나쁜 여자에게서 밥까지 얻어먹고 가는데, 영석은 아무래도 그 여자가 신경이 쓰인다. 거동도 불편한 그 여자는 도움을 요청한다기보다는 도움을 명령하는데, 홀리듯이 도와주면, 밥을 주니, 그녀에게서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다가도 밥을 얻어먹고 있는 자신을 보자니, 이용당한다고 말하는 건 오버인가. 나보다 더 삶이 힘들어 보이는데, 정작 그 여자는 그 시궁창에서도 책만 있으면 별로 우울하진 않은가 보다. 누군가에겐 쓰레기라서 버려진 책인데, 그녀에게는 보물이라니, 이 여자 보다 보니 신기하고, 분명 불우한데, 불우해 보이지 않는다. 영석은 오히려 본인이 더 불우하다고 느낀다. 가진 것은 더 많은데, 속은 빈 깡통 같은 자신보다 시궁창 같은 집이고, 쓰레기 같은 책을 읽고 있어도 그녀가 더 충만한 삶을 살고 있어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은근히 부럽다. 영석이 이 여자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동정심 때문일까, 부러움 때문일까.

조제의 시점


길에 쓰러져 있던 나를 구해준 남자, 영석. 왜인지 시답잖은 일들을 도와주겠다고 계속 집에 온다. 이 남자 하나가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고 가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혼자 책만 읽고 있던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 남자가 한 번 집을 찾아오면 조금이라도 오래 집에 머무르게 하고 싶어서 밥을 먹고 가라고 하게 된다. 은근히 이 남자가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이 남자의 주선으로 국가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이 남자의 주변에는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남자의 곁에는 그 여자가 있어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이 남자가 내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 남자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남자에 대한 호감과 나에 대한 자격지심이 동시에 발동하여 한없이 우울해져 이 남자를 밀어내고 있다.


서로 앞길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 만난 이 커플은 확실히 둘 다 외로웠고, 자신이 상대의 외로움을 채워주고 있는지는 둘 다 몰랐을 수도 있지만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서로의 등불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조제도 영석이 자신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영석이 필요함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고, 반대로 영석도 처음에는 조제를 본인이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후에는 본인이 조제가 필요함을 인식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2. 사랑이 가지는 시대성(그 때, 그 시기에만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지만 사랑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영원할 수가 없다. 상황이 변하면,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사랑도 변한다. 사랑은 사람의 감정이 만들어낸 환상과도 같은 것이라서 시대가 변하고, 시대에 맞추어 살아가는 나 자신의 변화에 따라 사랑이 만들어지는 데에 필요한 요소들도 달라지게 된다. 그것이 사랑이 가진 시대성이 아닐까. 사람들은 동화 속 공주님들의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착각한다. 사람들은 사랑의 결실이 맺어진 가장 절정의 순간만 보고 책을 덮지만 공주님이 결혼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공주님의 행복한 결말을 본 걸로 만족하기 때문에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은 그들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기에 그럴 리 없다고 외면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한 커플의 사랑이 애틋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 시기에 살고 있는 그때 그 사람이어서, 그때 그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사람이라서 맺어질 수 있었던 사랑이기 때문은 아닐까. 20대에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청춘인 영석이었기 때문에, 아직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미완성의 조제였기에 가능했던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 시기의 영석과 조제는 이제는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그 시기에만 존재했던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사랑을 꽃피울 수 있었고, 그들의 사랑이 빛났던 게 아닐까. 같이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어두운 길을 둘 중 하나가 벗어나는 순간 두 사람의 사랑은 변질된다. 그러면 그들의 사랑도 거기까지인 것이다. 영화 속 영석과 조제의 경우, 함께 암흑 속을 걷던 조제와 영석은 영석의 도움으로 바깥을 나갈 용기가 생겨서 이제는 영석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조제의 상태 변화로 인해 그들의 사랑은 끝나게 되었다. 그들의 사랑의 유통기간은 거기까지였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해석해본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조제는 영석 없이도 납골당까지 운전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데까지 영석의 존재는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영석도 20대의 잠시 정체된 시간 속에서 다시 힘을 낼 용기를 얻어 다른 이와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데까지 조제라는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현재 서로의 곁에 없지만 그들의 사랑은 헤어졌다고 해서 결코 퇴색될 수 없다. 그들이 서로 함께 보냈던 시간만큼 긍정적으로 바뀐 그들의 삶에 아직도 서로의 흔적은 남아있는 것이기에. 그래서 한 연인이 헤어지는 것을 비관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 둘이 함께 성장하고,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달라져 버려서 헤어지는 거라면 그 사랑은 의미 있는 사랑이었다고 반추해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서로가 아니면 안 되었던 시기를 지나 서로가 없어도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조제와 영석처럼 말이다. 조제는 영석 없이도 운전할 수 있게 되었고, 영석은 다른 사람과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되었지만 그때 그 시기에 서로를 만났기 때문에 그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때의 그 사랑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일 테니. 그래서 마지막에 영석이 운전하는 조제를 보고 숨죽여 우는 장면을 볼 때, 조제의 옆에 끝까지 있어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울었을 수도 있지만 그때 그 시기만 볼 수 있었던 조제와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때에 대한 향수 때문에 운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꽃잎이 화사하게 죽는다.


마치 이 대사처럼 그들의 헤어짐은 그 시기에만 볼 수 있었던 한정판 화사함이라서 죽음이긴 하지만 결코 불쌍하게 기록될 기억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원작에 감명을 깊게 받아 기대치를 높게 책정하고 봤을 때는 평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 영화 자체로만 보면 괜찮았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선, 감정선이 보는 데 이질감은 없었던 것 같고,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한다. 잔잔한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 정도는 보실 만하지 않을까 싶지만 원작과 비교하시면서 보시는 것은 비추하고, 마음을 비우고, 평온하게 볼 영화 찾으시는 분들에게는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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