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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Aug 12. 2020

엄마의 청춘

예매율 1위를 포기하고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를 보고 치는 뒷북

처음에는 이 드라마에 대한 호평이 많았음에도 보지 않았던 이유는 소녀의 첫사랑 코드가 있는 드라마는 그닥 끌리지 않았고, 이게 써니랑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러 갔다가 너무 하드보일드한 액션 장면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 나와서 내 자신을 힐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왓챠를 들어갔더니 인기 드라마 섹션에 있기에 하루를 날 잡아서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1979년. 처음엔 1980년도 아니고 애매하게 79년은 뭐냐고 생각했는데,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기 직전이고, 87년 민주화 운동도 발생하기 한참 전이기 때문에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은 시대적 상황을 묘사한 드라마는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화를 보고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다보니 나는 세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깊이 공감되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1. 빨갱이 그리고 정희 아버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 빨갱이가 있었다. 이 때는 유신 정권이고, 교련 과목이 존재했을 시절이었으며, 간첩 신고 포스터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 시절이었다는 것을 학교 플랜카드, 드라마 속 배경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신기한 모습이었다. 운동권 서울대 교수가 대구의 시골 마을에 들어왔다고 마을 사람들이 그 교수의 가족을 소위 왕따시키려고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학교 선생님들이 긴장하고, 마을 선도위원회가 소집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한 사람, H가 떠올랐다. 그 분은 뉴스에 진보 인사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에이, 빨갱이가 나와서 기분 잡쳤다."

고 소리치시며, 모임의 분위기를 애매하게 만들곤 하셨는데, 예전에는 그 분이 매번 정치 뉴스는 틀어놓으시면서 진보 인사만 나오면 그렇게 큰 소리로 욕을 하시면서까지 모임 분위기를 이렇게 망치시는 걸까 라고 원망 가득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진보, 보수 그런 단어들도 많은데, 왜 빨갱이라는 단어를 쓰고, 박정희 대통령을 우상화하시는 반면에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탐탁치 않아 하시는 걸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 속 정희 아버지를 보면서 그 분을 많이 떠올렸다. 

유신 정권을 살아가던 소시민들에게 사회를 비판하는 혜주나 혜주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곱게 봐줄 수 없었던 것은 각자의 삶을 걱정하기에도 빠듯한 인생들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분들은 전쟁도 겪어보신 세대시기 때문에 "배불리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 아래 앞만 보고 달려오셨기 때문에 함부로 사회에 비판을 하는 것보다 당장 내일 생업이 끊기는 상황이 오는 것이 더 두려우실 수 밖에 없는 분들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해가 되었다. 역시 그 때 상황을 이렇게 드라마로라도 묘사한 상황을 눈으로 보니 또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뭐도 못 달고 나온 여자들의 비애


이 드라마에서 정희 아버지는 정희와 정희의 쌍둥이 오빠를 사사건건 비교하면서 '뭐도 못 달고 나온 것이 요구하는 많다.' 혹은 '남의 집 제사상 차려줄 너랑 우리 집 제사상 차릴 네 오빠가 대우가 같아서는 되나?' 와도 같은 인신 공격적인 말이 너무 당연시 되던 시대를 눈으로 확인해 보니 또다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정희처럼 할 말 다 했을 또다른 정희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우리 엄마 세대 분들만 하더라도 대학 못 나오고, 공장 다니셨다고 하시는 분들 참 많다. 그런데 대학까지 나온 20대의 입장에서 어이가 없었던 집의 사연을 보자. 3녀 1남으로 가까스로 아들을 낳은 한 집에서 아들이 집안에 기둥이라고 생각해서 아들만 오냐오냐해서 키우고, 딸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부터 공장다니게 해서 아들 대학 보낼 돈을 모으게 하고, 3명의 누나가 한 명의 아들을 위해서 뒷바라지 하는 것이 너무 당연했던 집안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했던 시대상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부모님들은 똑같이 배아파 낳아놓고 이렇게 차별을 대놓고 하셨으며, 차별을 당한 분들의 삶 속에서 저항을 해보신 분들은 몇이나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자 형제에게 모든 기회를 다 양보했을 때, 그 기회를 모두 받은 남자 형제가 결과적으로 잘 되어서 집안을 일으키게 되면 정말 다행이고, 여자들의 양보가 값진 희생이 될 텐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참 많아서 그저 안타까웠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성별을 잘못 타고나서 차별을 받았던 정희의 모습과 집안에 대한 기대는 다 받고 있지만 그 기대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보유한 정희의 쌍둥이 오빠의 모습을 통해 내 엄마 세대가 겪었을 만한 상황을 대리 경험을 한 것 같았다. 한없이 답답했고,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했다. 

3. 가부장적인 가장의 모습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깊은 캐릭터는 정희 아버지 캐릭터였는데,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만을 담은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하시는 말씀이 있다.


우리 손녀, 슬슬 시집가야지. 시집 가서 남편에게 사랑받으면서 남편에게 밥 차려 주면서 예쁘게 살아야지.


그러면 나는 급발진하면서 


시집 가면 남편에게 나만 밥 차려줘야 하는 거예요? 남편에게 가끔은 밥을 차려받으면 안되는 건가요?


라고 되물으면, 할아버지는 문화 충격에 빠지신 듯,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순간적으로 초점을 잃는다. 그러고는, 할머니와 엄마의 폭격과도 같은 공격을 받으시면 험험 하고 헛기침하고 나가시곤 한다. 그리고 나에게 가끔 오셔서 왜 여자애가 상 안 차리고 있냐고 쿡쿡 찌르시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요리는 여자가 하는 거라는 인식이 있으셔서 내가 명절에 일을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동생이 도우면 신기하게 바라보실 때가 있다. 다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시대를 사셨던 분들에게 다들 정희 아버지와 같은 모습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대놓고 그런 인식에 불쾌감을 표시한 적이 꽤나 많기 때문에 괜히 죄송스럽기도 했다. 내가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생각을 하다가 누군가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 때에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어. 그 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른이 되면 체념은 기본 베이스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주인공 정희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혜주처럼 불의나 부조리함에 반항하는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 달고 태어난 게 그렇게 자랑이냐고 크게 외칠 수 없는 분위기였기에, 남편은 하늘이 아니고, 나랑 함께 사는 동거인이라고 반박할 수 없는 분위기였기에, 모두가 그렇게 살았고 다른 예시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혜주라는 존재가 불순 분자로 보였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정희가 그저 맹랑한 기집애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해서는 어둡기만 하고, 답답했을 것만 같았을 시절에도 모두들 설레여했고, 짝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너무 오만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그 시절의 우리 엄마들보다 외적으로 처해진 조건이 더 낫다는 이유로 내 멋대로 엄마들을 답답함과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우리 엄마들도 엄마들 나름대로 멋지게 살고 있었고, 지금도 못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 한 편이 나를 굉장히 부끄럽게 했다.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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